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詩 와 문학文學

◈ - 조지훈 (趙芝薰) / 승무 외 12 편

by 준원 김재훈 2009. 2. 25.

 

 






 

 조지훈(趙芝薰)

 

조지훈(趙芝薰)

 

 

본명 : 조동탁(趙東卓)

1920년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 출생

1939년 정지용의 추천으로 {문장}에 <고풍의상(古風衣裳)>, <승무(僧舞)>, <봉황수(鳳凰愁)> 발표하여 등단

1941년 혜화 전문학교 문과 졸업, 오대산 월정사 불교 전문 강원 강사 역임

1946년 조선 청년 문학가 협회 조직

1950년 문총 구국대 기획위원장 역임

1968년 한국 시인 협회장 역임

1968년 사망

1973년 {조지훈 전집} 발간

 

시집 : {청록집}(공동 시집 1946), {풀잎 단장(斷章)}(1952), {역사 앞에서}(1959), {여운(餘韻)}(1964)

 

 

풀잎 단장(斷章)

 

무너진 성터 아래 오랜 세월을 풍설(風雪)에 깎여 온 바위가 있다.

아득히 손짓하며 구름이 떠 가는 언덕에 말없이 올라서서

한 줄기 바람에 조찰히 씻기우는 풀잎을 바라보며

나의 몸가짐도 또한 실오리 같은 바람결에 흔들리노라.

아 우리들 태초의 생명의 아름다운 분신으로 여기 태어나,

고달픈 얼굴을 마주 대고 나직이 웃으며 얘기하노니

때의 흐름이 조용히 물결치는 곳에 그윽이 피어오르는 한떨기 영혼이여.

 

 

 

고전적인 정신의 추구를 내세우면서 해방 직후의 혼란을 헤쳐나온 조지훈은 절제와 균형과 조화의 시를 통해 자연을 노래하고 자기 인식에 몰두하게 된다.

 그리고 전쟁의 고통 속에서 사회적 현실에의 관심을 더욱 확대하고 있으며,

<다부원(多富院)에서>와 같은 총체적인 상황 인식의 가능성을 작품을 통해 시험하기도 한다.


그러나 조지훈은 자연을 노래하거나 지나간 역사를 더듬거나 간에, 또는 현실을 바라보거나

자기 응시에 몰두하거나 간에 언제나 비슷한 어조를 지키며 커다란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이 시는 그의 첫 시집 {풀잎 단장}의 표제시로서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풀잎을 새롭게 조명하여 생명의 신비감을 노래한 작품이다.

풀잎이란 단순히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 생명의 신비를 간직한 우주적 존재이다.

그런 측면에서는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아주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풀잎과도 같이 조그만 고통에도 동요하고 번뇌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 아닌가.

이렇게 시인은 풀잎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자신과 자연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고 있다.

결국 이 시는 화자가 자신의 반성적 타자(他者)로 설정한 풀잎을 통해 주어진 운명대로 한 자리에 붙박여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고달픈 얼굴을 마주 대고 나직이 웃'는 여유로움 속에서 시간의 흐름에 지친 영혼을 내맡기는 삶의 태도를 보여 주고 있는 작품이다.

 

 

석문(石門)

 

당신의 손끝만 스쳐도 소리 없이 열릴 돌문이 있습니다.

뭇사람이 조바심치나 굳이 닫힌 이 돌문 안에는, 석벽 난간(石壁欄干) 열두 층계 위에 이제 검푸른 이끼가 앉았습니다.

당신이 오시는 날까지는, 길이 꺼지지 않을 촛불 한 자루도 간직하였습니다.

이는 당신의 그리운 얼굴이 이 희미한 불 앞에 어리울 때까지는, 천 년(千年)이 지나도 눈 감지 않을 저희 슬픈 영혼의 모습입니다.

길숨한 속눈썹에 항시 어리운 이 두어 방울 이슬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남긴 푸른 도포 자락으로 이 눈썹을 씻으랍니까?

두 볼은 옛날 그대로 복사꽃 빛이지만, 한숨에 절로 입술이 푸르러 감을 어찌합니까?

몇 만리 굽이치는 강물을 건너와 당신의 따슨 손길이 저의 목덜미를 어루만질 때, 그때야 저는 자취도 없이 한 줌 티끌로 사라지겠습니다.

어두운 밤 하늘 허공 중천(虛空中天)에 바람처럼 사라지는 저의 옷자락은, 눈물 어린 눈이 아니고는 보이지 못하오리다.

여기 돌문이 있습니다. 원한도 사무칠 양이면 지극한 정성에 열리지 않는 돌문이 있습니다.

당신이 오셔서 다시 천 년(千年)토록 앉아 기다리라고, 슬픈 비바람에 낡아 가는 돌문이 있습니다.

 

 

이 시는 조지훈이 그의 고향 경북 영양 일월산 황씨 부인 사당에 전해지는 전설을 소재로 하여

풀리지 않는 원한(怨恨)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으로 서정주의 <신부>와 매우 흡사하다.

그 전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 일월산 아랫마을에 살던 황씨 처녀는 그녀를 좋아하던 두 총각 중 한 사람에게 시집을 갔다.

신혼 첫날밤 잠들기 전 화장실을 다녀오던 신랑은 신방문에 비친 칼 그림자를 보고 놀라 그 길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멀리 달아나 버렸다.

그 칼 그림자는 다름아닌 마당의 대나무 그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신랑은 그것을 연적(戀敵)이 복수하기 위해 자신을 죽이려고

숨어든 것이라고 오해한 것이었다.


신부는 그런 사실도 모르고 족두리도 벗지 못한 채 신랑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깊은 원한을 안고 죽었는데 그녀의 시신은 첫날밤 그대로 있었다.

오랜 후에 이 사실을 안 신랑은 잘못을 뉘우치고 신부의 시신을 일월산 부인당에 모신 후 사당을 지어 그녀의 혼령을 위로하였다.

이 시는 5연으로 이루어진 산문시로서 의미상 크게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앞 단락은 1~3연으로 풍상에 시달려온 돌문의 모습을 통해 천년의 한을 간직한 신부의 서러움을 노래하고 있으며,

뒷 단락은 4~5연으로 미래에 있을지 모를 '당신'과의 해후(邂逅)를 그리고 있다.




 

민들레꽃

 

까닭 없이 외로울 때는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도

애처롭게 그리워지는데

아, 얼마나 한 위로이랴

소리쳐 부를 수도 없는 이 아득한 거리에

그대 조용히 나를 찾아 오느니

사랑한다는 말 이 한마디는

내 이 세상 온전히 떠난 뒤에 남을 것

잊어 버린다. 못 잊어 차라리 병이 되어도

아 얼마나 한 위로이랴

그대 맑은 눈을 들어 나를 보느니.

 

 

 

해방 직후 문단의 분위기가 좌파인 '조선문학가동맹'에 의해 좌우되자,

조지훈은 박목월, 김동리, 서정주, 조연현 등과 함께 순수 문학을 표방하면서 1946년 4월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하였다.

그는 문학이 정치에 복무하는 것을 배격하면서 순수한 시 정신을 옹호하였다.


그에게 있어 시 정신이란 "시류(時流)의 격동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영원히 새로운 것"이었다.

이 시는 6․25 직전의 어수선한 시대 상황하에서 씌어진 작품으로 바로 그러한 순수한 시 정신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시는 기․승․전․결의 전통 구조에 따라 의인화된 민들레꽃을 통해 임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어느 봄날, 노랗게 피어난 민들레꽃을 발견한 화자는 그것을 임의 현신(現身)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애틋한 사랑의 심경을 여성적 어조로 나직이 노래 부른다.


 

패강 무정(浿江無情)

 

평양(平壤)을 찾아 와도 평양성엔 사람이 없다.

대동강 언덕길에는 왕닷새 베치마 적삼에 소식(蘇式)* 장총을 메고 잡혀 오는 여자 빨치산이 하나.

스탈린 거리 잎 지는 가로수 밑에 앉아 외로운 나그네처럼 갈 곳이 없다.

십년 전 옛날 평원선(平元線) 철로 닦을 무렵, 내 원산(元山)에서 길 떠나 양덕(陽德) 순천(順川)을 거쳐 걸어서 평양에 왔더니라.

주머니에 남은 돈은 단돈 십이 전(十二錢), 냉면 쟁반 한 그릇 못 먹고 쓸쓸히 웃으며 떠났더니라.

돈 없이는 다시 안 오리라던 그 평양을 오늘에 또 내가 왔다 평양을, 내 왜 왔노.

대동문(大同門) 다락에 올라 흐르는 물을 본다. 패강 무정(浿江無情) 십 년 뒤 오늘! 아, 가는 자 이 같고나, 서울 최후의 날이 이 같았음이여!

 

 

이 시는 6․25 당시 국군에 의해 탈환된 평양에 입성해서 폐허화된 도시의 모습을 보고 전쟁의 참혹상과 민족의 비극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시는 전쟁의 의미 추구나 이데올로기의 우열(優劣)을 주장하는 격한 감정의 전쟁시가 아니기에

시인은 의도적으로 행 구분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한 연을 긴 행 하나로 처리함으로써 전쟁을 바라보는 화자의 허망한 마음과 적절한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다.


 

 

꿈 이야기

 

문(門)을 열고

들어가서 보면

그것은 문이 아니었다.

마을이 온통

해바라기 꽃밭이었다.

그 훤출한 줄기마다

맷방석만한 꽃숭어리가 돌고

해바라기 숲 속에선 갑자기

수천 마리의 낮닭이

깃을 치며 울었다.

파아란 바다가 보이는

산 모롱잇길로

꽃 상여가 하나

조용히 흔들리며 가고 있었다.

바다 위엔 작은 배가 한 척 떠 있었다.

오색(五色) 비단으로 돛폭을 달고

뱃머리에는 큰 북이 달려 있었다.

수염 흰 노인이 한 분

그 뱃전에 기대어

피리를 불었다.

꽃상여는 작은 배에 실렸다.

그 배가 떠나자

바다 위에는 갑자기 어둠이 오고

별빛만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문을 닫고 나와서 보면

그것은 문이 아니었다.

 

 

꿈의 문을 열고 들어간 시인이 그 곳에서 만나게 된 '마을'과 '바다'라는 두 개의 시적 공간을 통해 죽음에 대한 초월 의지를

담담한 어조의 이야기체 형식을 빌어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마을은 맷방석만한 꽃숭어리의 해바라기가 피어 있는 꽃밭으로, 그 곳에선 수천 마리의 낮닭이 갑자기 깃을 치며 울고 있다.

이에 반해 바다는 작은 배가 한 척 떠 있는 공간이며,

그 배에는 오색 비단 돛폭과 큰 북이 달려 있는 한편, 뱃전에 기대어 피리를 부는 수염 흰 노인도 있다.


마을은 커다란 꽃송이의 해바라기와 깃을 치며 우는 낮닭의 밝은 이미지로 나타나는 삶의 현실적 세계를 표상하지만,

바다는 꽃상여를 싣고 떠났다는 진술을 통해 그 곳이 죽음의 초월적 세계를 표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병(病)에게

 

어딜 가서 까맣게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도

내가 오래 시달리던 일손을 떼고 마악 안도의 숨을 돌리려고 할 때면

그때 자네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네.

자네는 언제나 우울한 방문객

어두운 음계(音階)를 밟으며 불길한 그림자를 이끌고 오지만

자네는 나의 오랜 친구이기에 나는 자네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 동안을 뉘우치게 되네.

자네는 나에게 휴식을 권하고 생(生)의 외경(畏敬)을 가르치네.

그러나 자네가 내 귀에 속삭이는 것은 마냥 허무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자네의

그 나직하고 무거운 음성을 듣는 것이 더없이 흐뭇하네.

내 뜨거운 이마를 짚어 주는 자네의 손은 내 손보다 뜨겁네.

자네 여윈 이마의 주름살은 내 이마보다도 눈물겨웁네.

나는 자네에게서 젊은 날의 초췌한 내 모습을 보고

좀더 성실하게, 성실하게 하던

그 날의 메아리를 듣는 것일세.

생에의 집착과 미련은 없어도 이 생은 그지없이 아름답고

지옥의 형벌이야 있다손 치더라도

죽는 것 그다지 두렵지 않노라면

자네는 몹시 화를 내었지.

자네는 나의 정다운 벗, 그리고 내가 공경하는 친구

자네는 무슨 일을 해도 나는 노하지 않네.

그렇지만 자네는 좀 이상한 성밀세.

언짢은 표정이나 서운한 말, 뜻이 서로 맞지 않을 때는

자네는 몇 날 몇 달을 쉬지 않고 나를 설복(說服)하려 들다가도

내가 가슴을 헤치고 자네에게 경도(傾倒)하면

그때사 자네는 나를 뿌리치고 떠나가네.

잘 가게 이 친구

생각 내키거든 언제든지 찾아 주게나.

차를 끓여 마시며 우린 다시 인생을 얘기해 보세그려.

 

[지조론(志操論)]이라는 글을 통해 지사적인 삶을 추구하던 조지훈이 말년에 이르러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의지적 인생관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의인화된 '병'을 대화의 상대자로 하여 이야기하듯 담담하게 진술해 가는 화자의 목소리에서 조지훈이 갖고 있던,

생에 대한 긍정적 인식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자칫 감상에 빠질 수도 있는 주제 의식을 이렇듯 차분하고 친근감 있게 표현함으로써 죽음을 초월하고자 하는

삶의 태도를 스스로 강화시키는 한편, 독자들에 대해서는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고풍 의상(古風衣裳)

 

하늘로 날을 듯이 길게 뽑은 부연(附椽)* 끝 풍경(風磬)이 운다.

처마 끝 곱게 늘이운 주렴(珠簾)에 반월(半月)이 숨어

아른아른 봄밤이 두견이 소리처럼 깊어 가는 밤,

곱아라 고아라 진정 아름다운지고

파르란 구슬빛 바탕에

자주빛 호장을 받친 호장저고리

호장저고리 하얀 동정이 환하니 밝도소이다.

살살이 퍼져 내린 곧은 선이

스스로 돌아 곡선(曲線)을 이루는 곳

열두 폭 기인 치마가 사르르 물결을 친다.

치마 끝에 곱게 감춘 운혜(雲鞋)* 당혜(唐鞋)*

발자취 소리도 없이 대청을 건너 살며시 문을 열고,

그대는 어느 나라의 고전(古典)을 말하는 한 마리 호접(胡蝶)*

호접인 양 사푸시 춤을 추라, 아미(蛾眉)를 숙이고…….

나는 이 밤에 옛날에 살아

눈 감고 거문고 줄 골라 보리니

가는 버들인 양 가락에 맞추어

흰 손을 흔들어지이다.

 

 

조지훈은 시인을 일러 "미의 사제(司祭)요, 미의 건축사이다."라고 정의함으로써 그 자신을 전통적 시관(詩觀)을 지킨 시인임을 밝힌 바 있다.

 이 시는 그러한 그의 시 세계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옛 여인의 옷과 춤사위의 아름다움을 예스런 어투와 가락으로 조화 있게 표현하고 있다.

<승무>와 함께 이 시는 고전적 소재와 전통 무용에 대한 시적 탐구의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승무>가 춤을 소재로 하면서도 번뇌의 종교적 승화를 표현하고 있다면,

 <고풍 의상>은 한복의 우아함과 이를 통해 표현되는 춤사위의 그윽함을 보여 줌으로써 한 폭의 미인도(美人圖)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고풍스런 의상과 춤의 아름다움을 시적으로 살리기 위해

시인은 부드럽고 우아한 가락과 '호장저고리'․'치마'․'운혜'․'당혜'․'호접'․'아미'와 같은 옛 정취가 넘치는 시어들을 사용하는 한편,

'밝도소이다'․'보리니'․'흔들어지이다'와 같은 의고적(擬古的) 종결 어미를 구사하여 한층 더 옛스런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 부연 : 처마를 뒤쪽으로 올라가게 하여 멋을 내도록 쓰는 짧은 서까래.

* 운혜 : 울이 깊고 작은 가죽신으로 앞 코에 구름 무늬를 수놓음.

* 당혜 : 앞뒤에 당초 무늬를 놓은 여자의 가죽신.

* 호접 : 나비.



 

승무(僧舞)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빰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우리말의 조탁에 탁월한 능력을 보인 조지훈은 {청록집}에서 보여 준 것처럼 자연 친화와 민족 정서,

그리고 전통에의 향수와 불교적 선미(禪美)의 서정 세계를 펼치다가,

 6․25를 분기점으로 현실 참여의 적극적 시세계로 탈바꿈하게 된다.

그리하여 자유당 정권 하에서는 투철한 역사 의식을 바탕으로 한 부정 부패 및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참여적 경향을 보이게 된다.


이 작품은 그의 초기시를 대표할 뿐 아니라,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명시의 하나로

 '승무'라는 춤을 소재로 하여 삶의 번뇌를 극복하려는 종교적 구도(求道)의 자세를 노래하고 있다.

 작품의 표면에 등장하지 않는 시적 화자는 어느 깊은 가을밤,

한 젊은 비구니가 달빛 내려 비치는 오동나무 아래서 자신의 세속적 번뇌를 이겨내기 위해

 '승무'라는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관찰자로서 지켜보고 있다.


 

* 나빌레라 : 나비로구나

 

 

봉황수(鳳凰愁)

 

벌레 먹은 두리 기둥, 빛 낡은 단청(丹靑), 풍경(風磬) 소리 날러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玉座) 위엔 여의주(如意珠) 희롱하는 쌍룡(雙龍)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른 하늘 밑 추석(登石)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패옥(佩玉) 소리도 없었다.

품석(品石) 옆에서 정일품(正一品), 종구품(從九品) 어느 줄에도 나의 몸 둘 곳은 바이 없었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천(九天)에 호곡(呼哭)하리라.

 

 

퇴락(頹落)한 고궁의 옥좌 앞에서 몰락한 왕조와 국권의 상실을 회고하면서 비극적인 역사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는 산문시이다.

역사에 대한 감회라는 관념적인 주제를 구체적이면서 평범한 시어를 적절히 이용하여 선명하게 보여 주고 있으며,

시인의 역사 의식과 조국애가 낭만적 정조를 바탕으로 드러나 있다.


 

완화삼(玩花衫)

 

― 목월(木月)에게

차운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七百里)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

 

 목월의 <나그네>를 탄생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작품으로, 암담한 현실 속에서

달랠 길 없는 민족의 정한을 스스로 나그네화하여 아름다운 시어,

시각적 이미지, 고전적 가락을 통해 탄식과 체념이 담긴 낭만적 시정(詩情)으로 노래하고 있다.

여기서 시제 '완화삼'은 '꽃을 보고 즐기는 선비'를 의미한다

 

 

낙화(落花)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지는 꽃에 대한 시인의 간절한 애정과 경건한 자세가 엿보이는 이 작품은 조지훈의 초기시에 드러나는 특유의 적막감과 비애 어린 서정성이 흠뻑 나타나 있다. 이 작품에서 빚어진 물외한인(物外閑人)의 감정과 자연을 관조하는 정신으로 말미암아 평자(評者)에 따라서는 이 작품을 그의 대표작으로 보기도 한다.

떨어지는 꽃을 보며 삶의 쓸쓸함을 노래하는 화자는 어둡고 애수 어린 분위기에서도 꽃의 떨어짐에 대해 격정적인 슬픔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담담하게 수용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 성긴 : 드문드문한.

* 우련 : 보일 듯 말 듯 은은하게.

* 저허하노니 : 두려워하노니. 마음에 꺼려 하노니.



 


고사(古寺)


 

 1

목어(木魚)를 두드리다

졸음에 겨워

고오운 상좌 아이도

잠이 들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데

서역 만리(西域萬里) 길

눈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진다.

 

 

 

이 시는 시인의 주관적 감정을 완전히 배제한 채 묘사와 서술로만 일관하고 있는 작품으로,

각각의 시어나 시구의 의미보다는 전체적인 느낌이나 인상으로 감상해야 한다.

 제목이 뜻하는 것처럼 이 시는 옛절의 고풍스런 풍경을 절제된 언어와 민요적 리듬을 통해

여백의 미를 중시하는 한 폭의 동양화로 보여 줌으로써 여백으로 남겨둔 시인의 주제 의식을 찾아내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그러나 시인이 사용한 여러 소재들, 즉 '잠든 상좌 아이'․'말 없이 웃으시는 부처님'․'눈부신 노을'․'지는 모란' 등이 갖는

 이미지들이 하나로 통합되어 마침내 '서역 만리 길'로 귀의(歸依)함으로써, 그가 그린 이 그림은 심오한 선(禪)의 세계로 젖어들고 있다.

 


밤길 

"이길로 가면은 주막이 있겠지요"
"나그네 가는 길에 무가이 없으리야
꽃같이 이쁜 색시 술도 판다오"
얼근히 막걸리에 취하면 영감님
愁心歌 한가락을 길게 뽑으며
달구지 달달 산모루를 돌아간다
白楊나무 가지 우에 별이 피는데......
"人生......한번.......죽어지면......
萬樹.......長林에......雲霧로구나"
구슬프고 아픈 가락 고요한 밤에
달구지꾼 아픈 가락 고요한 밤에
달구지꾼 영감님의 愁心歌 소리----
"여보 색시 나이는 몇 살이오"
술상 앞에 앉은 색시 두손을 쥐어 본다.
"열아홉......"
새빨간 두볼이 고개를 들고서
"임자는 어데까지 가시는 길입네까"
"서울로 가는뎁쇼, 같이 갈까요"
木花송이 터지듯이 꿈길이 피어나서
이 색시 이 저녁에 서울길이 기룬게지!
"어 졸려라 이 색시 하로밤 같이 자구 갈까부다"
"자는 일 누가 말려......."
내가 도루 색시처럼 부끄러웠다.
長明燈 다아 놓은 술집을 나오니
양산도 한가락을 날리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