준원 김재훈 수필가(隨筆家) 등단
제주신문
2010년 01월 18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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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 가던 날 - 2010년 1월 월간 문예사조 신인상 수상작 ■
시골 가던날
자동차 계기판이 60킬로를 가리킨다. 엑셀레이더를 밟으니 70을 지나 80에 이른다.
얼마를 더 주행 했을까, 속도감에 젖을 즈음 다급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천천히 다녀라!”
순간 브레이크를 밟으니 60키로 까지 계기판이 다시 내려간다. 통화할 때마다 어머니가 늘 하시는 말씀이다.
금년 연세가 81세인 노모께서 60이 된 아들에게 늘 하시는 얘기이다. 어머니의 마음엔 내가 어리게만 보이고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26년 전에 아버지를 여의고 시골에서 혼자 살고 계시는 어머니. 어머니는 중산간 납읍이란 마을에 사셨는데 4.3사건이 터지자 소개명령이 내려져 해안부락 애월에 오게 되었다. 마침 이웃에 살던 처녀 총각은 눈이 맞았고 이듬해에 아버지는 말 타고, 어머니는 연지곤지 바르고 가마를 타서 시집을 왔다고 한다. 참으로 어려운 시대를 살아오면서 슬하에 1남 2녀를 두시고 여동생 둘을 시집보내시고 나서는 오직 아들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신다는 어머니시다. 그러니 나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과 관심은 삶의 전부이리라. 나 또한 시골에 홀로 외롭게 사시는 어머니가 늘 걱정이다. 집사람과 상의를 해서 어머니를 모시려고 여러 번 시도하였지만 그 때마다 어머니는 완강하시다. 심지어 아버지 기일이나 설, 추석날 하루만이라도 손자 손녀와 지내시라고 하여도 그날로 시골로 가신다. 누구 감옥 살 일 있느냐? 시며 아파트의 삶을 한사코 거절하신다. 그저 당신이 사시는 시골 슬레이트집이 제일 편하다고 하신다. 하기야 시내에 와서 함께 지내신다 해도 친구도 없지, 갈 데도 없지, 할 일도 없지, 감옥 삶이 따로 없다. 우리부부는 일에 매달리고, 딸애는 출근하고, 아들 녀석은 공부한답시고 서울에 가 있기에 오직 벗이라고 해봐야 텔레비전뿐이다.
나면서부터 시골에 사셨으니 시골이 어머니의 전 생활공간이다. 그래도 시골에는 자식 자랑하며 얘기를 나눌 친구도 있고, 노인정에 가서 스포츠댄스도 배우고, 밭뙈기 하나에 매달려서 싸우다보면 제법 용돈도 나오고하니, 한 푼, 두 푼 돈 모으는 재미도 쏠쏠하다는 것이다. 그러시면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그 때에 오시겠단다.“치매가 오기 죽어야 될 텐데” 중얼거리시며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를 소원하신다.
내가 시골 어머니를 뵈러간다고 하자 안사람은 이것저것 밑반찬이며 어머니께서 좋아 하시는 단감, 돼지고기 그리고 버섯과 바닷고기 등 고루고루 챙겼다. 나는 아직까지 건강하신 어머니가 너무 고맙다. 이제 모자 상봉을 위해 시골로 달리는 마음은 가볍고도 상큼하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느긋한 마음으로 차를 몰며 눈에 익숙한 시골길을 달려 어머니를 뵐 생각을 하니 어린애처럼 마음이 뜨는 것을 어쩌지 못한다.
그런데 어머니는 계시지 않았다. 이웃하고 있는 사촌 형님 댁에 가보아도 없었다. 미리 전화 드리지 못함을 아쉬워하면서 가까운 밭으로 가보았으나 밭에도 어머니는 계시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싸들고 온 것들을 냉장고에 차근차근 넣어두고는 청소를 하기로 하였다. 언제나 시골집에 오면 무엇보다 먼저 대청소를 한다. 웃옷을 벗어 놓고는 어머니께서 기거 하시는 방부터 시작이다. 어머니의 방에서 나는 독특한 냄새가 그리 싫지가 않다. 방문을 활짝 열어 제치고 미리 깔아둔 이불과 요를 마당에서 훌훌 털고는 빨래 줄에 넌다. 방안에 있는 먼지를 털어내고, 빗자루 질을 한 후 걸레를 빨아서는 옛날 교실청소를 하듯 왔다갔다 기어 다니면서 닦는다.
마루까지 한바탕 청소를 하고 난 후에는 마당 한쪽에 나란히 있는 분재에 물을 준다. 26년 전 아버지 생존 시에 손수 가꾸시던 것들인데 처음에는 70여분이던 것이 지금 열두 분밖에 없다. 어머니께서 밭에 가셔서 집을 비울 때면 누군가 좋은 것들로 하나 둘 가져가 버리고, 더러는 관리 소홀로 죽어 버렸다. 그래도 물을 주고 전정가위로 다듬어줄 때면 아버지의 손길과 온기가 와 닿는다. 마침 올래(골목)를 지나가시던 당숙모께서 돌담 너머로 나를 보시고는“하룡이 아방 왔구나! 어머니 밀감 따러 갔다”하는 것이다. 밀감을 따러 가셨으면 저물어서야 오실 것이다. 나는 널어둔 이부자리를 거둬 어머니 방에다 깔아 놓고는 돌아가기로 하였다. 기다렸다가 어머니를 뵙고 가야 하겠지만 너무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왠지 어머니에게 일을 부탁하는 이들이 미워졌다. 또 한편으로는 아직 남의 일을 할 수 있는 건강한 어머니가 고맙게 여겨지기도 하였다. 한 마음으로 두 가지 생각이 오락가락하였다. “사람의 마음은 朝夕變’이란 말이 있는데, 때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어서 못 믿을 사람이라 했는가?”
돌아오는 길은 오랜만에 해안도로를 타기로 하였다. 서행을 하면서 몇 년 까지도 낚시를 다녔던 갯바위 낚시터를 차안에 앉아서 둘러본다. 여느 때와 같이 명 포인트에는 어김없이 낚싯대를 드리운 이들이 자리를 하고 있다. 조황이 별 신통치 않은지 한참을 기다리면서 봐도 챔질하는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전망 좋은 곳에 자리를 하고 한 참이나 낙조를 보고 있었다. 나름대로의 사색을 하면서.....
땅거미가 지고 캄캄해질 무렵 거실의 전화가 울린다. 생각 한대로 어머니의 전화였다.‘하룡이 아방 왔다 갔느냐? 내가 있었으면 김치랑 마늘 조린것을 가지고 갈걸. 왜 많은 돈을 들여 여러가지를 샀느냐 돈 아껴써라.’하시고는 달그락 하는 소리와 함께 통화가 끈긴다. 백부님을 비롯한 삼촌들 모두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만 살아 계시지만 4형제의 막내 며느리로 살아오면서 오래 사신 할머님을 잘 모시고 억척같이 3남매를 잘 키우신 어머니,어머니 때문에 친족 집 제삿날에는 심야의 시골까지도 마다 않고 꼭꼭 참석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바빠서 집안 大小事에 참석치 못할 양이면 어머니의 조심스런 질책이...
“우리 어머니는 살아 계신 부처님이다.”
집사람이 하는 이야기다. 어머니께서 무병장수하시길 염원한다
■ 책임을 다 한다는 것 - 2010년 1월 월간 문예사조 신인상 수상작 ■
책임을 다 한다는 것
노래연습장에서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데 덩달아 휴대폰이 열심히 울린다. 오름산악동호회의 회장의 전화다. 내용인즉 이번 일요일 산행은 나의 인솔 하에 다녀오라는 것이다. 회장은 조상묘의 벌초와 묘제 때문에 부득이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순간 나의 뇌리는 복잡하게 꿈틀거렸다. 나 또한 같은 이유로 이번 산행을 쉴까 했는데 어쩌나 하여서이다. 그러면서 오름산악동호회의 운영위원이란 무게가 어깨를 눌러오자 그만 회장의 부탁을 허락하고 말았다.
제주에는 육지와는 다르게 음력 8월 초가 되면 추석 절 이전에 일제히 조상 묘에 벌초를 하고 묘제를 지낸다. 그래서 음력 8월 1일이 되면 제주도의 온 산야에는 전쟁처럼 예초기의 굉음이 하루 종일 윙윙거린다. 그렇게 조상 묘를 깨끗이 벌초하고 나서 팔월보름 명절날에는 온 친족들이 모여서 가정마다 돌아다니며 차례를 지내고 오랜만에 만난 해후를 나누는 것이다. 그러기에 조상묘의 벌초와 묘제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더구나 이번 일요일(9월13일)은 어머니의 생신이다.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을 했으나 아내와 의논한 끝에 저녁에 어머니를 모시고 생신을 축하해 드리기로 하고, 문중묘제에는 친족들에게 미안하여도 잘 말씀드려서 불참하기로 하였다.
나에게 33년이란 공직은 마라톤처럼 멀고도 험한 코스였지만 인내와 성실로 달려온 보람찬 생이었다. 하지만 정작 정년퇴임을 하고 나자 뭔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허전하고 섭섭하였다. 아침에 벌떡 일어나서는 ‘아, 이제는 갈 곳이 없구나!’ 했을 때 예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생의 허무가 물밀듯이 밀려오는 것이었다.
그래도 뭔가를 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마누라의 속 깊은 뜻을 따라 노래연습장을 인수하여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박쥐처럼 밤에 일하고 낮에 잠을 자는 거꾸로 된 생활을 하면서 또 다른 걱정은 몸이 점점 불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파트 같은 동에 사는 오름산악회 K회장 일행이 노래연습장에 왔다가 세상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산에도 오르고, 운동도 하고, 젊은이와 어울리기도 해야 한다며 산행의 중요성에 열을 올리는 K회장의 말은 틀린 데가 없었다. 평소에 나 또한 건강을 위해서 뭔가를 하기는 하여야겠다고 생각하여 오던 차였다. 특히 회장과 같은 아파트에 산다는 점도 동호회의 가입에 한 몫을 했는지도 모른다. 이미 나의 심중에는 어떤 친목회나 단체모임을 갈망하고 있었고, 거기에다 마누라의 동호회 가입 종용도 크게 작용을 했다 싶다. 어쨌거나 나는 오름산악동호회에 가입하여 열성분자가 되었고 백여 명 회원을 거느린 오름산악동호회의 운영위원이란 중책(?)을 맡다보니 회장의 부탁을 쫓기는 듯 승낙하고 말았다.
회장은 이번 9월 13일 정기산행에는 한라산 윗세오름을 오르는 것이 좋겠다는 말도 덧붙이는 것이었다. 나의 오름 경험이 부족한 점을 고려해서 쉬운 코스를 선택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도 직장에 몸담았을 때는 오름 탐사반에서 열심히, 그리고 부지런히 산행에 참가한 경험도 있다. 더구나 얼마 전에 산행하였던 윗세오름은 아니다 싶어서 아무래도 이번 산행은 월랑봉(다랑쉬오름)코스가 좋겠다는 생각을 회장에게 말하고 목적지를 변경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목적지를 막상 정하고 보니 걱정이 앞선다. 다랑쉬오름, 아끈다랑쉬오름 으로 가는 길목은 물론, 오름 분화구 둘레에도 그늘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민둥산 이라는 점이다. 9월 중순이라 해도 여름의 끝물더위는 만만치 않아서 회원들의 입장에서는 불만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나 어쩌랴! 이미 카페 공지사항에 다 게재를 했고, 많은 회원들이 참여 여부를 댓글로 올린 후라서.....
간밤에는 한 2시간이나 잤을까? 소풍을 앞두고 잠을 못 이뤄 뒤척이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밤3시경에 노래연습장 문을 닫고 집에 와서 샤워하고 하다보면 새벽4시경에야 잠자리에 들게 되기 때문이다. 08시 전에 회원보다 먼저 모임장소에 가서 확인하고 파악을 해야 하는 것이다. 책임자란 이래저래 큰 짐을 지고 가는 사람처럼 힘들고 피곤하다. 서둘러 모임장소인 문예회관 주차장으로 가는데 앞서가는 차량이 눈에 익은 회장 차다. 내 속으로는 벌초(성묘) 가기 전에 집결지에 들려서 상황을 살피고 가려나 했는데, 아무래도 걱정이 되는지 회장은 성묘를 다음 일요일로 미루고 산행에 동행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나 보았다. 정작 동참은 하더라도 일반 회원으로 뒤에 따라 다니기만 한다 했지만 나에겐 버팀목처럼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나로 하여금 산행에 익숙하게 하고, 많은 오름을 알게 하려는 속 깊은 뜻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마음에 한결 여유가 생기다보니 어젯밤 밤샌 걱정이 괜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참가한 회원들을 남녀 구분하여 인원을 파악하고, 차량지원 문제, 그리고 안전운행 당부, 몇몇 임원진의 불참경위를 간략히 설명하고, 참가한 회원들의 소개와 가벼운 운동으로 마무리하여 드디어 계획대로 출발을 하였다.
참으로 산행하기에 좋은 날이었다. 잔뜩 찌푸린 날씨가 오히려 좋았다. 그늘 없는 코스라서 더욱 그러 했는지도 모른다. 살랑거리는 바람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가을의 문턱에서 군데군데 피어있는 억새들이 우리에게 하얀 손을 흔들어댄다. 가슴을 펴고 크게 심호흡을 하였더니 온 하늘과 가을의 경치가 내 안으로 다 들어온다. 호텔에 근무하는 송 과장을 선두로 울긋불긋한 행렬이 마치 장사(長蛇)의 미끄러짐 같이 유연하다. 뒤에서 올라오는 헉 헉 거리는 거친 숨소리가 문득 이제는 퇴출하여 없어진 검은 연기를 날리던 기관차를 연상하게 한다. 무엇이 이들을 환호하게 하는가, 회원들은 연방 “야호!”를 연호한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절경 아닌 곳이 없다. 거대한 한라산은 어머니, 올망졸망한 오름들을 자식처럼 품고 있고,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와 멀리 일출봉과 우도가 어우러져 한 폭의 상큼한 수채화를 그리고 있다. 올라가다 힘이 들면 쉬고, 뒤돌아보면 오름 밑으로 펼쳐진 조망이 장관이다.
바람이 시원한 오름 정상에서 나름대로 정성껏 싸고 온 간식 파티!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모르리라. 일상에서의 해방감과 근심 걱정을 벗어놓은 자유를 만끽하며 이마에 송송 돋아난 땀을 훔치면서 먹는 맛이란!!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서늘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어릴 적에 즐겨 부르던 동요의 한 구절이 저절로 튀어나오는 것은 아마도 지난여름의 무더위가 무척이나 더웠던 모양이다. 현직 초등 여교사인 김 선생이 아름다운 경치에 어쩔 줄을 모르고 사뭇 환호한다. 어쩌면 이 한 시간을 위하여 일주일 내내 견디었나보다.
다랑쉬오름을 내려와 길을 건너면 바로 아끈다랑쉬오름의 기슭이다. 아끈다랑쉬오름 굼부리가 여느 넓은 공연장을 연상하게 한다. 가을바람에 일렁이는 띠와 억새의 물결, 나는 조각배를 타고 파도 위에 출렁이는 것일까? 여기서는 누구나 시인이 된다. 가없이 하얗게 출렁이는 바다,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그 자연의 경관에 넋을 잃은 것일까, 한 여성회원이 그만 납작하게 엎으러 진다. 다행히 풀밭이 스펀지 역할을 해서인지 다친대가 하나도 없다. 그제야 회원들의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넘어지는 것도 전염이 되는지 이번에는 자영업을 하는 꽃집 아줌마가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는다. 건강한 웃음들이 억새들의 환호처럼 가을 들판에 왁자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곳, 우리 또한 수 없이 오른 곳, 하지만 올 때 마다 계절의 풍광은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반겨주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우리 마음 또한 그 때마다 새로워진다.
다랑쉬오름이여! 아끈다랑쉬오름이여!
아쉬움을 두고 떠나지만, 어깨의 무거운 책임도 이곳에 부려놓고 떠나지만, 신이 내려주신 유산으로 굳게 버티어 서서 자손만대에 영원 하라! 그리고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순리로 살아가는 자연의 섭리를 가르치고 참된 사랑을 배우고 깨닫게 하라.
오름을 뒤로하고 다섯 대의 차량이 신나게 질주한다. 앞서가는 일행의 차량에서 한 여성회원이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하얀 수건을 흔드는 모습이 신선하다.
수필 심사평
김재훈 『 시골 가던날 』
김재훈의 수필 『 시골 가던날 』을 추천한다.어느장르의 문학이건 글을 쓰는 일은 쉬운일이 아니다. 글쓰는 일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그 사람은 타고난 재능에 자부심이 넘치는 수재이거나 아니면 경망스러운 서픈짜리 글쟁이에 해당할 것이다.
글에는 어려운 글이 있고 쉽게 읽히는 글이 있는데 너무 뜻이 깊어서 어렵게
읽히는 철학사상을 담은 글의 경우 아무래도 어렵게 읽히는 문장일 밖에 없다.
그렇지만 깊은 사상이 담긴 그런 류의 형식으로 된 문장은, 문장 성격상 어쩔 수
없이 어려운 문장이 될밖에 없는 것이겠으나 그 밖의 대부분의 글들,
특히 문학작품의 글들은 쉽게 읽을 수 있는 문장이라 할 수 있으며
산문문장의 경우가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쉽게 읽히는 문장이라고 해서 그것이 절대 쉽게 써놓은 문장은 아니다.
글이란 쉽게 읽을 수 있는 문장 일수록 쉽게 쓰여진 글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남들이 쉽게 읽을 수 있게 한 글처럼 쓰기가 어렵고 힘든것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읽는 이에게 쉽게 읽을 수 있게 쓴 문장일수록 첫째, 읽는 이로 하여금
부담을 느끼지 않고 가벼운 기분으로 읽어갈 수 있게 해야한다.
그리하여 거침없이 문장을 경쾌하게 읽어 나가면서 은연중 문장속으로 끌려
들어가게 해야 하는 것이다.
김재훈의 문장은 그것이 갖추어진 감명깊게 하는 문장이다.
심사위원 : 김창직.김양수
수필 당선 소감 너무 기뻐서 고맙다는 말 밖에 생각나질 않습니다.학창시절부터 글짓기를 좋아했던 때도 있었지만, 자기의 계발을 못하고 직업 전선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고 나니 뭔가가 허전한 느낌! 산도 오르고, 낚시도 하고,사진에도 많은 관심을 갗고 생활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한국문인협회 제주특별자치도지회의 찿아가는 문학강좌를 통해서 문인에 길을 가고자 선택한 보람을 지금에야 가슴에 안았습니다. 문학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생각하고 느낀것을 어떠한 형태로든 표현 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을 겁니다. 즉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늘 문학과 접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저 자신도 지금에야 깨달았습니다. 알찬 내용을 담아 좋은 글을 쓰려고 많이 노력 했습니다. 내 나름대로 그럴뜻 하게 여기어 마침표를 찍었었지만 , 잠시 후 다시 읽으면 수정 해야 할 부분이 수월찮게 눈에 띄였습니다. 수정하고, 삭제하고, 삽입 하기를 여러차례, 앞으로 많이 읽고 쓰고 다듬어서 가슴속에 있는 진실을 담아내려고 더욱 노력 하겠습니다. 문인협회에 가입을 종용하고 오늘에 있기까지 진로를 열어주신 애월문인협회 김종호회장님과 문학이 무언지 수필이 무엇인가를 지도해 주신 수필가 허경자교수님께 고마움을 드립니다. 많이 부족하고 앳된 글을 심사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과 관계자 여러분께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준원(浚圓) 김재훈 (金在勳) ● 제주시 애월읍 애월출생 ● 애월 초. 중. 고 졸업 ● 국군종합행정학교 졸업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 졸업 ● 한국공항공사 정년퇴임(33년 재직) ● 현) 자영업 浚圓 = 마음을 깊이 써서 편안하게 살아가라 (깊을준, 둥굴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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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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