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조 (李海朝])
이해조 (李海朝) 1869년 2월 27일 - 1927년
호 열재(悅齋). 경기 포천(抱川) 출생. 언론계에 종사하면서 《제국신문》과 《매일신보》 등을 통해 30편에 가까운 신소설을 발표하였다.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종(自由鐘)》(1910)은 주인공들의 토론형식을 빌어 정치이념을 제시한 작품이며 《화(花)의 혈(血)》(1910)은 부패관리의 부정을 폭로한 소설이다. 대체로 그의 신소설은 신교육과 개화사상을 고취하면서 당시 사회의 부조리를 반영하였다. 《철세계(鐵世界)》는 프랑스의 베른의 소설을 번안한 것이며, 그 밖에도 한국의 고대소설을 신소설화하여 《춘향전(春香傳)》을 《옥중화(獄中花)》, 《심청전》을 《강상련(江上蓮)》 등으로 개작 발표하였다. 그 밖에 《춘외춘(春外春)》 《빈상설(上雪)》 《월하가인(月下佳人)》 《구마검(驅馬劍)》 《모란병(牡丹屛)》 《화세계(花世界)》 《원앙도(鴛鴦圖)》 《봉선화(鳳仙花)》 《비파성(琵琶聲)》 등이 있다.
줄거리
구마검
출처 = http://www.hongkgb.x-y.net
전남 장성에서 호방을 지낸 최씨는 퇴기 춘홍과 사이에서 두 딸을 두었는데 큰딸이 선초요,
작은딸이 모란이다. 선초는 기생이 되어 재색(才色)이 뛰어나 이름이 서울에까지 널리 퍼졌다.
호색한인 이도사(리시찰)는 선초의 소문을 듣자 음심(淫心)이 동해 고관들에게 손을 써 시찰자가 되고, 전라도 소요를 시찰한다는 핑계로 장성 고을까지 온다.
본래 포악하고 부정축재를 하며 많은 양민을 동학도로 몰아 넣는 패륜아 노릇을 하며 장성까지 온 리시찰은 간계로써 선초를 탐하고자 하나 실패로 돌아가자, 선초의 아버지 최호방을 누명을 씌워 가두어 두고 선초에게 접근한다. 선초는 최호방을 구하기 위해 아버지를 풀어 줄 것과 자신을 정실 부인으로 맞이할 것을 이도사에게 요구하고 몸을 허락한다. 첫날밤을 지낸 후 이도사가 최호방은 풀어 주었으나 선초에게는 정실 부인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10원짜리 지폐와 함께 절연장을 보내자 선초는 아편을 먹고 자살을 한다.
선초가 죽은 후 이도사는 밤마다 선초의 원귀에게 시달리고, 공금을 회령한 죄로 가마옥에 갇히게 되어 그의 가정은 파탄이 난다. 모란은 언니의 원수를 갚으려 기생이 되어 서울로 올라와 복수를 다짐한다. 그러던 중 감옥에서 나와 다시 벼슬을 노리는 이도사를 우연히 고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만나 그의 과거를 폭로함으로써 이도사의 재기를 불가능하게 한다. 이도사는 후에 거지가 되어 잘사는 모란의 집에 와 구걸을 하다가 망신을 당하고 쫒겨 난다.
대안동 네거리에서 남산을 바라보고 한참 내려가면 베전 병문 큰길이라. 좌우에 저자하는 사람들이 조석으로 물을 뿌리고 비질을 하여 인절미를 굴려도 검불 하나 아니 묻을 것 같으나, 그 많은 사람, 그 많은 마소가 밟고 오고 밟고 가면 몇 시 아니 되어 길바닥이 도로 지저분하여져서 바람이 기척만 있어도 행인이 눈을 뜰 수가 없는데, 바람도 여러 가지라. 삼사월 길고 긴 날 꽃 재촉하는 동풍도 있고, 오뉴월 삼복 중에 비 장만하는 남풍도 있고, 팔월 생량할 때 서리 오려는 동북풍과 시월 동짓달에 눈 몰아오는 북새도 있으니, 이 여러 가지 바람은 절기를 따라 으레 불고, 으레 그치는 고로 사람들이 부는 것을 보아도 놀라지 아니하고, 그치는 것을 보아도 희한히 여길 것이 없지마는, 이날 베전 병문에서 불던 바람은 동풍도 아니요, 남풍도 아니요, 서풍?북풍이 모두 아니요, 어디로조차 오는 방면이 없이 길바닥 한가운데에서 먼지가 솔솔솔 일어나더니, 뱅뱅뱅 돌아가며 점점 언저리가 커져 도래멍석만하여 정신차려 볼 수가 없이 팽팽팽 돌며 자리를 뚝 떨어지며, 어떠한 사람 하나를 겹겹이 싸고 돌아가니 갓귀영자가 쑥 빠지며 머리에 썼던 제모립이 정월 대보름날 구머리장군 연 떠나가듯 삼 마장은 가서 떨어진다.
그 사람이 두 손으로 눈을 썩썩 비비고 입 속에 들어간 먼지를 테테 뱉으며,
"에, 바람도 몹시 분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지. 내 갓은 어디로 날려 갔을까? 어, 저기 가 있네."
하더니, 한 손으로 탕건을 상투째 아울러 껴붙들고 분주히 쫓아가 갓을 집어 들더니, 조끼에서 저사(紵紗) 수건을 내어 툭툭 털어 쓰고 가는데, 그때 마침 장옷 쓴 계집 하나가 그 광경을 목도하고 그 사람의 얼굴을 넌짓 보더니, 장옷 앞자락으로 제 얼굴을 얼핏 가리고 행랑 뒷골로 들어가더라.
중부 다방골은 장안 한복판에 있어, 자래로 부자 많이 살기로 유명한 곳이라. 집집마다 바깥 대문은 개구멍만하여 남산골 딸깍샌님의 집 같아도 중대문 안을 썩 들어서면 고루거각(高樓巨閣)에 분벽사창(粉壁紗窓)이 조요하니, 이는 북촌 세력 있는 토호재상(土豪宰相)에게 재물을 빼앗길까 엄살 겸 흉부리는 계교러라.
그 중에 함진해라 하는 집은 형세가 남의 밑에 아니 들어, 남노비에 기구 있게 지내는 터인데, 한갓 자손복이 없어 낳기는 펄쩍해도 기르기는 하나도 못 하다가, 그 부인 최씨가 삼취(三娶)로 들어와 아들 하나를 낳아 놓고 몸이 큰 체하여 집안에 죽젓개질을 할 대로 하며, 그 남편까지도 손톱 반머리만치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마음에 있는 일이면 옳고 그르고 눈을 기어 가면서라도, 직성이 해토(解土) 머리에 얼음 풀어지듯 하게 하여 보고야 말더라.
최씨의 친정은 노돌이라. 그 동리 풍속이 재래로 제일 숭상하는 것은, 존대하여 말하자면 만신이요, 마구 말하자면 무당(巫堂)이라 하는, 남의 집 망해 주며, 날 불한당(不汗黨)질하는 것들을 남자들은 누이님?아주머니, 여인들은 형님?어머니 하여 가며 개화(開化) 전 시대에 칙사(勅使) 대접하듯 하여 봄?가을이면 으레 찰떡 치고 메떡 치고 쇠머리?북어쾌를 월수?일수 얻어서라도 기어이 장만하여 철무리 큰 굿을 하여야 세상일이 다 잘될 줄 아는 동리니, 최씨가 어려서부터 보고 듣고 자란 것이 그뿐이러니, 시집을 와서도 그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어디가 뜨끔만 하면 무꾸리질이요, 남편이 이틀만 아니 들어와 자도 살풀이하기라. 어디 새로 난 무당이 있다든지, 신통한 점쟁이가 있다면 남편 모르게 가도 보고 청해다도 보아 놓고 메를 올리라든가, 기도를 하라든가, 무당의 입이나 점쟁이 입에서 뚝 떨어지기가 무섭게 거행을 하니, 이는 최씨 부인이 무당이나 점쟁이를 위하여 그리하는 바가 아니라, 자기 생각에는 사람의 일동일정(一動一靜)으로 죽고 사는 일까지라도 귀신의 농락으로만, 물 부어 샐 틈 없이 꼭 믿고 정신을 못 차려 그러는 것이러라.
장사(壯士) 나자 용마(龍馬)가 난다고 함진해 집에 능청스럽게 거짓말 잘하고 염치없이 도둑질 잘하는 안잠자는 노파 하나가 있어, 저의 마님의 눈치를 보아 비위를 슬슬 맞춰 가며 전후 심부름은 도맡아하는데 천행으로 최씨 부인이 태기가 있어 아들 하나를 낳으니 노파가 신이 열 길이나 나서,
"마님, 마님의 정성이 지극하시더니 칠성님이 돌보셔 삼신(三神) 행차가 계시게 하셨습니다. 에그, 아기가 범연한가, 떡두꺼비 같은 귀동자지. 오냐, 무쇠 목숨에 돌끈 달아 수명 장수 하여라."
그 아이가 거적자리에 떨어진 이후로 무슨 귀신이 그리 많이 덤비던지 삼 일 안부터 빌고 위하는 것이 모두 귀신이라. 겨우 돌 지나 걸음발 타는 아이가 돈은 제 몸뚱이보다 몇십 갑절이 더 들었더라.
그런데 그 아이에게 펄쩍 잘 덤비는 여귀(女鬼) 둘이 있으니, 최씨 마음에 죽지 아니하였고 살아 있어 그 지경이면 다갱이에서부터 발목까지 아드등 깨물어 먹고라도 싶지마는, 죽어 귀신이 된 까닭으로 미운 마음은 어디로 가고 무서운 생각이 더럭 나며, 무서운 생각이 너무 나서 위하고 달래는 일이 생겨 행담(行擔)과 고리짝에다 치마저고리를 담아서 둔 방축 머리에 줄남생이같이 위해 앉혔으니 그 귀신은 도깨비도 아니요, 두억시니도 아니요, 못다 먹고 못다 쓰고, 함씨 집에 인연이 미진(未盡)하여 원통히 세상 버린 초취(初娶) 부인 이씨와 재취(再娶) 부인 박씨라. 사람이 죽어 귀신이 되어 산 사람에게 침노한다는 말이 본래 요사스러운 무녀(巫女)의 입에서 지어낸 말이라. 적이나 현철한 부인이야 침혹(沈惑)할 리가 있으리요마는, 최씨는 지각이 어떻게 없던지 노파와 무녀의 꾸며내는 말을 열 되들이 정말로만 알고 그 아들이 돌림 감기만 들어도 이씨 여귀, 설사 한 번만 해도 박씨 여귀, 피륙과 전곡(錢穀)을 아까운 줄 모르고 무당?점쟁이 집으로 물 퍼붓듯 보내다가, 고삐가 길면 디딘다더니 함진해가 대강 짐작을 하고 최씨더러 훈계를 하는데, 본래 함진해의 위인은 무능하지마는 선부형 문견으로 그같이 요사한 일이 별로 없던 가정이라.
"여보, 무당?판수라 하는 것은 다 쓸데없는 것이외다. 저희들이 무엇을 알며, 귀신이라 하는 것이 더구나 허무치 아니하오? 누가 눈으로 보았소? 설혹 귀신이 있기로 나의 전마누라가 둘이 다 생시에 심덕(心德)이 극히 착하던 사람인데 죽어졌기로 무슨 침탈(侵奪)을 하겠소? 다시는 이씨니 박씨니 하는 부당한 말을 곧이듣지 마오."
"죽은 마누라를 저렇게 위하시려면 똥구멍이라도 불어서 아무쪼록 살려 데리고 해로하시지, 남을 왜 데려다 성가시게 하시오? 누가 이씨?박씨의 귀신이 무던하지 아니하다오? 무던한 것이 탈이지. 귀신은 귀하답시고 한 번 만져만 보아도 산 사람의 병이 된다오. 인제는 아무가 앓든지 죽든지 나는 도무지 상관치 말리다. 걱정 마시오."
이 모양으로 몰지각하게 폭백하니 함진해가 어이없어 좋은 말로 타이르고 사랑으로 나간 후에 최씨가 전취 부인들이 살아 곁에 있는 듯이 강짜가 나서,
"할멈, 영감 말씀 좀 들어 보게. 아무리 사내 양반이기로 생각이 어쩌면 그렇게 들어가나?"
"영감께서 신귀가 그렇게 어두시답니다. 딱도 하시지, 돌아가신 마님 역성을 그렇게 하실 것 무엇 있나? 마님, 영감께서 돌아가신 두 마님과 금실이 아주 찰떡 근원이시더랍니다. 아무리 그러셨기로 누가 그 마님들을 옥추경(玉樞經)이나 읽어 무쇠 두멍에 가두었나? 떠받들어 위하시기밖에 더 어떻게 하시라고?"
"여보게, 염려 말게. 저년들 무서워 천금같이 귀한 자식을 기르며 두고두고 그 성화를 받을까? 내일 모레 영감께서 송산 산소에 다니러 가시면 산역을 시키느라고 여러 날 되신다데. 세차게 경 잘하는 장님 대여섯 불러 오게. 자네 말마따나 옥추경을 지독하게 읽어 움도 싹도 없게 가두어 버리겠네."
"에그, 너무나 잘 생각하셨습니다. 조금 박절하지만, 두고두고 성가스럽게 구는데, 시원하게 처치하여 버리시지. 아무리 귀신이기로 심사를 바로 가지지 아니하고 살아 계신 양반에게 말만 이르니 박절할 것도 없습니다."
"장안에 어디 있는 장님이 그중 영한구? 이 근처 돌팔이 장님들은 쓸데없어."
"아무렴, 그렇고말고요. 돌팔이 장님은 무엇에 쓰게요? 제까짓 것들이 그 귀신을 가두기커녕 범접이나 해보겠습니까, 덧들이기나 하지. 장님은 복차다리 사는 정장님이 아주 제일이라고들 하여요."
"그러면 그 장님을 불러다 일을 하여 보세."
약속을 단단히 하고 손가락을 꼽아 기다리다가 그 남편이 길을 떠난 후 경을 며칠을 읽었던지 이씨 여귀, 박씨 여귀 잡아 가두는 양을 눈으로 현연히 보는 듯이 최씨 마음에 시원 상쾌하여 누워 자는 그 아들의 등을 뚝뚝 두드리며 말도 못 하는 아이더러 알아들을 듯이 이야기를 한다.
"만득아, 시원하지? 만득아, 상쾌하지? 너의 전 어머니 귀신들을 다 가두어 버려서 다시 못 오게 하였다. 으응, 어머니는 그까짓 것들이 네게 무슨 어머니? 죽은 고혼이라도 어머니 노래를 들어 보려면 그까지로 행세를 했을까? 만득아, 그렇지, 응응. 인제는 앓지 말고 잘 자라서 어미의 애쓴 본의 있게 하여라, 응응. 에그, 그것이야 엄전하게 잘도 자지."
하며 입을 뺨에다 대고 쭉쭉거리는데, 안잠 마누라는 곁에 앉아 최씨의 말하는 대로 어릿광대같이,
"그렇고말고, 마님 말씀이 꼭 옳으시지. 어머니 노릇을 하려면 그까지로 행실을 했겠습니까?"
만득이 볼기짝을 저도 뚜덕뚜덕하며,
"아가, 어머니 말씀을 다 들었니? 이 다음에 어머니께 효성스러운 자손 되고 할멈도 늙게 호강시켜 다고."
가장 만득의 나이 장성하여 말을 아니 듣는 듯이 최씨가 꾸지람을 옳게 한다.
"오, 이놈, 어미의 애쓴 본의 없이 뜻을 거스르든지 할멈의 길러 준 공 모르고 잘살게 아니하여 주어 보아라. 내 솜씨에 못 배길라."
이 모양으로 주거니받거니 지각 반점 없이 지껄여 가며, 대원수(大元帥)
가 되어 십만 대병을 거느리고 적국을 한 북소리에 쳐 없앤 후 개선가(凱旋歌)나 부른 듯이, 날마다 둘이 모여 앉으면 그 노래 부르기로 세월을 보내더라.
연때가 맞느라고 하루 빤한 날 없이 잔병치레로 유명한 만득이가 경 읽은 이후로는 안질 한 번 안 앓고 잘 자라니, 최씨 마음에 정장님은 천신만 싶어 만득의 먹고 입는 일동일정을 모두 그 지휘하는 대로 남의 집 음식도 아니 먹이고, 색다른 천 끝도 아니 입혀, 본래 구기(拘忌)가 한 바리에 실을 짝이 없던 터에 얼마쯤 가입을 하였는데 그 명목이 썩 많으니,
세간 놓는 데 손보기
음식 보면 고수레하기
새 그릇 사면 쑥으로 뜨기
쥐구멍을 막아도 토왕(土王) 보기
닭을 잡아도 터주에 빌기
까마귀만 울어도 살풀이하기
족제비만 나와도 고사 지내기
이와 같이 제반 악징을 다 부리는데 정안수 그릇은 장독대에 떠날 때가 없고, 공양미 쌀박은 어느 산에 아니 가는 곳이 없으며, 심지어 대소가(大小家) 사이에 상변(喪變)이 있으면 백 일씩 통치 아니하기는 예사로 하더라.
우리나라에 의학이 발달 못 되어 비명(非命)에 죽는 병이 여러 가지로되 제일 무서운 병은 천연두(天然痘)라. 사람마다 으레 면하지 못하고 한 번씩은 겪어 고운 얼굴이 찍어매기도 하며, 눈이나 귀에 병신도 되고, 종신지질(終身之疾) 해소도 얻을 뿐더러, 열에 다섯은 살지를 못하는 고로 속담에 '역질 아니한 자식은 자식으로 믿지 말라'는 말까지 있은즉, 그 위험함이 다시 비할 데 없더니, 서양 의학자가 발명한 우두법(牛痘法)을 배워 온 후로 천연두를 예방하여 인력으로 능히 위태함을 모면하게 되었건마는, 누가 만득이도 우두를 넣어 주라 권하는 자 있으면 최씨는 열?스무 길 뛰며 손을 홰홰 내어젓고,
"우리집에 와서 그대 말 하지도 마오. 우두라 하는 것이 다 무엇인가? 그까짓 것으로 호구별성(戶口別星)을 못 오시게 하겠군. 우두 한 아이들이 역질(疫疾)을 하면 별성 박대한 벌역으로 더구나 중하게 한답디다. 나는 아무 때든지 마마께서 우리 만득에게 전좌하시면 손발 정히 씻고 정성을 지극하게 들이어서 열사흘이 되거든 장안에 한골 나가는 만신을 청하고, 입담 좋은 마부나 불러 삼현육각(三絃六角)에 배송(拜送) 한 번을 쩍지게 내어 볼 터이오. 우리가 형세가 없소? 기구가 모자라오?"
하며 사람마다 올까 봐 겁이 나고 피해 가는 역질을, 어서 오기를 눈이 감도록 고대하더니, 함씨의 집안이 결딴이 나려는지 최씨의 소원이 성취가 되려는지 별안간에 만득의 전신이 부집 달 듯하며 정신을 모르고 앓는데 뽀얀 물 한 술 아니 먹고 늘어졌으니, 외눈의 부처같이 그 아들을 애지중지하는 함진해가 오죽하리요. 김주부를 청하여라, 오별제를 불러라 하여 맥도 보이고 화제도 내어, 연방 약을 지어다 어서 달여 먹이라 당부를 하니, 함진해 듣고 보는 데는 상하노소(上下老少) 물론하고 분주히 약을 쉴새없이 달이는 체하다가, 함진해만 사랑으로 나가면 그 약은 간다 보아라 하고 귀신 노래만 부르는데, 그렁저렁 삼 일이 지나더니, 녹두 같은 천연두가 자두지족(自頭至足)에 빈틈없이 발반(發斑)이 되었는데, 붉은 반은 조금도 없고 배꽃 이겨 붙인 듯하더니, 팔구 일이 되면서 먹장 갈아 끼얹은 듯이 흑함(黑陷)이 되며 숨결이 턱에 닿았더라. 역질이라는 병은 다른 병과 달라, 증세를 보아 가며 약 한 첩에 죽을 것이 사는 수도 있고, 중한 것이 경해도 질 터이어늘, 최씨는 약은 비상(砒霜)국만치 여기고 밤낮 들고 돌아다니는 것이 동의 정안수뿐이니 이는 자식을 아편이나 양잿물을 타 먹이지 아니하였다뿐이지, 그 죽도록 한 일은 조금도 다를 것이 없어, 불쌍한 만득이가 지각 없는 어미를 만나 필경 세상을 버렸더라. 아무라도 자식 죽어 설워 아니할 이는 없으려니와 최씨는 설움이 나도 썩 수선스럽게 배포를 차리는데,
<저작권 보호와 관련하여 출판사측의 요청에 의해 중략합니다>
"여보게 진해, 내 말 듣게. 사람의 집안이 화목한 연후에 만사가 성취되는 법이어늘, 자네 연기가 노성한 터에 제가(齊家)를 그같이 불목히 하고 가사가 일패도지(一敗塗地)치 아니하겠나? 옛 성인의 말씀에, '독한 약이 입에 괴로우나 병에는 이롭고, 충성된 말이 귀에는 거스르나 행실에는 이롭다' 하였거늘, 자네는 어찌하여 충성된 말로 간하는 것을 청종치 아니할 뿐외라, 간하는 사촌을 구수(仇讐)같이 여기니 실로 한심한 일이로세."
"집안의 불목한 것이 저놈의 죄이지, 나는 아무 잘못한 일이 없습니다. 저놈이 내 집에 절족한 지 우금 몇 해에 우리 아버지?할아버지 산소를 차례로 면례를 하여도 제 집에 자빠져 현영도 아니하고, 집안에 우환이 그렇게 심하여도 어떠냐 말 한마디 물어 본 적 없고, 아니꼽게 편지자로 수죄 비스름하게 논란을 하여 보냈으니, 저 하는 대로 하면 어느 지경까지든지 분풀이를 못 할 바 아니나, 남의 청문(廳聞)을 위하여 참고 참는 나더러 꾸지람을 하시니 너무 원통하오이다."
"허허, 이 사람, 가위 고집불통일세. 저 사람이 자네를 미워서 간하는 말과 편지를 하였겠나? 아무쪼록 자네가 잡류배(雜類輩) 꼬임에 빠지지 말고 가도를 바르게 하도록 함이어늘, 자네는 그 뜻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구축하며 미워하였으니, 자네가 잘못이지 무엇인고?"
함진해가 다시 개구할 겨를이 없이, 당초에 그 삼촌 돌아가서 삼 년이 지나도록 영영 일곡도 아니한 일로부터, 일청 온 것을 부정하다고 구축하여 쫓던 일과 일청의 일반 병작도 못 해먹게 전답 팔아 가던 일과, 무육한 유모를 일청이 밥 먹였다고 박대하며, 요사한 무당년을 소개하여 제반 악증을 다하던 노파를 신임한 일까지, 임가의 허황한 말에 속고 조상의 백골을 천동한 일까지, 조목조목 수죄를 한 후, 일청의 편지를 내어 놓고 구절마다 들어 타이르고, 설명을 어찌 감동할 만치 하였던지, 진해가 처음에는 일일이 자기가 잘못한 것이 없다고 반대하던 위인이라서,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 없이 듣다가 자취 없는 눈물이 옷깃을 적시며 한숨만 자초아 쉬더라.
문장이 종회의 처리할 사건을 차례로 가부표(可否票)를 받아 종다수(從多數) 취결하는데,
"우리 문중 제일 소중한 바는 종통인데, 지금 진해의 연기는 오십지년이 되었으며 종부의 연기는 아직 단산지경은 아니나, 그러나 다년 중병에 반신불수가 되어 다시 생산할 여망이 없은즉, 불가불 입후(立後)를 하여야 누대 향화를 그치지 아니할 터인데, 당내에 항렬 닿는 아이가 없으면 원근족을 불계하고 지취 동성(同性)으로 아무 일가의 자식이고 소목만 맞으면 데려오겠지만, 진해의 사촌, 일청의 맏아들 종표가 비단 당내만 될 뿐 아니라 위인이 준수하니, 부재다언(不在多言)하고 그 아이로 정하는 것이 어떠한고?"
여러 일가가 일시에 한마디 말로,
"가하오이다."
문장이 또 한 문제를 제출하되,
"지금 진해의 연기는 과히 늙지는 아니하였으나, 다년 포병으로 가위 정신 상실자라 할 만한즉, 도저히 가사를 처리할 수 없고, 데려올종표는 아직 미성년한 아이인즉, 불가불 뒤보아 주는 사람(後見人)이 있어야, 패한 가세를 회복기는 이 다음 일이어니와, 목전의 봉제사(奉祭祀)?접빈객(接賓客)을 할 터인즉, 그 자격에 합당한 사람 하나를 천거하시오."
이때에 함만호가 썩 나앉으며,
"그 사람은 별로 구할 것 없이, 내 생각에는 일청이 외에는 그 소임을 맡길 사람이 다시 없을 듯하오이다."
문장이 여러 사람에게 가부를 물으니 또한 일구동성(一口同聲)으로 만호의 말을 찬성하는지라, 문장이 진해를 돌아보며,
"자네는 어제 잘못한 것을 깨달아 이제는 옳게 함을 생각할 뿐더러 일동일정을 자네 사촌에게 위임하고 불목히 지내지 말아야 가정을 보존할 것이니 아무쪼록 종중 공의(公議)를 위반치 말기를 믿으며, 만일 일향 회개치 아니하고 악인을 가까이하여, 오늘 회의 결정한 일이 헛일이 되면, 그제는 종벌(宗罰)을 크게 당하리니 조심하소."
또 일청을 부르더니,
"자네의 종가 위하는 직심은 이미 듣고 보아 아는 일이어니와, 여러 해 절적한 일은 잘못함이 아니라 할 수 없으니, 자네 사촌만 야속타 말고 지금 회의 가결된 일과 같이 내일 내로 즉시 종표를 데려다 종가에 바치고, 자네도 반이(搬移)하여 올라와, 한집에 있어 대소사의 치산을 전담 극력하여 누대 향화를 잘 받들도록 하소."
함진해가 전일 같으면 반대를 해도 여간이 아닐 것이요, 고집을 세워도 어지간치 아니할 터이로되, 본래 천성은 과히 악한 사람이 아니요, 무식한 부인과 간특한 하속에게 고혹한 바 되어 인사 정신을 못 차렸더니 문중 공론을 듣고 자기 신세를 생각한즉, 지난 일은 잘했든지 못했든지 말못되어 가는 가세에, 우환질고는 그칠 날이 없는데, 수하에 자질간 대신 수고하여 줄 사람이라고는 그림자 하나 없은즉, 양자는 불역지전(不易之典)하여야 할 것이요, 양자를 하자면 집안 아이 내어 놓고 원촌(遠寸)에 데려올 수도 없으며, 데려온대도 내 집이 전 세월 같지 않아, 한없는 진구덥을 치르고 배겨 있을 자식이 없을 것이니, 종중 회의에 못 이기는 체하고 종표를 양자하여 제 아비 시켜 뒷배를 보아 주게 하면, 줄어든 각사가 더 줄어질 여지는 없을 것이요, 제 부자가 아무 짓을 하기로 우리 내외 죽기 전 병구완과 먹도록 입도록이야 아니 하여 줄 수 없으니, 핑계 김에 잘되었다 하고 외양으로 천연스럽게 대답을 한다.
"종중 처결이 그러하시니, 무엇이라도 거역할 가망이 있습니까? 오늘부터라도 가사를 다 쓸어 맡기겠습니다."
"그렇지, 고마운 말일세. 주역(周易)에 불원복(不遠復)이라 하였으니, 자네를 두고 한 말일세. 사람이 누가 허물이 없겠나마는, 자네같이 오래지 아니하여 회복하는 자가 어데 또 있겠나? 허허, 인제는 우리 종가집을 위하여 하례할 만한 일일세."
하며 일청더러,
"자네 종씨 말은 저러하니 자네 말도 좀 들어 보세."
"종의도 이 같으시고, 종형의 뜻도 저러시니, 어찌 군말씀을 하오리까마는, 저 같은 위인이 열이기로 어찌 종형 하나를 따르겠습니까? 그러나 만일 형이 시키는 말 곧 있으면 정성껏 거행하겠습니다."
"자, 그러고 보면 장황히 더 의논할 것 없이 이 길로 자네가 떠나 내려가 종표를 데리고 올라오소. 아무리 급해도 그 아이 의복이라도 빨아 입혀야 할 터인즉, 자연 수일 지체는 될 것이니 오늘 내일 모레, 오늘까지 닷새 동안이면 하루 가고, 하루 오고 넉넉히 되겠네. 그날은 우리가 또 한번 다시 모여야 하겠네."
하며 일변 일청을 재촉하여 발행케 하고, 일변 진해를 다시 당부한 후 이 다음 다시 모이기로 문장 이하가 각각 헤어져 가더라.
여러 함씨들이 종표의 올라올 승시하여 일제히 모여 예를 행케 하고 내당에 들여보내어, 최씨 부인에게 모자지례로 뵈옵는데, 이때 최씨는 병은 아무리 깊었더라도 그 병이 부집 죄듯 왜깍지깍 세상 모르고 앓는 증세가 아니라, 시난고난 앓는 중 중풍이 되어 반신불수로 똥오줌을 받내되, 정신은 참기름송이 같아,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말까지는 하는 터이라, 일청이가 그 아들을 데리고 들어오는 양을 본즉, 눈꼬리가 창아곱패 되듯 하며, 앞니가 보도독보도독 갈리건마는, 일문 대종중이 모여 하는 일이요, 또 자기가 그 처신이 되었으니, 무엇이라고 말 한마디 할 수 없어, 다만 어금니 빠진 표범과 발톱 부러진 매와 같이, 할퀴며 물지는 못하고 속으로만 노리며 으르렁대어, 종표가 어머니 어머니 하며, 앞에 와 어리대는 것을 대답 한마디 없이 거들떠도 아니 보니 속담에, '병든 나무에 좀나기가 쉽다'고 자기의 소생도 아니요, 양자로 데려온 아이를 그 모양으로 냉대하니, 의리 모르는 노파 등속이 종회 이후에는 어엿이 나덤벙이지는 못해도 여전히 최부인에게는 왕래통신이 은근하여, 종표의 험담을 빗발치듯 담아 부으니 최씨는 더구나 미워하여 날로 구박이 자심하건마는, 종표는 일정한 정성을 변치 아니하고 똥오줌을 손수 받내며 조금도 어려운 기색이 없어, 밤낮 옷끈을 끄르지 아니하고 단잠을 잘 줄 모르며, 진해에게 혼정신성(昏定晨省)과 최씨에게 시탕(侍湯) 범절이 목석이라도 감동할 만하더라.
본래 사람의 염량 후박(厚薄)은 병중에 알기 쉬운 고로 말 한마디에 야속한 마음도 잘 나고, 고마운 생각도 잘 나는 법이라. 최씨가 종표 부자를 구수같이 미워하던 그 마음이 차차 감해지고, 감사하고 기특한 생각이 차차 더해지니, 이는 자기 일신이 괴롭고 아픈 중 맑은 정신이 들 적마다 오장에서 절로 솟아나오는 생각이라.
'에구 다리야, 에구 팔이야, 일신을 마음대로 놀리지 못하니 똥오줌을 마음대로 눌 수가 있나! 세상에 모를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내게 단것 쓴것 다 얻어먹던 것들은 웃느라고 문병 한 번 없지. 그것들은 오히려 예사지만, 안잠 할미로 말하면 제 죽기 전에는 나를 배반치 못할 터이어늘, 똥 한 번 오줌 한 번을 치우려면 군말이 한두 마디가 아니요, 그나마 목이 터지도록 열스무 번 불러야 겨우 눈살을 잡고 마지못하여 오니, 살지무석(殺之無惜)하고 의리부동한 것도 있다. 에구구 팔다리야, 종표는 기특도 하지. 제가 내게 무슨 정이 들었다고 어린것이 더럽고 괴로운 줄도 모르고 단잠을 아니 자고 잠시를 떠나지 아니하니 그 아니 신통한가! 에그, 집안이 어쩌면 그렇게 되었던지 돈냥 될 것은 모두 전당을 잡혀 먹고, 약 한 첩 지어 먹자 해도 일푼 도리 없더니, 시사촌께서 와 계신 후로는 그 걱정 저 걱정 도무지 모르고 지내지. 내가 내 일을 생각해도 벌역을 받아 병신 되어 싸지 않은가! 남의 말만 곧이듣고 내 집안 양반을 괄시하였으니.'
하여 하루 이틀 지나갈수록 세상 짓이 다 헛일을 한 듯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 가더라.
최씨 부인의 병이 감세가 있을 때가 되었든지, 약을 바로 쓰고 조섭을 잘해 그렇든지, 기거 동작을 도무지 못 하던 몸이라서 능히 일어나서 능히 앉으며, 지팡이를 짚고 방문 밖에도 나서 보니, 자기 생각에도 희한하고 다행하여, 이것이 다 시사촌의 구원과 종표의 정성으로 효험을 보았거니 싶어 없던 인정이 물 퍼붓듯 하는데,
"종표야, 날이 선선하다. 핫옷을 갈아입어라. 내 병으로 해서 잠도 못 자며 고생을 하더니, 네 얼굴이 처음 올 때보다 반쪽이 되었구나. 시장하겠다. 점심 먹어라. 병구완도 하려니와 성한 사람도 기운을 차려야지. 삼랑아, 도련님 진지 차려 드려라."
"저는 배고프지 아니합니다. 약 잡수신 지 한참 되어 다 내리셨겠으니 진지 끓인 것을 좀 잡수셔야지, 속이 너무 비셔서 못 씁니다."
"너 먹는 것을 보아야 내가 먹지, 너 아니 먹으면 나도 아니 먹겠다."
하며 자애가 오장에서 우러나오니, 세상에 남의 집에 출가하여 그 집을 장도감 만드는 부인이 하고많은데, 열에 아홉은 소견이 편협지 아니하면 심술이 대단하여, 한번 고집을 내어 놓으면 관머리에서 은정 소리가 땅땅 나기 전에는 다시 변통을 못 하건마는, 최부인은 고집을 내면 암소 곧달음으로 고삐 잡아당길 새 없이, 하고 싶은 일을 실컷 하고야 말면서도, 전후 사리는 멀쩡하여 잘잘못을 짐작 못 하던 터가 아니라, 한번 마음이 바로잡히기 시작하더니, 본래 무던하던 부인보다 오히려 못지 아니하여 처사에 유지함이 상등(上等)사회에 참례할 만하다.
하루는 자기 남편과 시사촌과 사촌동서와 종표까지 한자리에 모여앉은 좌상에서 최씨 부인의 발론으로, 종표를 중학교에 입학게 하여, 사오 년 만에 졸업한 후에 다시 법률전문학교에 보내어 공부를 시키는데, 생양정 부모의 정성도 도저하지마는, 종표의 열심이 어찌 대단하던지 시험마다 만점을 얻어 최우등으로 졸업을 하니, 함종표의 명예가 사회상에 현자하여 만장공천(滿場公薦)으로 평리원 판사를 하였는데, 그때 마침 우리나라 정치를 쇄신하여, 음양 술객과 무복(巫卜) 잡류배를 일병 포박(捕縛)하여 차례로 신문하는 중에 하루는 부녀 일명을 잡아들여 오거늘 종표의 내심으로,
'저 계집도 사람은 일반인데, 무슨 노릇을 못 해서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무녀 노릇을 하다가 이 지경을 당하노? 우리집에서도 아마 이따위 년에게 속고 패가를 했을 것이니 아무 때든지 그년만 붙들고 보면 대매에 쳐죽여 첫째로 우리집 설분(雪憤)도 하고, 둘째로 세상 사람에 후일 경계를 하리라.'
하는데 잡혀 들어오던 무녀가 신문장에를 당도하더니, 그 똘똘하고 살기가 다락다락하던 위인이 별안간에 얼굴빛이 사상(死相)이 되어 목소리를 벌벌 떨며 자초행위를 개개 승복(承服)하되,
"의신을 장하에 죽이신대도 어디 가 한가하오리까마는 죽을 때 죽사와도 한마디 아뢰올 말씀이 있습니다. 의신의 무녀 노릇 하압기는 다름이 아니라, 생애가 어려워 마지못해 하는 일인데, 한때 얻어먹고 살라고 우중으로 말마디가 신통히 맞사와 살면서 이 소문을 듣고 부르오니, 속담에 굿들은 무당이라고, 부르는 곳마다 가서 정성껏 큰 굿도 하여 주고, 푸념도 하여 준 죄밖에 다른 죄는 없습니다."
종표의 말소리가 본래 기걸하여 예사로 하는 말도 천장이 드르렁드르렁 울리는 터이라, 그 무녀의 말이 막 그치자 가래침 한번을 칵 배앝고,
"네 말 듣거라. 세상에 무슨 생애를 못 해먹어 요사한 말을 주작하여 사람을 속여 전곡(錢穀)을 도적하고 패가망신까지 시키노?"
"의신이 무녀 된 이후로 남북촌에 단골댁이 허구 많으셔도 불행히 다동 함진해 댁에서 그 댁 운수로 패가를 하셨지, 그 외에는 한 댁도 형세가 늘면 늘었지 줄으신 댁은 없사온대, 이처럼 분부를 하시니 하정에 억울하오이다."
함판사가 함진해 댁이라는 말을 들으니,
'옳다, 이년이 우리집 결딴내던 년이로구나. 불문곡직하고 당장 그대로 엎어 놓고 난장으로 죽이고 싶지마는, 법률 배운 사람이 미개한 시대에 행하던 남형(濫刑)을 행할 수 없고 중률이나 쓰자면 그년의 전후 죄상을 명백히 공초케 하여야 옳것다.'
하고 한 손 눙치며,
"네 말 같으면 남북촌 여러 단골집이 모두 네 공효로 형세를 부지한 모양 같고나. 그러면 네 단골 되기는 일반인데, 함진해 댁에서는 어찌하여 독이 패가를 하셨어?"
"녜, 아뢰기 죄만하오나, 그 댁은 그러하실밖에 수가 없으시지요. 그 댁 마님께서 귀신이라면 사족을 못 쓰시는데 좌우에서 거행하는 하인이라고는 깡그리 불한당년이올시다. 의신은 구복(口腹)이 원수라, 그 댁 하인의 시키는 대로 할 따름이지, 한 가지 의신의 계교로 속인 일은 없습니다."
"네 몸에 형벌을 아니 당하려거든, 그년들이 네게 와 시키던 말도 낱낱이 고하려니와, 너의 간교로 그 댁 속이던 일을 내가 이미 알고 있으니 잔말말고 고하렷다."
"그 댁 하인의 다른 것들은 다만 심부름만 하였지요마는 그 댁에서 안잠자는 노파가 그 댁 일을 무이어 자주장하다시피 하는데, 하루는 의신의 집에를 와서 그 댁 아기 죽은데 진배송을 내어 달라 하며, 그 댁 세세한 일을 모두 가르쳐 의신더러 알아맞히는 모양을 하여 별비가 얼마가 나든지 반분하자 하압기 말씀이야 바로 하압지, 무녀 되어서 그런 자리를 내어 놓고 무엇을 먹고 사옵니까? 그러하오나 마침 의신이 신병이 있사와 부득이하여 저의 동무를 천거하였삽더니 그럴 줄이야 누가 알았습니까? 그년이 천하에 간특하고 의리부동한 년이라, 의신의 그 댁 단골까지 빼앗아 제가 차지하고 흥화조산을 못 할 짓이 없이 하였습니다. 당초에 그 댁 영감께서 베전 병문에서 회오리 바람을 만나시는 것을 마침 지나다 제 눈으로 보고 앙큼한 마음으로 아무 때든지 그 댁 일을 한 번만 맡아 보면 귀신이 집어 댄 듯이 말을 하여 깜짝 반하게 하리라 한 것은 아무도 몰랐더니, 그년이 그 방법을 행할 뿐 아니라, 안잠 할미를 부동하여 세소한 일까지 미리 알고 가장 영한 체하여, 그 댁 재물을 빼앗아먹다 못하여 나중에는 임가라 하는 놈과 흉계를 내어, 그놈을 지관 행세를 시켜 비기를 써다 미리 고양 땅에 묻고, 그 영감을 감쪽같이 속여넘겨 여러 만금을 도적하여 먹으면서도 의신에게는 이렇다 말 한마디 없었사오니, 하늘이 내려다보시지, 의신은 그 댁 일에 일호도 죄가 없습니다."
"그러면 너는 어디 살고, 그년은 어디 있으며, 명칭은 무엇이라 하고 그년의 비밀한 계교를 어찌 알았뇨?"
"의신은 묘동 사압기로 묘동집이라고 남들이 부르압고, 국수당 무당은 성이 김가라고 그렇게 별호를 지었는지, 금방울이 금방울이 하고 모르는 사람이 없사오며, 그 비밀한 일은 그 댁에 가까이 단기는 하인들이 그년의 소위가 괘씸하여 의신 곧 보면 이야기를 하압기로 들었습니다."
함판사가 듣기를 다하고 사령을 명하여 금방울과 임지관을 성화같이 잡아들이라 분부하니, 묘동이 다시 고하되,
"동류의 일을 아무쪼록 덮어 가는 것이 서로 친하던 본의오나, 그년이 의신의 생애를 앗아 가지고 그 댁을 못살게 하온 일이 너무 분하고 가이없어 이 말씀이지, 그년이 바람 높은 기색을 미리 알아채고 동대문 안 양사골 제 아주미 집 건넌방 속에 임가와 같이 된장독에 풋고추 백히듯 꼭 들이백혀 있습니다. 그년을 잡으시랴 하면 제 집에는 보내 보실 것도 없이, 이 길로 양사골로 사령을 보내셔야 잡으십니다. 그년의 벗바리가 어찌 좋은지 사면에 벌레줄같이 늘어서 있어, 몇 시간만 지체가 되면 이 소문을 다 듣고 달아날 터이올시다."
판사가 사령에게 엄밀히 분부하여 양사동으로 보내더니, 거무하에 연놈을 항새족새하여 잡아들였는데, 신문 한 번도 하기 전에 예서제서 청촉(請囑)이 빗발같이 쏟아져 들어오는지라, 판사가 한편 귀로 듣는 족족 한편 귀로 흘리며 속마음으로,
'아따, 이년의 세력이 어지간치 않다. 이왕으로 말하면, 북묘 진령군만은 하고, 근일로 말하면 삼청동 수련이만은 착실한걸. 네 아무리 청질을 해도 내가 이왕 법관 모양으로 협잡하는 터이 아니니, 무엇이 고기되어 법을 굽혀 가며 호락호락히 청 들을 내냐! 이년, 정신없는 년, 내가 누구인 줄 알고 이따위 버르장이를 하느냐? 매 한 개라도 더 맞아 보아라!'
하고 서리같이 호령을 하여 족불리지로 잡아들여, 형구를 갖추어 놓고 천둥같이 으르며 일장 신문을 하는데, 금방울같이 안차고 다라지고 겁없는 인물도 불이 어찌 되든지 말끝마다,
"죽을 혼이 들어서 그리했으니 상덕을 입어 살아지이다!"
소리를 연해 하여 가며 전후 정절을 개개 승복하니, 임가 역시 발명무지라, 다만 고개를 푹 숙이고 살기만 발원하더라. 판사가 일변 고양군에 발훈(發訓)하여 최옥여를 마저 압상하여 일장 문초한 후 세 죄인을 모두 한기신(限己身) 징역으로 선고하고 자기 집에 돌아와 생양정 부모께 그 사실을 고하고서, 당장 노파와 삼랑들을 불러 세우더니,
"너희들의 죄상은 열 번 죽어도 남을 터이나 십분 용서하는 것이니, 댁 문하에 다시 발그림자도 하지 말고 이 길로 나아가되, 다른 집에 가서라도 그런 행실을 하여 내게 입렴 곧 되고 보면 그때 가서는 죽어도 한가 말렷다."
이 모양으로 호령을 하여 두 년을 축출하니, 최씨 부인이 그 아들 보기도 얼굴이 뜨뜻하여, 그 사지 어금니같이 아끼던 수하친병이 이 지경이 되어도 말 한마디 두호하여 주지 못하고, 오직 아들의 뜻대로만 백사?만사를 좇는데, 벽장 다락 구석에 위해 앉혔던 제석 삼신 호구 궁웅 말명 여귀 등 각색 명목과 터주 성주 등물을 모두 쓸어내다 마당 가운데에 쌓아 놓고 성냥 한 가지를 드윽 그어 불을 질러 태워 버리고, 다시 구기라고는 손톱 반머리만치도 아니 보는데, 그 뒤로는 그같이 번할 날이 없이 우환이 잦던 집안 식구가 돌림감기 한 번을 아니 앓고, 아이들이 나면 젖주럽도 없이 숙성하게 잘 자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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