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똥막사리 3
제민일보 칼럼 [아침을 열며]
김종호 시인 . 전 애월문학회장 . 논설위원
가을이 깊어간다. 한라산에 단풍이 한창이라 한다. 산굼부리 억새 하얀 물결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사뭇 스펙터클한 경관을 이루고 있으리라.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쌀쌀하고 검푸르게 거칠어가는 먼 바다의 해조음이 감회에 젖게 한다. 가을은 풍성하면서 백사장에 찍힌 아스라한 발자국을 한 번쯤 돌아보게 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나의 산방 똥막사리에 앉아 서녘바다로 지는 해를 보고 있노라니 이러 저러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오간다.
둘째가 마흔이 되도록 장가를 들지 않아서 속을 썩인다. 여기 저기 선을 보라는 데는 있지만 제가 선택하겠노라 고집이다. 이 소리 저 소리 듣기 싫다고 명절 때도 오지 않으니 어쩌랴, 속만 태운다
초란이도 그랬다. 초란이는 스피츠 몇 대 잡종 하얀 암캐의 이름이다. 하도 촐랑대어서 붙인 이름이지만 어떤 이는 난초이름 같다고도 하고, 또는 기생이름 같다고도 했다. 초란이는 네 배나 새끼를 낳고 키우면서 그녀의 신랑을 택할 때 한 번도 내 뜻에 따르지 않았다. 때가 되면 웬 수캐들이 몰려드는지 내 똥막사리가 때 아니 문전성시를 이룬다.
나는 사위를 고르듯이 요모조모를 까다롭게 따지는데 딱 내 눈에 드는 녀석이 있었다. 키가 훤칠하고 눈이 서글서글하고 먹물께나 들었음직한 놈이었다. 사람으로 치면 이조명가의 도령이라고나 할까. 도령은 한 시도 초란의 곁을 떠나지 않고 절절한 구애를 했다. 도령으로 낙점한 후 다른 녀석들은 얼씬도 못하게 몽둥이를 휘둘러 쫓아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쫓아다니는 녀석들 중에 털이 긴 발발이가 있었는데 집도 절도 없는 떠돌이임에 분명했다. 목줄띠도 없었고 한 번도 목욕한 적이 없는 듯 긴 털을 마치 넝마처럼 주렁주렁 걸치고 다녔다.
그 끈질김이 떠돌이 생활에서 습득한 야성일까. 문제는 초란이가 도령에게는 눈도 주지 않고 이 거지발싸개 같은 녀석을 좋아한다는 데 있다. 나는 초란의 선택이 도저히 이해도, 용납도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불결하기까지 했다.
그 다음 날 아침운동 갔다 오다가 못 볼 꼴을 보았다. 초란이와 떠돌이가 붙어 있는 게 아닌가. 생각 같아선 몽둥이질을 해대고 싶었지만 어쩌겠는가. 지가 좋다는데 딸 하나 없는 셈치자하고 눈을 돌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개의지 않고 한결같이 구애의 눈길을 주던 도령은 그 후에도 3일이나 더 버티다가 어슬렁어슬렁 떠나갔다. 그 뒷모습이 참 쓸쓸하고 섭섭했다. 그래도 초란의 사랑이 외모나 어떤 조건에 관계없이 선택했다는 것이 못내 섭섭하면서도 한 녘으론 대견하고 그 지조를 다시 보게 했다. 초란이의 순정은 나의 속물근성을 참 부끄럽게 했다.
우리 사회가 눈이 핑핑 돌 정도로 급변하면서 결혼 풍속도도 참 많이 변했다. 전에는 사랑과 인간 됨됨이에 관심이 많았지만 언제부턴가 돈과 권력과 미모 지상주의로 변했다. 잘 나가는 사람들끼리 더 잘 살려는 세상에서 가난한 3D업종 종사자와 농촌 총각들은 총각으로 늙어간다.
우리 이웃의 베트남 색시는 예쁘고 순수하고 부지런하다. 청정지역의 순정을 보면서 우리사회가 너무나 오염돼 타락하고 있구나, 생각하니 슬프다. 어렸을 때 뜻도 모르고 부르던 '사의 찬미'노래가사가 생각난다. '광막한 광야를 달리는 인생아/ 너는 무엇을 찾으려 하느냐//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싫다.' 현해탄에 몸을 던진 김순덕의 순애보는 고물상에서나 찾을 얘기가 되었지만, 그래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은 사랑도 쇼윈도에 진열된 상품이 되는 시대에 더욱 빛을 발하는 고전이 아닐까.
재작년 봄에 떠나 영 돌아오지 못하는 초란이 생각이 슬프게 하는 이 가을에 내 둘째 녀석이 해가 가기 전에 제가 사랑하는 짝을 만나기를 기원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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