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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佛敎 이야기

◈ - 부처님은 왜 연꽃 위에 앉거나 서계실까

by 준원 김재훈 2011. 8. 14.

 

 

 



 

부처님은 왜 연꽃 위에 앉거나 서 계실까?

 

 

 

 

 


우리는 연꽃이 불교를 상징하는 꽃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꽃하면 부처님을 떠올립니다.

영국인 고고학자 제임스 처치워드가 사라진 뮤 대륙의 실체를 밝히는

<뮤 대륙의 비밀(사라진뮤 제국)>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하였습니다.

이 책에는 연꽃이 사라진 뮤 제국을 상징하는 꽃으로 나옵니다.

그러니까 뮤 제국의 국화로 나오는 것입니다.    

제임스 처치워드에 따르면, 사라진 뮤 제국은 지금으로부터

1만2천년 전에 6만 4천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로,

 10개 종족으로 이루어진 6천4백만명의 인구가

2번의 지진과 2번의 화산 폭발로 태평양 밑으로 가라앉았다고 합니다.  

쿠이의 나라로도 불렸다고 하는데,

우리 고구려의 구句와 같은 음입니다.

연꽃이 불교를 상징하는 꽃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뮤 제국의 역사로부터 기산한다면 6만 6천년 이후가 됩니다.  

연꽃이 불교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는 불교의 최고 경전으로 알려진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 있습니다.

화엄경華嚴經 등에서 연꽃에 비유하여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는 마음을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이라고 하는데,

이를 연꽃에 비유하여 연화심蓮華心이라고 하였습니다.

불보살이 앉는 자리를 연화좌蓮華坐라고 하였습니다. 

 

 스님이 입는 법복을 연화의蓮華衣라고 하였습니다.

불교의 이상세계를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라고 하였습니다.

연꽃에서 나온 세계를 말합니다.

불교에서 차용해 간 연꽃이 갖는 여러 의미는

뮤 제국에서 연꽃이 가지고 있는 여러 의미의 반영일 수 있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자신들이 뮤 제국에서 왔다고 믿는다고 합니다.

이집트의 벽화에도 연꽃 안에서 태어나는 얼굴이 있습니다.

우리 고구려벽화에도 연꽃 안에서 태어나는 얼굴이 있습니다.

이집트와 불교는 아무 연관이 없다고 보는데,

 

그림이 뮤 제국이 남긴 그림과 너무 흡사하여,

뮤 제국의 것이 이집트로 건너간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합니다.  

우리 무신도에도 연꽃이 등장합니다.

하얀 한복을 입고 하얀 삼각산형 고깔을 쓴 세 분의 삼신이 있고,

가운데에 있는 삼신이 연꽃을 한 송이 들고 있는 그림입니다.

이 삼신이 보여주는 흰색, 삼각산형 고깔, 연꽃은 제임스 처치워드가 밝혀낸

 뮤 제국을 상징하는 문화 코드들입니다.

 

 흰색은 사라졌음을 의미하는 색깔이고, 삼각산은 뮤 제국을 상징하는 문양입니다.

 우리 무신도에 사라진 뮤 제국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처님이 연꽃을 비유로 제자를 가르치신 것도 부처님 시대에 뮤 제국에 대한 지식이

널리 퍼져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부처님이 연꽃 위에 앉아 계신 것도,

연꽃 위에 서 계신 것도 사라진 뮤 제국에 대한 추억을 나타낸 것인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불교에서 추구하는 해탈의 의미가 뮤 제국으로의 회귀를 뜻하는 것 일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다면, 우리가 불교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정보들을 검토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연꽃은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다.

 부처님은 설법을 하실 때에도 연꽃의 비유를 많이 들었다.

또한 선가에서 '염화시중'의 미소요, 이심전심의 묘법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어느날 영산회상에서 부처님이 설법을 하시지 않고 곁의 연꽃 한 송이를 들어 대중에게 보였는데

 제자중에 가섭존자가 홀로 미소를 지었다고한다.

이것은 마음으로 속속들이 전하는 도리로서 선종에서는 세곳에서 마음을 전한 이치라하여 중히 여기고 있다.

 

 

 연꽃이 불교의 상징적인 꽃이 된 것은 다음 몇가지 이유에서이다.

첫째, 처렴상정이다.
연꽃은 깨끗한 물에서는 살지 않는다. 더럽고 추하게 보이는 물에 살지만,

그 더러움을 조금도 자신의 꽃이나 잎에는 묻히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불자가 세속에 처해 있어도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오직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아름다운 신행의 꽃을 피우는 것과 같다.

둘째, 화과동시이기 때문이다.
연꽃은 꽃이 핌과 동시에 열매가 그 속에 자리를 잡는다.

이것을 '연밥'이라 하는데, 즉 꽃은 열매를 맺기 위한 수단이며 열매의 원인인 것이다.

이 꽃과 열매의 관계를 인(因)과 과(果)의 관계라 할 수 있으며

인과의 도리는 곧 부처님의 가르침인 것이다.

 


셋째, 연꽃의 봉오리는 마치 우리 불교신도가 합장하고 서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부처님 앞에 합장하고 경건히 서 있는 불자의 모습은

마치 한 송이 연꽃이 막 피어오르는 것과 흡사한 것이다.

이러한 몇가지 이유에서 연꽃은 불교의 상징적인 꽃으로 사랑을 받는 것이다.

 



<연꽃(蓮華)은 연화(蓮花)라고도 하는데

소택(沼澤, 늪지대)에 생(生)하는 숙근초본식물(宿根草本植物)이다.

 

꽃의 색향(色香)이 사랑스럽고 또 진흙 가운데 나서 청정(淸淨)한 꽃을 피우는 것으로

인도에서는 고래(古來)로 진중(珍重)한 보배로 여기고, 불교(佛敎)에서도 높여서,

불타(Buddha)나 보살의 좌(坐)를 흔히 연꽃의 받침으로 한다.

 

연꽃은 뿌리는 진흙 속에 뻗고 잎은 수면에 떠 매끄럽게 뻗어난 줄기 끝에 꽃이 피는데

 해가 뜨면서 서서히 피어나서 해가 지면서 서서히 오므리는 청황적백(靑黃赤白)의 우아한 꽃이다.

 연꽃은 진흙 수렁에서 자라면서도 물들지 않고 더럽혀 지지 않는 깨끗함과 향기로움을 지니고 있다.

연꽃은 꽃망울의 맺힘과 동시에 蓮實(연씨)도 함께 맺혀 나오고 꽃이 핌과 동시에

연씨도 함께 실과(實果)로 성장되어 나오다 꽃이 완전히 滿開(만개)했을 때

연씨도 완전히 익어 간다(인과동시,因果同時).

또한 연꽃은 처음 꽃잎이 피어나면서는 그 속의 열매를 보호하고,

 꽃잎이 떨어지면서 열매를 내 보이며, 꽃잎이 떨어지면 드디어 잘 익은 열매만 남게 된다.


 


이것은 연꽃의 속성으로 부처님의 一代時敎(일대시교)를 비유한 것으로

처음에는 방편(方便)의 가르침으로 시작해서

차츰차츰 제자들의 수준을 끌어올려 드디어는 방편은 떨어지고 진실한 모습,

즉 실상만이 남아 천지 우주 이대로 극락이요 불국토임을 연꽃으로 비유한 것이다.

 

 

연꽃의 색깔은 여러 가지로 피어 청련, 황련, 백련등으로 희유한 꽃이요, 아름다운 꽃이다.

 연꽃은 물 속에서 피는 꽃도 있고, 혹은 수면에 떠서 피는 꽃도 있고, 물밖에 높이 솟아 있는 꽃도 있다.

불교 경전에는 연꽃에 대한 말씀이 자주 나오고 특히 최고 경전이라고 불려지는 묘법연화경(묘법연화경),

華嚴經(화엄경)등 에서도 가르침을 연꽃에 비유하여 가르침을 폈다.

 

 

蓮華心(연화심)이란,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는 마음을 自性淸淨心(자성청정심)이라 하여

근본 마음은 물들지 않는 청정한 마음이므로

우리의 마음을 연꽃에 비유하여 표현한 것이다.

 

 蓮華座(연화좌)란 불보살이 앉으시는 자리를 말하는데

 이는 사바세계의 塵土(진토)와 같은 곳에 중생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물들지 않고 청정함을 연꽃에 비유한 것이다.

 

 蓮華衣(연화의)란 스님들의 법복인 가사를 뜻하는 것으로 가사의 청정함을 연꽃에 비유한 것이다.

 蓮華藏世界(연화장세계)란 불교의 가장 이상적인 세계로서 연꽃에서 出生한 세계,

또는 연꽃 중에 含藏(함장)된 세계란 뜻이다.

 

연화장 세계는 향수로 된 바다 가운데 커다란 연못이 피어 있듯

본래 法身佛(법신불)이 천잎의 연화대에 앉았는데

천 잎이 각각 한 세계가 되고 그곳에 화현한 일천 석가모니불이 계시며

다시 백억 나라에 모두 부처님이 계신 곳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