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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詩 와 문학文學

◈ - 양주동 (梁柱東) / 조선(朝鮮)의 맥박(脈搏)

by 준원 김재훈 2009. 2. 25.

 








양주동(梁柱東)



무애(无涯, 無涯) 양주동(梁柱東)




양주동(梁柱東, 1903-1977). 호는 무애(无涯). 시인, 국·영문학자.  

양주동은 음력으로 1903년 6월 24일 경기도 개성에서

아버지 남원 양씨 원장(元章)과 어머니 강릉 김씨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그 이듬해 황해도 장연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성장한다.

여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열 두 살 때 어머니마저 여읜 천애의 고아가 된다.
  
   양주동은 3.1운동 이듬해인 1920(18세)년에 신학문을 배우려고 상경하여 중동학교 고등속성과에 입학한다.

그는 수학과 영어 학습에 열중하면서 1년 만에 중학교 전 과정을 마친다.

1928년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조도전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뒤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수,

1940년부터 경신학교 교사를 지냈다.

   광복 후 동국대학교 교수가 되고 1954년 학술원 종신회원에 선임되었으며

 1957년 연세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8년 연세대학교 교수에 취임하였다가 1962년 다시 동국대학교로 옮겨 대학원장을 역임하였다.  
  
   젊었을 때에는 영문학을 강의하면서 시인 및 문학이론가로서 활약하였다.

《금성(金星)》 동인으로서 민족주의적 성향의 시를 썼다.

1928(26세)년에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수로 부임한다.

이듬해에 그는 <조선의 맥박>이라는 시를 발표한다.

그리고 그 다음 해인 1930(28세)년에  시집 ≪조선의 맥박≫을 상재한다.




무애(无涯, 無涯)

1903년 경기도 개성 출생

1920년 중동 학교 고등속성과 입학

1921년 와세다 대학 예과 입학

1923년 유엽, 백기만, 이장희 등과 문학 동인지 {금성} 발간

와세다 대학 영문과 졸업

평양 숭실 전문학교 교수로 부임

1929년 {문예공론} 발간

1954년 학술원 회원

1977년 사망

 

시집 : {조선의 맥박}(1930)




조선(朝鮮)의 맥박(脈搏)

 

한밤에 불 꺼진 재와 같이

나의 정열이 두 눈을 감고 잠잠할 때에,

나는 조선의 힘 없는 맥박을 짚어 보노라.

나는 임의 모세관(毛細管), 그의 맥박이로다.

이윽고 새벽이 되어 환한 동녘 하늘 밑에서

나의 희망과 용기가 두 팔을 뽐낼 때면,

나는 조선의 소생된 긴 한숨을 듣노라.

나는 임의 기관(氣管)이요, 그의 숨결이로다.

그러나 보라, 이른 아침 길가에 오가는

튼튼한 젊은이들, 어린 학생들, 그들의

공 던지는 날랜 손발, 책보 낀 여생도의 힘있는 두 팔

그들의 빛나는 얼굴, 활기 있는 걸음걸이

아아, 이야말로 참으로 조선의 산 맥박이 아닌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갓난 아이의 귀여운 두 볼.

젖 달라 외치는 그들의 우렁찬 울음.

작으나마 힘찬, 무엇을 잡으려는 그들의 손아귀.

해죽해죽 웃는 입술, 기쁨에 넘치는 또렷한 눈동자.

아아, 조선의 대동맥, 조선의 폐(肺)는 아가야 너에게만 있도다.

 

 

이 시는 일제 치하의 암담한 현실에서

민족 부활의 미래를 '튼튼한 젊은이'․'어린 학생'․'갓난 아이' 등에서 발견하고

민족주의의 바탕 위에서 천길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조선의 맥박'에 굳은 희망을 불어넣고자 하는

계몽성이 강한 교훈적 내용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