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똥막사리
제민일보 칼럼 [아침을 열며]
김종호 시인 · 전 애월문학회장 · 논설위원
'나의 똥막사리'는 폐원한 과수원의 관리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외양간이나 농가의 연장과 허드레를 두는 곳을 막사리라고 한다. 거기에다 '똥'자를 붙여서 '똥막사리'라 하면 누구네 아주 작은 집이거나, 내가 사는 집을 스스로 낮춰 일컫는 제주말이다. 이따금 들르는 문우들은 그럴듯한 산방 이름이라도 지으라지만 객쩍은 일 같아 그냥 '똥막사리'라 했다.
공직을 은퇴하고서 하릴없이 방안을 서성거릴 때 괜히 아내의 눈치도 보이고, 무엇보다 내가 나에게 걸리적거리는 것이 싫었다. 내 저만치 남은 삶에 의미를 주려고 관리사의 내부를 개조해 쓰고 있다. 천천히 걸어서 30여분의 거리이다. 큰길을 버리고 부러 오솔길을 걷는 것은 과수원지대의 사계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봄이면 귤꽃 향기에 취하고, 여름이면 날마다 자라는 열매가 싱그럽고, 가을이면 척척 늘어뜨린 가지에 노란 귤들이 풍성하고, 겨울이면 겨울대로 설경이 눈부시다.
나의 똥막사리에 막둥이라는 개 한 마리를 기르고 있다. 나와 개는 인연이 아닌지 복구는 차에 치여서 죽고, 진숙이는 코에서 고름을 질질 흘리다가 보름 만에 죽었다. 초란이는 강집사네 와와가 늙어서 죽기 전 낳은 마지막 한 마리였다
초란이는 새끼를 세 배나 낳아서 잘 길러내고는 어느 날 나가더니 그만이었다. 몇 날을 찾아 헤맸으나 끝내 찾지를 못했다. 초란이는 스피치 몇 대 잡종견으로 작은 개였는데, 두 손으로 들어 올리면 반쯤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습기를 머금어서 애절했다. 나는 그 눈빛이 너무 좋아서 가끔씩 그녀를 들어 올렸다. 그 하얗고 조그만 초란이는 지금도 문득문득 나의 눈을 들여다보다가 가곤 한다. 초란이 이후, 다시는 슬픈 인연을 맺지 않으리라 하였는데, 어쩌다 운명처럼 막둥이를 키우게 된 사연은 이렇다. 어느 날 "깨깽깽" 죽는 소리에 화들짝 밖으로 나왔더니 웬 강아지 한 마리가 취나물 밭으로 도망쳐왔다. 사연은 이렇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사이에 두고 지척에 주사랑요양원이 있는데 근본도 없는 강아지가 자꾸 요양원 식당 주위를 뱅뱅 돌아서 그 때마다 쫓아낸다는 거였다. 그러려니 하고 말았는데 강아지는 갈 곳이 없는지 취나물 밭에 죽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림을 그리다가, 책을 읽다가도 녀석의 깽깽거리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튕기듯 밖으로 나오게 되고, 그 녀석은 어느 새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거였다. 비 오는 날에도 취나물 밭 담 밑에 웅숭그리고 있는 것이 영락없는 북한 아이들의 몰골이다.
그날 나는 점심으로 라면 하나를 끓여서는 차마 국물마저 넘길 수 없어 밖에다 두었더니 어느 새 씻은 듯이 빈 그릇이었다. '아, 이것은 운명' 뇌리를 스치는 무엇이 저를 거두리라 했다. 저 어린 것이 얼마나 사람에게 치였으면 나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것일까. 더욱 연민을 자아내었다. 보름만의 정성으로 막둥이와 나는 새 인연을 맺게 됐다
근본도 없는 떠돌이가 내게로 와서 벌써 3개월이다. 이제야 제법 의젓한 수컷이 돼 누런빛의 기름이 자르르 흐른다. 거기에다 정수리에 하얀 점과 네 발굽과 꼬리 끝도 하얀, 내 어디서 읽은 바로는 육백종으로 뼈대 있는 자손임에 분명하다. 나는 요즘 새벽마다 고내봉을 오르면서 행복하다. 막둥이도 꿩이며 고양이를 쫓느라 고내봉이 제 세상이다. 내 생애의 마지막 개, 막둥이. 나의 걱정은 막둥이가 먼저 죽어서 양지 바른 곳에 잘 묻어주는 것이다. 내가 먼저 죽어서는 막둥이가 다시 어디를 떠돌 것인가. 여하간 개의 평균수명이 16세라니 내가 최소한 91세까지는 살아야 한다는 얘기이고 보면 아득하다.
요즘 길거리에 버려진 반려동물들이 많다고 한다. 인간의 배리로 자연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
자연의 저주가 사뭇 두려운 시대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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