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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정보 旅行情報

◈ - 097 / 구례 : 화엄사

by 준원 김재훈 2014. 1. 18.

 

 





구례 : 화엄사

 

CNN 선정한 / 국내관광지 100선 - 97


 

 

 

 

 

천년의 화엄성지 화엄사 창건 연혁

 

 

 

백제시대

백제 성왕 22년(544)에 인도 스님이신 연기조사께서 대웅상적광전과 해회당을 짓고 화엄사를 창건 후,

백제법왕(599)때 3천여 명의 스님들이 계시면서 화엄사상을 백제 땅에 꽃피웠습니다

 

 

 

신라시대

 

신라시대는 신라 선덕여왕 14년(645)에 자장율사가 부처님 진신사리 73과를 모시고

4사자 3층 사리석탑과 공양탑을 세우셨습니다.

 

원효성사는 해회당에서 화랑도들에게 화엄사상을 가르쳐 삼국통일을 이루었습니다.

또 문무왕 17년(677)에 의상조사는 2층 4면 7칸의 사상벽에 화엄경을 돌에 새기고

황금장육불상을 모신 장육전 법당(지금의 각황전)과 석등을 조성하였습니다.

경덕왕(742~764)때 이르러 8원 81암자로 화엄불국 연화장세계의 면모를 갖추고,

신라말기 헌강왕(875)때 도선국사는 동오층석탑과 서오층석탑 조성과 더불어

화엄사 중흥조가 되시면서 화엄사가 대총림으로 승격되었습니다

 

 

고려시대

 

고려시대는 고려 태조 26년(943)에 왕명으로 고려 최초로 화엄사를 중수하였고,

홍경선사가 퇴락한 당우와 암자를 중수하였습니다.

문종(1047~1083)때 대각국사 의천에 의하여 중수,

인종(1126~1146)때 정인왕사가 중수, 명종 2년(1172)에 도선국사비 건립,

충렬왕(1236~1308)때 원소암 중건, 충숙왕(1313~1330)때 조형왕사에 의한 전면적인 보수를 하였습니다

 

 

조선시대

조선시대에 세종 6년(1426)에 선종대본산으로 승격된 화엄사는

배불의 와중에도 설응, 숭인, 부휴, 중관, 무렴 등의 고승대덕들에 의해 법석의 요람을 이루었습니다.

임진왜란(1592~1598)때는 호남의 관문 구례 석주관에서 승병 300여 명을 조직하여 왜군에 맞서 싸웠으나

이 앙갚음으로 왜장 가등청정은 화엄사를 전소시키기에 이릅니다.

인조(1630~1636)때 벽암선사와 문도들이 대웅전 등 몇몇 건물을 중건하고,

숙종(1699~1703)때 계파선사와 문도에 의하여 장육전 자리에 현존하는 목조건물로는

국내 최대규모로 웅장한 각황전 건립과 더불어 선교 양종대가람이 되었고,

근세에 이르러 도광대종사의 전면적인 중수에 힘입어 지금의 화엄사로 중흥할 수 있었습니다.

 

 

 

 

문화재 소개

 

영산회괘불탱

 

화엄사 영산회괘불탱(국보 301호)
종목 : 국보 301호
명칭 : 화엄사영산회괘불탱(華嚴寺靈山會掛佛幀)
분류 : 불화
수량 : 1폭
지정일 : 1997.09.22
소재지 :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12 화엄사
시대 : 조선 효종
소유자 : 화엄사
관리자 : 화엄사

 

석가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모습인 영산회상을 그린 괘불이다.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을 말한다.

화엄사에 있는 이 괘불의 크기는 길이 11.95m, 폭 7.76m이다.

석가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보현보살과 사천왕상 등이 배치되었다.

화면 중앙의 석가불은 높다랗게 만둘어진 단의 연꽃받침 위에 앉아 있으며,

마귀를 물리친다는 의미의 손가락을 땅으로 향한 손모양을 취하고 있다.

둥근 얼굴과 어깨에서 부드럽고 원만한 느낌을 주고 필선은 매우 섬세하고 치밀해 세련미를 더한다.

석가불 좌우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석가를 모시며 서 있다.

사천왕 중 2구는 그림의 하단에, 2구는 상단에 배치해 마치 네 모서리를 지키는 것처럼 보인다.

각 상들의 얼굴은 둥글고 커다란 눈에 작은 코와 입, 길다란 귀를 가지고 균형잡힌 모습으로 서 있다.

홍색과 녹색을 주로 사용하였고 중간색을 사용해 은은하면서도 밝은 느낌을 주며 채색무늬와 금색무늬가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조선 효종 4년(1653)에 만들어진 이 괘불은 각 상들의 늘씬하고 균형잡힌 형태,

밝고 선명하며 다양한 색채, 치밀하고 화려한 꽃무늬장식 등에서 17세기 중엽의 불화에서 보이는 특징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석등(국보 12호)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국보 12호)
종목 : 국보 12호
명칭 : 화엄사각황전앞석등(華嚴寺覺皇殿앞石燈)
분류 : 석등
수량 : 1기
지정일 : 1962.12.20
소재지 :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12 화엄사
시대 : 통일신라시대
소유자 : 화엄사
관리자 : 화엄사

 

 

화엄사 각황전 앞에 세워진 이 석등은 전체 높이 6.4m로 한국에서 가장 커다란 규모이다.

석등은 부처의 광명을 상징한다 하여 광명등(光明燈)이라고도 하는데,

대개 사찰의 대웅전이나 탑과 같은 중요한 건축물 앞에 배치된다.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3단의 받침돌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올린 후 꼭대기에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다.

8각 바닥돌 위의 아래받침돌에는 엎어놓은 연꽃무늬를 큼직하게 조각해 놓았고,

그 위로는 장고 모양의 가운데 기둥을 세워두었다.

장고 모양의 특이한 기둥형태는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유행했던 것으로,

이 석등은 그 중에서도 가장 전형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다.

 

기둥 위로는 솟은 연꽃무늬를 조각한 윗받침돌을 두어 화사석을 받치도록 하였다.

8각으로 이루어진 화사석은 불빛이 퍼져나오도록 4개의 창을 뚫어 놓았다.

 큼직한 귀꽃이 눈에 띄는 8각의 지붕돌 위로는 머리 장식이 온전하게 남아있어 전체적인 완성미를 더해준다.

이 석등은 통일신라 헌안왕 4년(860)에서 경문왕 13년(873) 사이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석등 뒤에 세워진 각황전의 위용과 좋은 조화를 보여준다.

약간의 둔중한 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활짝 핀 연꽃조각의 소박미와 화사석·지붕돌 등에서 보여주는

웅건한 조각미를 간직한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 작품이다

 

 

 

 

 

사사자삼층석탑(국보 35호)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국보 35호)
종목 : 국보 35호
명칭 :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華嚴寺四獅子三層石塔)
분류 : 석탑
수량 : 1기
지정일 : 1962. 12. 20
소재지 :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12 화엄사
시대 : 통일신라시대
소유자 : 화엄사
관리자 : 화엄사

 

지리산 자락에 있는 화엄사는 신라 진흥왕 5년(544)에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세운 절로,

호남 제일의 사찰답게 많은 부속 건물과 화엄사 각황전앞석등(국보 제12호), 화엄사 동오층석탑(보물 제132호),

화엄사 서오층석탑(보물 제133호), 화엄사 원통전전사자탑(보물 제300호) 등의 중요한 유물들이 전해온다.

탑은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절 서북쪽의 높은 대지에 석등과 마주보고 서 있으며,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다.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천인상(天人像)을 도드라지게 새겼는데,

악기와 꽃을 받치고 춤추며 찬미하는 등의 다양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가장 주목되는 위층 기단은 암수 네 마리의 사자를 각 모퉁이에 기둥삼아 세워 놓은 구조로, 모두 앞을 바라보며

입을 벌린 채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 있다. 사자들에 에워싸여 있는 중앙에는

합장한 채 서있는 스님상이 있는데 이는 연기조사의 어머니라고 전하며,

바로 앞 석등의 탑을 향해 꿇어앉아 있는 스님상은 석등을 이고 어머니께 차를 공양하는 연기조사의 지극한 효성을 표현해 놓은 것이라 한다.

탑신은 1층 몸돌에 문짝 모양을 본떠 새기고, 양 옆으로 인왕상(仁王像), 사천왕상(四天王像), 보살상을 조각해 두었다.

평평한 경사를 보이고 있는 지붕돌은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이 있으며, 처마는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받침돌인 노반(露盤)과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만이 남아있다.

각 부분의 조각이 뛰어나며, 지붕돌에서 경쾌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어

통일신라 전성기인 8세기 중엽에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위층 기단의 사자조각은 탑 구성의 한 역할을 하고 있어

불국사 다보탑(국보 제20호)과 더불어 우리나라 이형(異形)석탑의 쌍벽을 이루고 있다.

 

 

 

 

 

각황전(국보 67호)
 

 

 

화엄사 각황전(국보 67호)
종목 : 국보 67호
명칭 : 화엄사각황전 (華嚴寺覺皇殿)
분류 : 사찰건축
수량 : 1동
지정일 : 1962.12.20
소재지 :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12 화엄사
제작시기 : 조선 숙종 25년(1699)부터 약 4년간
소유자 : 화엄사
관리자 : 화엄사

 

 

화엄사는 지리산 남쪽 기슭에 있는 절로 통일신라시대에 지었다.

조선시대에는 선종대본산(禪宗大本山) 큰절이었는데,

임진왜란 때 완전히 불타버린 것을 인조 때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래 각황전터에는 3층의 장륙전이 있었고 사방의 벽에 화엄경이 새겨져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파괴되어 만여점이 넘는 조각들만 절에서 보관하고 있다.

 

조선 숙종 28년(1702)에 장륙전 건물을 다시 지었으며, ‘각황전’이란 이름은 임금(숙종)이 지어 현판을 내린 것이다.

이 건물은 신라시대에 쌓은 것으로 보이는 돌기단 위에 앞면 7칸·옆면 5칸 규모로 지은 2층 집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라 매우 화려한 느낌을 준다.

건물 안쪽은 위·아래층이 트인 통층으로 3여래불상과 4보살상을 모시고 있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인데, 벽쪽 사방으로 돌아가면서 경사지게 처리하였다.

화엄사 각황전은 건물이 매우 웅장하며 건축기법도 뛰어나 우수한 건축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