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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탈출 日常脫出

♣ - 2부 : 정약용(남도유배지).남미륵사.홍길동생가.내장산(백양사).

by 준원 김재훈 2011. 8. 1.

 

 

 

 

 

2부 - 정약용(남도유배지).남미륵사.홍길동생가.내장산(백양사).

 

 

 

 

제주 -> 완도 -> 진도(관매도:1박) -> 해남 -> 강진(2박) -> 영암 -> 나주 -> 장성(3박) -> 고창

정읍 -> 김제(4박) -> 전주 -> 익산 -> 여산 -> 논산 -> 부여(5박) -> 홍성 -> 보령(6박)

대천 -> 서천 -> 장항 -> 군산(7박) - 변산반도 -> 함평 -> 무안 -> 목포(8박)  

 

 

 

11년 7월 21일 애마 39더 2222호 소나타 차량을 한일카훼리에 싣고 08시 20분 제주항을 출발하여

7월 29일 제주항에 도착 할때까지 8박 9일 동안의 여정을 5부로 나눠 사진을 올렸습니다.

 

 

 

해남시내에 있는 향교 명륜당 전경이다

 

 

 

 

 

백련사 입구다

승용차는 출입이 가능하지만 대형차는 출입 엄금이다.

걸어서 5분 거리라서 굳이 차량이 필요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나도 애마를 여기에다 주차하고, 왼쪽 옆을 보면 동백숲길이 있다

너무 좋은것 같다.

5분정도 숲길을 따라 올라 가면 바로 백련사다.

 

바로 밑에 사진이 입구이다

 

 

백련사에서 동백나무 숲길을 따라 가면

다산 정약용 선생의 남도 유배지인곳으로 연결된다

너무 좋아 권장하고 싶은 코스이다.

 

 

 동백숲길 길목

 

 

 숲길따라 백련사 가는 길

좌우로 동백나무가 빽빽하다.

 

전라남도 강진에 있는 사찰 백련사 

 

백련사 사적비 보물 제 1396호 지정되어 있다

밑에 사진에 설명 참조 하세요.

 

 

사찰 백련사 

 

사찰 백련사 

 

 사찰 백련사 

 

사찰 백련사  

 

 

내가 서 있는데 까지 승용차가 올라 올 수 있다 - 사찰 백련사 

 

 

정약용선생이 유적지로 올라가다

 

 정약용선생이 유적지로 올라가는 길목

 

나무뿌리계단 - 어둑침침하여 처리중이 되었네요

 

 

 다산초당 - 몇몇 분들이 글쓰기에 여념이 없었다

 

 

 

 

 천일각

앞에 나무가 가려져 지금은 조금만 보일뿐입니다

 

이곳 천일각에서 백련사까지 (다산초당 <- ->백련사)간의

숲길은 2009년 제10회 아름다운 숲길 전국대회(숲길부문)에서

아름다운 어울림상(장려상)을 수상한 코스 랍니다.

 

 

 

 

 

세계불교 미륵대종 총본산

남미륵사 입니다

 

남미륵사 입구의 불이문(不二門)

                                            불이의 경지에 이름을 상징하고 해탈문이라고도 한다

 

남미륵사 입구 코끼리 가족상

  

 

 

화방산남미륵사 일주문

 

화방산 남미륵사 일주문 이라는 커다란 현판이 걸려있다

양쪽기둥에는 절입구 불이문 기둥에 새겨진 문구와 같은

남무대비관세음(南無大悲觀世音)  계수관음대비주(稽首觀音大悲呪)의 말은

남무는 위의하여 받든다는 뜻이 담겨 있으니 대자대비 하신 관세음보살께 위의하여 받든다는 뜻이고

계수는 머리를 숙인다는 뜻이 있으니 관세음보살 대비주에게 머리숙여 귀의 한다는 뜻이다

 

 

 

세계불교 미륵대종 총본산인 남미륵사는 1980년 석법흥 스님이 창건하여

이후 법흥스님이 30여년 동안 새로운 건물을 중창하고

꽃과 나무로 사찰 안밖을 가꾸어 현재의 웅장하고도 아름다운 경관을 갗게 되었다. 

 

 

 

남미륵사에는 현재 동양 최대 규모의 황동 아미타불상이 있다

 

 

 

 

남미륵사 용왕전

 

남미륵사는 일주문에서 부터 경내에 이르는 길에  5백 나한상이 배치되어 있기도 하다.

 

 

남미륵사는 대웅전을 비롯한 시왕전. 33관음전. 만불전. 천불전. 팔각13층석탑

 

 

산신각 뒷편에 조성된 높이 25m 석불 해수관은상

 

사각 33석탑. 18m해수관음보살. 5m부부코끼리 가족상상등이 있다 

 

 

경내에 세워저 있는 14층 석탑 -  오른쪽 제일 높게 보이는 탑

 

 

아름다운 시설물들이 풍동마을 경관과 잘 어우러저 국내외에서 불자만이 아니라 많은 관광객이 찿는 답니다.

 

 

잘 다듬어지고 잘 정돈된 절 내부에 감탄사가 절로 납니다.

 

삼각대를 잘 세우고

배경도 신경을 써서 찍었는데

쥔공이 차렷 자세라서  조금은 딱딱한 모습

 

남미륵사 경내 전경입니다.

 

 동양 최대 아미타 부처님 좌불상으로 가던중에

조그만 터밭인데도 꽤가 잘 되어보입디다

 

 남미륵사

 

 동양 최대의 아미타 부처님 좌불상으로 무려 그 높이가 33m나 된다네요.

 

 

 남미륵사

 

 남미륵사의 동양 최대 아미타 부처님 좌불상으로 무려 그 높이가 33m

 

 

 남미륵사

 

남미륵사 

 

 동양 최대 좌불 부처님상을 배경으로 흔적을 남깁니다.

 

카메라 삼각대로 찍은 모습이라 어느 부분이 안찍혔습니다.

^^ 새 신발을 신었는데 ^^

 

 

 남미륵사의 현재 불사중인 만불전과 만불전 입구의 석탑

완공 되며는 23000불을 봉안 할수 있다고한다

 

이 만불전 안으로 들어서면 바로 앞에 3층건물 천정에 닿을듯

아주 높고 커다란 불상이 앞을 가로 막습니다.

 

 

관리하시는 분이 촬영금지 라네요.

 

 

남미륵사의

만불전과 만불전 입구의 석탑 

 

 

 만불전과 만불전 입구의 석탑 

 

만불전 뒷쪽

 

 

 

 남미륵사 입구의 코끼리 가족상

 

한마리의 코끼리상은 맞은편에..

 

 

세 계 불 교 미 륵 대 종 총 본 산

 남 미 륵 사

 

표지석이 선명 합니다

 

 

마을 어귀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아미타 황동대불이 돋보인다

 

 

강진 하멜풍차

 

강진 하멜풍차앞에서

 

하멜 기념관 전경과 기념품 판매점

판매점안에는 크고 작은 나막신들이 많았습니다

 

 

지금 한창 공사중이 였습니다 

앞모습만 담았습니다

 

 

 

 

 

나주시에 위치한 나주목객사 금성관이 모습이다 

 

중앙에 위패를 모시는 건물이 있고, 양쪽으로 손님이 묵는 방이 있다

 

 

 

 출입문인 망화루를 들어서면  삼도가 있고

중앙에 최근에 복원된 중삼문이 자리하고 있다

 

객사 중삼문을 들어서면 삼도가 있고, 객사인 금성관 바로 앞에는 내삼문터가 있다

 

 

 나주시내에 위치한 나주관찰부

 

 필암서원 주변정비 기념비 앞에서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에 있는 서원.사적 제242호.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를 기리기 위해 건립했다.

1590년(선조 23) 김인후의 문인 변성온(卞成溫) 등이 주도하여 기산리(岐山里)에 서원을 세웠는데

 

 

이 서원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1624년(인조 4) 복원되었다.

1662년(현종 3) '필암'으로 사액되었으며 1672년 지금의 위치로 이전했다.

1786년 양자징(梁子澂)을 추가 배향했다.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 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이 서원에 소장된 문서들은 보물 587호로 일괄 지정되어 있는데 총15책 65장의 필사본들로 고문서류이다.

이 자료들은 필암서원의 임원, 원생, 조선 후기 서원의 재정과 노비 소유,

서원의 운영사항과 지방관청 및 유림사회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홍길동 생가를 다녀 왔습니다.

 

 

홍길동생가

 

 

 

홍길동 테마 파크가 너무 광범위해서 몇군데만 둘러 봤습니다

지금은 공원화하여 안에 민가도 있고 야영도 하고 있었습니다. 

 

 

 

홍길동은 한국인을 대표하는 민중영웅이다.

역사상의 실존인물이며 허구적 소설의  주인공이다.

 

역사에서는 반역자, 또는 강도로 기록되어  있으나,

소설에서는 봉건제도에 맞서 만민평등의 이념으로 활빈당을 이끌고,

이상국인 일본 오끼나와의 율도국을 건설한 인물이다.

 

 

 

 

역사상 홍길동은 조선초 15세기 중엽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났으나

신분이 첩의 자식이라 관리등용을 제한하는 국법 때문에 출세의 길이 막혔다.

 

 

 

 

좌절과 울분속에서 출가하여 양반으로부터 차별받던 소외된 민중을 규합하여

활빈당을 결성한 후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실천적 삶을 살았다.

그러나 봉건적 조선왕조의 핍박을 받던 중 관군에 체포되어
           
          남해로 유배 되었으나 탈출하여 무리를 이끌고 오끼나와로 진출하였다.   
          그곳에서 조선에서 처럼 민중을 대변하는 민권운동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동안 홍길동의 역사적 실체가 왜곡되어 왔으나, 이 문제를 바로 잡으려는          

홍길동연구팀(장성군, 연세대학교국학연구회, 전남매일, 유구대학, 오끼나와관광국, 석원도문화원)의  3년
          에 걸친 끈질긴 노력 끝에 그 베일에 쌓인 비밀이 밝혀졌다.

 

 

 

 

 

 

 

 조선에서 뱃길로 3000리나 떨어진 일본 최남단의 섬 오끼나와에서 후반부 삶을 살
          았던 그곳에는 민권운동의 선구자 홍길동을 추모하는 기념비가 서있다. 이러한 홍
          길동의 생애 전반에 걸친 학술연구의 성과가 총체적으로 정리되었으며 500여년 전
          의 일본과 한국간의 교류사를 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에 장성군은 홍길동 생가터 주변에 5,700여평의 부지를 매입하였으며

생가터 발굴 작업 및 철저한 고증을 거쳐 생가를 복원하였고

2004년 5월 3일 홍길동 전시관을 개관하여 새로운 관광지로 발전하고 있다.

 

 

 

 

 

 

동학혁명군 전적지를 찿아서

 

 

이곳은 반봉건, 반외세의 정신으로 일어선 동학혁명군이 정부의 경군과 맞서 최초로 승전을 하며

격렬하게 전투를 치렀던 최대 격전지 입니다.

승전탑의 뒷면에는  동학혁명 100주년 기념 사업 추진위원회에서  작성한 비문과 시가 소개 되고 있다.

 

 

잘못된 정치와 행정을 일삼던 벼슬아치를 나무라며 시작한 동학농민운동의 투쟁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으로

동학군이 전주성을 점령하는 계기가 된 황룡전투의 전적지이다. 

 

1894년 동학농민군은 전주 점령 계획을 세우고 가장 좋은 장소로 황룡을 선택했다.

총알을 막을 수 있도록 대나무를 원통모양으로 엮어 만든 장태라는 신무기를 이용하여

동학농민군은 이 지역에서 승리를 거두고 전주를 점령하였다. 


1994∼97년 장성군에서 이곳에 승전기념공원을 비롯해 여러 시설물을 갖추어 놓았다.

 

 

 

 

주위 경관도 어울리게 꾸미고 있으며, 근처에 경군대장이었던 이학승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순의비도 볼 수 있다.

살아 있는 교육장으로서 역사와 시대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이곳은 집강소를 설치하여

농민 통치기반을 마련했던 곳으로도 뜻깊은 유적이다.  

 

 

 

 

백양사를 찿아서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백암산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이다.

632년(백제 무왕 33) 여환(如幻)이 창건하여 백암산백양사라고 했으며,

1034년(덕종 3) 중연(中延)이 중창하면서 정토사(淨土寺)라고 개명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갈참나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갈참나무

 

 

백암사의 정상모습

 

 

 

 

 

 

 

 

 

1350년(충정왕 2) 각진국사(覺眞國師)가 3창하고,

1574년(선조 7) 환양(喚羊)이 현재의 백양사라고 개칭했는데

이것은 환양의 〈법화경〉 독성소리에 백학봉에 있는 흰 양떼가 자주 몰려온 것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한다.

 1786년(정조 10) 환성(喚星)이, 1864년(고종 1)에는 도암(道巖)이 중건했다.

 

 

 

근세 이후에는 송만암(宋曼庵)에 의해 교세와 사운이 융성했다.

일제강점기에는 31본산 중의 하나였으며 현재는 26개의 말사를 관장하고 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3호)·

극락보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2호)·

사천왕문(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4호)·

명부전·칠성각·진영각(眞影閣)·보선각·설선당(說禪堂)·선실(禪室)·요사채·범종각 등이 있다

 

 

 

백양사 재흥에 힘쓴 태능(太能)의 소요대사부도(逍遙大師浮屠: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6호)와

고려 때 각진국사가 심은 것으로 전해지는 절 주위의 비자나무는 천연기념물 제153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절에서는 전통적인 재식(齋式)이 집전되는데

관조부(觀照部)·  전경부(轉經部)·  정근부(精勤部)·  송주부(誦呪部)·  범음부(梵音部)가 각각 행해진다.

 

 

 

 

 

..백제 무왕 때(632년)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명찰로 본래 이름은 백암사였고

1034년 중연선사가 크게 보수한 뒤 정토사로 불렸다

 

 

 

 

 

 

백양사는 백제 무왕 33년(623) 임진에 신라고승 여환(如幻) 선사가 범궁을 개창하고

고려 덕종 3년(1034) 갑술(甲戌)에 중연선사가 정토법문을 선양하기 위해 정토사로 이름을 고쳤으며

고려 충정왕 2년(1350) 경인에 왕사 각엄존자가 오래 머무른 이래

선교양종통조(禪敎兩宗統組) 청어 휴정 선사의 심인을 전해 받은 이들이 차례로 이어오며 백양사로 고쳐 불렀다.

 

 

 

 

입구에서 부터 사찰까지 맑은물이 계곡을 흘러 야영객들도 많은 편이 였다

 

 

 

 

 

 사찰까지 가는데 너무 좋았다

커다란 아름드리 나무로 그늘져 있으며 새소리랑 물 흐르는 소리가 어우러져 환상적이 였다

 

 

 

백양사의 맑은 물이 언제든지 경쾌한 소리를 내며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