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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佛敎 이야기

◈ - 불국사 (佛國寺) / 경북 경주시 진현동 15-1

by 준원 김재훈 2011. 8. 26.

 




 

 

불국사 ( 佛國寺 ) 

불국사  -  http://www.bulguksa.or.kr

 

 

 

 

대한불교 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사찰이다.

 

또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불국사는 부처님의 화엄장엄세계인 불국토를 현세의 사바세계에 화현시킨 열정적인 신앙의 완성체이다.


 석가탑과 다보탑을 비롯한 수많은 국보문화재와 보물문화재가 있고

 매년 수백만의 내외국인 방문객들이 한국의 뛰어난 불교예술작품들이 자리한 불국사를 방문하고 있다

 

 

 

 

 

 

과거의 뛰어난 불교문화재 뿐만 아니라

현재의 불국사는 강원과 선원에서 수많은 스님들이 수행을 하고 계시고

한국불교의 지혜의 맥을 이어가는 중심적인 수행처이기도 하다.

 

 

또한 불국사는 한국의 불교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의 전시관으로서

세계에 한국불교와 한국의 불교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1600년 한국불교 수행정진과 지혜의 도량으로서 오늘도 끊이지 않는

용맹정진의 푸르른 서기가 흐르고 있는 곳이 바로 불국사이다.

 

 

 

전각배치도

 

 

 

 

 

 

 

 

<불국사 창건>

 


5천년 장구한 세월동안 발전해온 우리 민족문화의 정수로 천년세월 너머 현대의 무지한 중생들에게

 

불국토의 장엄함과 사모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불국사.

 

불국사의 창건에 관한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에는

서기 528년(신라 법흥왕 15)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迎帝夫人)의 발원(發願)으로 불국사를 창건하여

574년 진흥왕(眞興王)의 어머니인 지소부인(只召夫人)이 절을 크게 중건하면서 비로자나부처님(毘盧遮那佛)과

아미타부처님(阿彌陀佛)을 주조해 봉안했고,

670년(문무왕 10)에는 무설전(無說殿)을 새로 지어 《화엄경(華嚴經)》을 강설(講說)하였으며,

그 후 751년(경덕왕 10)에 김대성(金大城)에 의하여 크게 개수되면서 탑과 석교 등도 만들었다고 하였다.

 

 

 

 

 

 

다른 기록인, 《불국사 사적(事蹟)》에는 이보다 앞선 눌지왕(訥祗王) 때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하였고

경덕왕 때 재상(宰相) 김대성에 의하여 크게 3창(祠)되었다 했다.

처음에는 소규모로 창립되었던 불국사가 경덕왕 때의 재상 김대성에 의하여 대대적으로 확장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5 <대성효 2세부모(大城孝二世父母)>조에는 경덕왕 10년 김대성이 전세(前世)의 부모를 위하여 석굴암을,

현세(現世)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를 창건하였다고 하였으며,

김대성이 이 공사를 착공하여 완공을 하지 못하고 사망하자 국가에 의하여 완성을 보았으니 30여 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당시의 건물들은 대웅전 25칸, 다보탑 ·석가탑 ·청운교(靑雲橋) ·백운교(白雲橋), 극락전 12칸, 무설전(無說殿) 32칸, 비로전(毘盧殿) 18칸

 등을 비롯하여 무려 80여 종의 건물(약 2,000칸)이 있었던 장대한 가람의 모습이었다고 전한다.

 

 

 

 

 

 

 

 

자하문 단청

 

 

 

 

 

 

 

삼국유사

 

 

 

 

1910년대 범영루

 

 

 

 

 

<중건>
① 중수와 보수

전해오는 가장 오래된 기록인 고금창기(불국사 창건에 관한 최고의 기록)는 문헌적인 근거가 약해 불국사가 일정 기간에 창건되기 보다는 긴 세월동안 여러세력들에 의해 점차적으로 완성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오늘날의 일반적 견해이다

 

 

 

 

이러한 불국사의 거대가람으로서의 위용은 1593년 5월 의병과 승군의 활동으로 많은 피해를 입고

 복수심에 사로잡힌 왜군의 방화와 파괴등으로 큰 피해를 입어 2,000여 칸의 대가람이 전소되는 고난을 겪게 되었다.

이후 전란의 피해가 복구되면서 불국사도 국가의 지원 및 스님과 신도들의 노력에 의해

1604년(선조 37)경부터 복구와 중건이 시작되어 1805년(순조 5)까지 40여 차례에 걸쳐 부분적인 중수(重修)가 이루어졌으며

 1805년 비로전 중수를 끝으로 중수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이후 조선 후기 국운(國運)의 쇠퇴와 더불어 사운(寺運)도 쇠퇴하여 많은 건물이 파손되고 도난당하는 비운을 겪게 되었다.

 

 

 

 

 

1910년 불국사 전경

 

 

②  근세 복원
일제강점기인 1924년 대규모의 개수공사를 실시하여 다보탑의 해체보수,

법당의 중수 등을 실시하였는데 이때 다보탑 속에 있던 사리장치(舍利藏置)가 행방불명되었고

공사와중에 유물의 완벽한 복원과 보존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은 일제의 문화정책의 전시물로서 수난을 겪었다.

 

 

 

 

8 ·15광복 후인 1966년 석가탑의 해체복원 등 부분적 보수가 있었다가 1969년 불국사 복원위원회가 구성되고

 1970년 2월 공사에 착수, 1973년 6월 대역사(大役事)를 끝마쳤다.

이 공사로 주춧돌과 빈터만 남아 있던 무설전 · 관음전 · 비로전 · 경루(經樓) · 회랑(廻廊) 등이 복원되었고,

대웅전 · 극락전 · 범영루(泛影樓) · 자하문(紫霞門) 등이 새롭게 단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