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 칼럼 [아침을 열며] 똥막사리 이야기4 /김종호
김종호 시인, 전 애월문학회 회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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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햇살이 따사롭다 했는데, 회색구름이 낮게 깔린 하늘에서 눈발이 날리는 계절, 삶은 신산스럽고 한산하다. 그나마 막둥이(개)와 숲속을 산책을 하거나, 닭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평온하고 삶에 생기가 돈다. 저것들이 병아리에서 성계가 되는 동안 나는 저들의 가족이 됐고 저들 또한 스스럼없이 받아드린다. 마치 내가 어미인 듯이 저것들을 키웠다. 어쩌다 하늘에 황조롱이가 떠 있거나 까치소리만 나도 화들짝 놀라 닭장으로 달려가곤 했다.
그러던 것들이 어느새 다 자라서 부지런한 농부들처럼 제구실을 하느라 종일 부산을 떤다. 암탉은 알을 낳고는 "꼬꼬댁 꼬꼬댁" 소리치면서 동네방네 자랑하고, 수탉도 "꼬꼬댁! 꼬꼬댁!" 장한 일을 했다고 맞장구를 친다. 눈처럼 하얀 색인 수컷은 윤기 나는 갈기털하며, 크고 빨간 벼슬이 왕관처럼 빛나는 것이 마치 백마를 탄 왕자님 같아서, 나는 왕자님이라고 부른다. 이것들의 위계질서는 대단하다. 단 며칠 차이임에도 서열구분이 확실하다. 암탉 여섯 중 새까만 털빛이 아름다워 흑비둘기라고 부르는 오골계가 맏이로 카리스마가 대단하다. 흑비둘기는 자기보다 몸집이 두 세배하는 것들을 꼼짝을 못하게 휘어잡는다. 가장으로서의 수탉의 위의는 하늘을 찌른다. 백마를 탄 왕자처럼 암컷들을 시녀를 거느리듯 뒤를 따르게 하고, 벌레 하나를 보거나, 풀씨 하나를 봐도 "구구구" 암컷들을 불러서 먹인다. 놀라운 것은 저것들의 짝짓기에도 암수 간에 엄정한 예의범절이 있다는 것이다. 수컷이 다가가서 "구구구" 애교어린 몸짓으로 구애를 하면 암탉은 얌전하게 뒤를 살짝 낮추어서 수청의 표시를 할 때라야지, 억지나 강제는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다. 저들에겐 성폭행이라는 단어조차 없는 듯하다. 어쩌다 내가 닭장에 들어가면 왕자님은 불문곡직 발길로 차고 부리로 쪼면서 나를 내 쫓는다. 병아리 쩍 은혜도 모르는 괘씸한 푼수론 혼쭐을 내주고도 싶지만, 가족을 지키는 가장으로서 암컷들을 보호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이고 보면, 믿음직한 아들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밉지가 않고, 오히려 마음이 흐뭇하다. 누가 저들에게 불문율을 만들어줬는지, 닭들은 법을 만들지도 않고 초등학교도 다니지 않았지만 처음의 법, 우주 창조의 법을 지키며 산다. 천부의 역할과 질서를 지키는 자연으로 해 지구가 존속하는 것이지, 사람 때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반면에 사람들의 행태가 한심스럽다. 고조선은 팔조법만으로 나라를 다스렸다는데, 대한민국의 육법전서에 그 많은 법조문이 있음에도 한 시도 편할 날이 없이 우리사회는 늘 불안하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부터가 법을 지키지 않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다. 교육은 난파선처럼 유리하고, 사랑도 결혼도 전자계산기가 필요한 세상이 돼, 가정은 해체되고, 상처 입은 아이들이 밤거리를 떠돌고 있다.
이 겨울, 짤랑거리는 구세군의 작은 종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왜 눈물이 나는가.
해마다 구세군의 자선냄비에는 눈물겨운 인정들이 쌓인다고 한다. 코 묻은 동전이며 지폐와 아기의 돌반지, 퇴직기념 순금열쇠, 여행을 포기한 제주도 왕복항공권, 때로는 얼굴 없는 거액의 기부자, 금년에도 액면가 6800만원짜리 무기명 채권이 나왔다고 한다.
아직 이 나라가 망하지 않는 것은 정치를 잘 해서가 아니라 '착한 사마리아인'들이 있어서일 것이다. 겨우 사랑의 열매하나 가슴에 달고 어정거리는 내가 슬퍼지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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