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 하회마을
CNN 선정한 / 국내관광지 100선 - 74
첫째,병산서원부터 보시는것이 좋겠습니다.
풍산에있던 풍악서당을 면학풍토가 훼손되어서 서애 선생30세때 이곳으로 옮기고 병산서당으로 개칭합니다.
선생께서 돌아가신후 존덕사를지어 위폐를 봉안한후 병산서원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철종14년에 사액을 받았으며,고종때두차례에걸처 서원훼철령에의해서 많은서원들이 철거되었지만
전국에 사당및서원합하여 47개소만 남겨놓은곳중 그한곳입니다.
안동지역에서는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오직두곳만이 남아있었습니다.
입구 정문인 復禮門(복예문)은 내가 이곳에서 다시한번 예를갖춘다.는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복예문을 들어서서 처다보시면 晩對樓(만대루)라는 현판이 보입니다.겹일곱칸2층마루이지요
병풍같은 푸른산 기운에취해 늦도록 편안하게 마주 대할만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2층마루에올라서 병산을 바라보세요.
평생에 여가없어 이름난곳 못왔더니,
백발이된 오늘에야 만대루에 올랐구나,
그림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펼처있고,
강물은 소리내며 밤 낮으로 흐르누나,
지나온 세월을 말을타고 달려온듯,
우주간에 내한몸이 오리마냥 헤엄치네,
평생에 이런경치 어디가서 다시보랴,
세월은 무정하다 나는벌써 늙어있네.
이런詩가 절로 나올것 입니다.
(그 옛날 학동들이 시도읊고 문장을 읽으며 공부하던곳 입니다.)
다음은 양쪽에 학동들이 거처하던곳으로 동쪽집은 東齋(동재),서쪽집은 西齋(서재)라합니다.
동재는 약간 낮게 지어젔는데 입교당에서 동재뒷편에 둥근 산을 바라볼수있게 하기위하여 見처리함이고,
집이 조금 틀어져 앉자있는데 그것은 입교당에서 바라볼때 험한산세를 안보이게 不見처리를 하기위함이라 합니다.
다음은 立敎堂(입교당)입니다.
주로 강학을 하든 장소이지요.
아비에게 효도하는 방법을 바르게 가르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애 류성룡 선생게서는 생전에 이곳에서 후학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식견이 부족하면 큰일을 도모할수 없을것이요,
재주가 고루미치지못하고 한곳에 치우처 있다면
사물에 부닦처 원만한 처리를 할수없는 선비가 되고 말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明城齋(명성재)는 원장께서 사용하시든방이고 그곳에는 조그만 마루가딸려 있습니다.
敬義齋(경의재)는 강학하든 스승이 사용하든방이온데 그방에는 서쪽으로 들창문이 한곳있습니다.
들창문을 열면 하회남산에있는 삼태봉이 바라보이는데 세분의 정승이 태어난다는 전설이 담겨져있기때문에
학동들에게 매일 처다보게하여 그뜻을 상기시키고 학업에 진력토록 하였다 합니다.
서애 선생(선조때 영의정), 선생의8대손 락파 류후조(고종때 좌의정)등 두분의 정승이 실제 태어나셨지요,
후원엔 350년된 배롱나무(백일홍)여러구루가 여름이면 붉게 피어 운치를 돋우어 준답니다.
장판각은 교재를 보관하던곳인데 화재나 습기를 방지하기위하여 떨어진곳에 높이 통풍구를두었습니다.
목판등은 국학진흥원 장판각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서애선생 사후에 후학 우복 정경세 공께서 주동이되어 존덕사(사당)을 지어
광해군6년에 선생의 위폐를 봉안함으로 인해서 비로서 병산서원 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봄,가을 두차레 정해진날에 향사를 올리며 지금까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전사청은 향사때 제물등을 준비하는 공간입니다.
고직사건물은 서원기능을 돕기위한 부속건물이온데 스승및 학동들의 식사등 수발을 들든곳이며
그앞에있는 달팽이모양처럼 생긴통시는 그들 하인들이 사용하든 화장실입니다.
이곳은 물살이 세어서 일반주택지로는 지기가 고여야 재물이 일어날것인데
지기가 고여있을 여가가없어서 택지로는 좋치못한곳이나 서원은 학동들이 빨리 배우고 익혀서 진출해야함으로
서원을 세우는데는 아주좋은 길지라 합니다.
주변에 소나무와 대나무를 심어서 절개가 곧고 속은비었으며.
추운겨울에도 그푸른빛을 읽치안는 대나무는 나의벗이요 스승이라하여
선비가 지녀야할 덕목아라하였고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버려서 타인과 내가 한몸과 같이되고
자연과 내가 하나가되는 호연지기를 길렀다 합니다.
다음은 하회마을로 들어오셔서
먼저 나룻배를 타시고 낙동강을건너 옥연서당에 당도합니다.
출입문인 看竹門(간죽문)을 들어서면 안쪽으로 서애선생께서 이곳에 거처하시며 지으신
간죽문 2란 詩가한수 붙어있습니다.
細雨春江上(세우춘강상) 봄되어 강위엔 보슬비 내리고,
前山淡將夕(전산담장석) 앞산엔 그윽하게 저녁노을 지는데,
不見意中人(불견의중인) 마음에 그리는 사람은 볼길없고,
梅花自開落(매화자개락) 매화만 홀로 피었다 지고있네,
看竹門 1
老翁罷午睡(노옹파오수) 노옹이 낮잠에서 막 깨어나
負手行曲庭(부수행곡정) 뒷짐지고 뜨락을 거닐도다
行處意易蘭(행처의이란) 거닐다가 기분 더욱 상쾌해지면
出門看修竹(출문간수죽) 문을 나서 대숲을 바라보네
適與江風會(적여강풍회) 강바람 이라도 불어 나부끼면
淸音散氷玉(청음산빙옥) 옥이 부숴지는 해맑은 소리
時有叩門人(시유고문인) 더러 날 찾는이 있는데
忘形誰主客(망형수주객 ) 누가 주인이고 나그넨지 몰라라!
(선생께서 57세때 관직에서 물러나서 이곳에 거처하실때 지으신 詩)
간죽문을 들어서면 서애선생 45세때 탄홍이란 중이10년간 시주해서 지어놓은 옥연서당이 있습니다.
문위에 붙어있는 옥연서당기는 선생께서 직접쓰신 서당기입니다.한문으로만 쓰여있기때문에 번역을해서 올렸습니다
玉淵書堂記(옥연서당기)
余旣作遠志精舍(여기작원지정사) 나는 이미 원지정사를 지어 놓았으나,
猶恨基村墟近, 未燁幽期(유한기촌허근, 미협유기)
마을이 멀지 않아, 그윽한 맛을 누리기에는 만족스럽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渡北潭, 於石崖東(도북담, 어석애동) 이에 북쪽으로 沼(소)를 풍? 돌벼랑 동쪽으로,
得異處焉(득이처언)기이한 터를 잡았는데,
前挹湖光(전읍호광) 앞으로는 호수의 풍광을 지녔고,
後負高阜(후부고부) 뒤로는 높다란 언덕에 기대었으며,
丹壁峙其右(단벽치기우) 오른쪽에는 붉은 벼랑이 치솟고,
白沙榮其左(백사영기좌) 왼쪽으로는 흰모래가 띠를 두른 듯 했다.
南望, 則群峰錯立(남망, 칙군봉착입) 남쪽으로 바라보면, 뭇 봉우리들이 둘쑥날쑥 섞여 서서,
拱挹如畵(공읍여화) 마치 두 손을 맞잡고, 읍하는 형상이한폭의 그림이요.
漁村數鮎(어촌수점) 어촌 두어 집이,
隱暎烟樹間(은영연수간) 나무숲 사이 강물에어리어 아른 거린다.
花山自北而南(화산자북이남) 화산은 북쪽에서 달려오다가 남쪽의
隔江相對(격강상대) 강을 대하고 멈추어 섰다.
寒影倒垂(한영도수)그 차가운 산그림자는,
半寢湖水(반침호수) 반쯤 거꾸로 호수에 드리워지는데,
纖波不起(섬파불기) 물결 한점 일지 않는 잔잔한 강물에,
金壁相涵(금벽상함) 금빛 달 그림자까지 담겨진듯한,
殊可玩也(수가완야) 관경이야 말로 매우 볼만한 것이었다.
地去人烟, 不甚遠(지거인연, 불심원) 이 곳이 인가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았으나,
而前阻深潭(이전조심담) 앞에 깊은 沼(소)가 있어,
人欲至者(인욕지자) 사람이 오고자 해도,
非舟莫通(비주막통) 배가 없으면 올 수가 없다.
每月出東峰(매월출동봉) 달이
안녕하세요. 하회촌입니다.
부용대(芙蓉臺)는 하회마을 북쪽편 강건너 보이는 절벽을 말합니다.
대부분은 하회마을만 둘러보고 가시지만 저와 함께하시면 하회마을 전체를 높은 절벽위에서 조망 할 수 있는 부용대(芙蓉臺)를 안내하여 드립니다.
부용대(芙蓉臺)로 들어오시는 길은 하회마을 쪽이 아니라 풍천면 파출소 앞으로 들어오셔야 합니다(지도참고).
부용대(芙蓉臺)로 올라 가는 입구 화천서원에는 넓은 무료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으며 준비하여 온 점심을 드실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부용대(芙蓉臺)권에는 300m 내에 화천서원(류성룡의 형 류운룡의 서원), 옥연정사(류성룡이 징비록을 쓴 정자)와 겸암정사(류운룡의 정자)가 있으며
450여년전 조선중기 시대를 살았던 걸출한 인물들의 삶과 한국적인 정자문화를 배울 수 있습니다.
낙동강 넘어 하회마을이 눈앞에 바라다 보이는 부용대(芙蓉臺) 절벽을 자연조경 삼아 지은 정자문화와 이순신과 권률을 천거하여
난세를 이끌었던 류성룡이 임진왜란 후 후세들에게 ‘다시는 이땅에 이런일이 있어서는 않되겠다고 반성하고
조심을 부탁하는 글’ 징비록(懲毖錄:징계하고 조심하라는 뜻)이란 이름으로 책을 썼던 현장을 보실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 후에도 끊이지 않은 전쟁과 난이 이어지는 한국 땅,
안동에서 징비록(懲毖錄)이라는 걸출한 책이 쓰여졌다는 것에 대하여 안동인들은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용대관광은 걸어서 약 1시간30분에서 2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절벽위에서 하회마을을 촬영하는 즐거움, 옥연정사의 마루에서 가족과 함께 사진을 찍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부용대 관광과 달리 하회마을(민속마을)은 입장료와 주차료를 내고 들어가며(코스 경비에 포함됨)
걸어서 둘러보게 됩니다.(약2시간 소요).
하회마을은 2시간으로 후딱 보기에는 좀 벅찬 곳입니다.
마을 전체가 넓고 마을 내에 배치된 집들이 워낙 많아서 한번에 다 볼려고 하기보다는
안내에 따라 몇 부분을 깊이있게 보는 형식을 취합니다.
안내는 신청하신 단체의 성격과 부탁하시는 관심사에 따라서 맞춤 형식으로 문화해설을 진행합니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일 경우는 선조들의 생활양식(의식주)과 옛날의 생활모습(민속)을 설명하여 드립니다.
전문인으로 구성된 단체일 경우 주거형태, 민속, 가문의 역사, 제례의식, 등 주제성있게 설명드립니다.
주말(토,일 오후 3시)에는 항상 하회별신굿탈놀이가 공연으로 1시간 동안 진행이 됩니다.
해학과 풍자, 폭소와 익살이 혼재된 하회별신굿탈놀이는 매일 많은 관람객들로 붐비며 외국인들의 한국문화 이해에 핵심이 되고 있습니다.
탈놀이에 배어있는 대사와 연기자들의 춤사위를 보면서 한국인들의 자유성과 흥을 곰곰히 생각하며 공감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하회별신굿탈놀이 홈페이지(www.hahoemask.co.kr)에서 미리 정보를 파악해 보시는 것도 학습에 도움이 됩니다.
하회탈은 고려시대 허도령이라는 마을 청년이 목숨을 걸고 만들었던 전설이 전해지며 한국적인 얼굴을 표현하는 면에서 신기에 가까운 미를 볼 수 있습니다.
탐방객이 원하실 경우 토요일과 일요일 하회별신굿 탈춤공연을 관람할수 있는 안내를 해 드립니다.
하회별신굿탈놀이에는 매주 많은 관람객들로 붐비고 있으며
특히 외국인 관광객들의 관심은 대단합니다.
병산서원권은 병산서원 만을 주제로 탐방을 합니다.
조선시대 지역민이 세운 사립학교(私立學敎)-류성룡의 학문적인 세계를 이어가며
학문과 제례를 통한 통합의 장소였던 서원의 모습을 배울 수 있는 곳입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한국의 가장 유교적인 건축물로 지목한 ‘만대루’를 보고 올라가 보실 수 있습니다.
‘만대루’에서 앉아 문화해설을 듣는 기회를 제공하여 드립니다.
사전에 알고 싶은 것에 대하여 미리 말씀하여 주시면 진행에 큰 도움이 되며 알찬 시간여행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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