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인 (金東仁)
김동인 (金東仁) 1900. 10. 2 평양 ~ 1951. 1. 5 서울
배따라기
김동인
좋은 일기이다.
좋은 일기라도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 우리 사람으로서는 감히 접근치 못할 위엄을 가지고 높이서 우리 조그만 사람을 비웃는 듯이 내려다보는 그런 교만한 하늘은 아니고, 가장 우리 사람의 이해 자인 듯이, 낮게 뭉글뭉글 엉키는 분홍빛 구름으로서, 우리와 서로 손목을 잡자는 그런 하늘이다. 사랑의 하늘이다. 나는 잠시도 멎지 않고 푸른 물을 황해로 부어 내리는 대동강을 향한 모란봉 기슭, 새파랗게 돋아나는 풀 위에 뒹굴고 있었다.
이날은 삼월 삼질, 대동강에 첫뱃놀이하는 날이다. 까아맣게 내려다보이는 물위에는, 결결이 반짝이는 물결을 푸른 요릿배들이 타고 넘으며, 거기서는 봄 향기에 취한 형형색색의 선율이 우단보다도 보드라운 봄공기를 흔들면서 내려온다. 그리고 거기서는 기생들의 노래와 함께 날아오는 조선 아악(雅樂)은, 느리게, 길게, 유창하게, 부드럽게, 그리고 또 애처롭게 --- 모든 봄의 정다움과 끝까지 조화하지 않고는 안 두겠다는 듯이 대동강에 흐르는 시커먼 봄물, 청류벽에 돋아나는 푸르른 풀어음, 심지어 사람의 가슴속에 봄에 뛰노는 불붙는 핏줄기까지라도, 습기 많은 봄공기를 다리놓고 떨리지 않고는 두지 않는다.
봄이다. 봄이 왔다.
부드럽게 부는 조그만 바람이 시커먼 조선 솥을 꿰며, 또는 돋아나는 풀을 스치고 지나갈 때의 그 음악은, 다른 데서는 듣지 못할 아름다운 음악이다.
아아. 사람을 취케 하는 푸른 봄의 아름다움이여! 열 다섯 살부터의 동경 생활에 마음껏 이런 봄을 보지 못하였던 나는, 늘 이것을 보는 사람보다 곱 이상의 감명을 여기서 받지 않을 수 없다.평양 성내에는 겨우 툭툭 터진 땅을 헤치며 파릇파릇 돋아나는 나무 새기와 돋아나려는 버들의 어음으로 봄이 온 줄 알 뿐, 아직 완전히 봄이 안 이르렀지만, 이 모란봉 일대와, 대동강을 넘어 보이는 가나안 옥토를 연상시키는 장림(長林)에는 마음껏 봄의 정다움이 이르렀다.그리고 또 꽤 자란 밀, 보리들로 새파랗게 장식한 장림의 그 푸른빛, 만족한 웃음을 띠고 그 벌에 서서 내다보는 농부의 모양은 보지 않아도 생각할 수가 있다.
구름은 자꾸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양이다. 그 밀 위에 비치었던 구름의 그림자는, 그 구름과 함께 저편으로 몰려가며, 거기는 세계를 아까 만들어 놓은 것 같은 새로운 녹빛이 퍼져 나간다. 바람이나 조금 부는 때는, 그 잘 자란 밀들은 물결과 같이 누웠다 일어났다, 일록일청(一綠一靑)으로 춤을 춘다. 그리고 봄의 한가함을 찬송하는 솔개들은 높은 하늘에서 둥그러미를 그리며 더욱 더 아름다운 봄의 향그러움을 더한다.다스한 봄정에
솟아나리다
다스한 봄정에
솟아나리다
나는 두어 번 소리나게 읊은 뒤에 담배를 붙여 물었다. 담뱃내는 무럭무럭 하늘로 올라간다.
하늘에도 봄이 왔다.하늘은 낮았다. 모란봉 꼭대기에 올라가면, 넉넉히 만질 수가 있을이만큼 낮다. 그리고, 그 낮은 하늘보다는 오히려 더 높이 있는 듯한 분홍빛 구름은 뭉글뭉글 얽히면서 이리저리 날아다닌다.나는 이러한 아름다운 봄경치에, 이렇게 마음껏 봄의 속삭임을 들을 때는 언제든 유토피아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시시각각으로 애를 쓰며 수고하는 것은 그 목적이 무엇인가? 역시 유토피아 건설에 있지 않을까.
유토피아를 생각할 때는 언제든 그 <위대한 인격의 소유자>며 <사람의 위대함을 끝까지 즐긴> 진 나라 시황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어찌하면 죽지를 아니할까 하여 동남 삼백을 배를 태워 불사약을 얻으러 떠나 보내며, 예술의 사치를 다하여 아방궁을 지으며, 매일 신하 몇 천 명과 잔치로써 즐기며, 이리하여 여기 한 유토피아를 세우려던 시황은 몇 만의 역사가가 어떻다고 욕을 하든 그는 참말로 참말의 향락자며, 역사 이후의 제일 큰 위인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만한 순전한 용기 있는 사람이 있고야 우리 인류의 역사는 끝이 날지라도 하나의 사람을 가졌었다고 할 수 있다.
"큰 사람이댔다."
하면서 나는 머리를 들었다.
이때에 기자묘 근처에서 이상한 슬픈 소리가 들리면서 봄공기를 진동시키며 날아오는 것을 들었다. 나는 무심중 귀를 기울였다.
영유 배따라기다. 그것도 웬만한 광대나 기생은 발꿈치에도 미치지 못하리만큼, 그만큼 그 배따라기의 주인은 잘 부르는 사람이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산천후토 일월성신
하나님전 비나이다
실낱같은 우리 목숨
살려 달라 비나이다
에에야 어그여 지여
여기까지 이르렀을 때에 저편 아래 물에서 장구 소리와 함께 기생의 노래가 울리어 오며 배따라기는 그만 안 들리게 되었다.
나는 이년 전 한여름을 영유서 지내본 일이 있다. 배따라기의 본고장인 영유를 몇 달 있어 본 사람은 그 배따라기에 대하여 언제든 한 속절없는 애처로움을 깨달을 터이다.
영유, 이름은 모르지만, X산에 올라가서 내다보면 앞은 망망한 황해이니, 거기 저녁때의 경치를 한번 본 사람은 영구히 잊을 수가 없으리라. 불덩어리 같은 커다란 시뻘건 해가 남실남실 넘치는 바다에 도로 빠질 듯, 도로 솟아오를 듯 춤을 추며, 때때로 보이지 않는 배에서 배따라기만 슬프게 날아오는 것을 들을 때면 눈물 많은 나는 때때로 눈물을 흘렸다. 이로 보아서 어떤 원의 아내가 자기의 모든 영화를 낡은 신과 같이 내어 던지고, 뱃사람과 정처없는 물길을 떠났다 함도 믿지 못할 말이랄 수가 없다.
영유서 돌아온 뒤에도 그 배따라기는 내 마음에 깊이 새겨져서,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었고, 언제 한번 다시 영유를 가서 그 노래를 한번 더 들어보고, 그 경치를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생각이 늘 떠나지를 않았다.
장구 소리와 기생의 노래는 멎고, 배따라기만 슬프게 날아온다. 걸걸이 부는 바람으로 말미암아 때때로는 들을 수가 없으되, 나의 기억과 곡조를 부합하여 들은 배따라기는 여기이다.
강변에 나왔다가
나를 보더니만,
혼비백산하여
꿈인지 생시인지,
생신지 꿈인지,
와륵 달려들어
섬섬옥수로 붙여잡고
호천망극 하는 말이,
"하늘로서 떨어지며
땅으로서 솟아났다
바람결에 묻어 오고
구름길에에 쌔여 왔다."
이리저리 붙들고 울음 울 제,
인리 제인이며
일가 친척이 모두 모여……
여기까지 들은 나는 마침내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서서 소나무 가지에 걸었던 모자를 내려 쓰고 그곳을 찾으려 모란봉 꼭대기에 올라섰다. 꼭대기는 좀더 노랫소리가 잘 들린다. 그는 배따라기의 맨 마지막, 여기를 부른다.
밥을 빌어서
죽을 쑬지라도
제발 덕분에
뱃놈 노릇은 하지 마라
에에야 어그여 지여……
그의 소리로써 방향을 찾으려던 나는 그만 그 자리에 섰다.
"어딘가? 기자묘, 혹은 을밀대?"
그러나 나는 오래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어떻든 찾아보자 하고 현무문으로 가서 문밖에 썩 나섰다.
기자묘의 깊은 솔밭은 눈앞에 쫙 퍼진다.
"어딘가?"
나는 또 물어 보았다.
이때에 그는 또다시 배따라기를 첫번부터 부른다. 그 소리는 왼편에서 온다.
왼편이구나 하면서 소리나는 곳을 더듬어 소나무 틈으로 한참 돌다가, 겨우 기자묘 대고는 그중 하늘이 넓고 밝은 곳에, 혼자서 뒹굴고 있는 그를 찾아내었다. 나의 생각한 바와 같은 얼굴이다. 얼굴, 코, 입, 눈, 몸집이 모두 네모나고……그의 이마의 굵은 주름살과 시커먼 눈썹은 고생 많이 함과 순진한 성격을 나타낸다.
그는 어떤 신사가 자기를 들여다보는 것을 보고, 노래를 그치고 일어나 앉는다.
"왜? 그냥 하지요."
하면서, 나는 그의 곁에 가 앉았다.
"머……."
할 뿐, 그는 눈을 들어서 터진 하늘을 쳐다본다.
좋은 눈이었다. 바다의 넓고 큼이 유감없이 그의 눈에 나타나 있다. 그는 뱃사람이다. 나는 짐작하였다.
"고향이 영유요?"
"예, 머 영유서 나기는 했디만 한 이십년 영유를 가 보지두 않아시요."
"왜, 이십년씩 고향엔 안 가요?"
"사람의 일이라니 마음대로 됩데까?"
그는 왜 그러는지 한숨을 짓는다.
"그저 운명이 제일 힘셉디다."
운명의 힘이 제일 세다는 그의 소리엔 삭이지 못할 원한과 뉘우침이 섞여 있다.
"그래요?"
나는 다만 그를 쳐다볼 뿐이었다.
한참 잠잠하니 있다가 나는 다시 말하였다.
"자, 노형의 경험담이나 한번 들어봅시다. 감출 일이 아니면 한번 이야기해 보소."
"뭐 감출 일은……"
"그럼 어디 한번 들어 봅시다 그려."
그는 다시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좀 있다가,
"하디요."
하면서 내가 담배를 붙이는 것을 보고, 자기도 담배를 붙여 물고 아야기를 꺼낸다.
"십구년 전 팔월 열 하룻날 일인데요……"
하면서 그가 이야기한 바는 대략 이와 같은 것이다.
그가 살던 마을은 영유 고을서 한 이십리 떠나 있는 바다를 향한 조그만 동리이다.그의 살던 그 조그만 마을(서른 집쯤 되는)에서 그는 꽤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의 부모는 모두 열댓에 났을 때 없었고, 남은 친척이라고는 곁집에 딴살림하는 그의 아우 부처와 자기 부처뿐이었다. 그들 형제가 그 마을에서 제일 부자이고, 또 제일 고기잡이를 잘 하였고, 그중 글이 있었고, 배따라기도 그 마을에선 빼나게 그 형제가 잘하였다. 말하자면 그 형제가 그 동리의 대표적 사람이었다.
팔월 보름은 추석 명절이다. 팔월 열 하룻날, 그는 명절에 쓸 장도 볼 겸 그의 아내가 늘 부러워하는 거울도 하나 사올 겸 장으로 향하였다.
"당손네 집에 있는 것보다 큰 것이요, 鎸지 말구요."
그의 아내는 길까지 따라나오면서 잊지 않도록 부탁하였다.
"안 鎸어."
하면서 그는 떠오르는 새빨간 햇빛을 앞으로 받으면서 자기 마을을 나섰다.
그는 아내를 <이렇게 말하기는 우습지만 고마워했다.> 그의 아내는 <촌에는 드물게 연연하고도 예쁘게 생겼었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성내(평양) 덴줏골을 가두 그만한 거 쉽진 않가시요."
그러니까 촌에서는 그리고 그 당시에는 남에게 우습게 보이도록 그 부처의 사이는 좋았다. 늙은이들은 계집에게 혹하지 말라고 흔히 그에게 권고하였다.
부처의 사이는 좋았지만, 아니 오히려 좋으므로 그는 아내에게 시기를 많이 하였다. 품행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아내는 대단히 쾌활한 성질로서 아무에게나 말 잘하고 애교를 잘 부렸다.
그 동리에서는 무슨 명절이나 되면, 집이 그중 깨끗함을 핑계삼아, 젊은이들은 모두 그의 집에 모이곤 하였다.
그 젊은이들은 모두 그의 아내에게 <아즈머니>라 부르고, 그의 아내는 아내대로 <아즈바니, 아즈바니> 하며 그들과 지껄이고 즐기며, 그 웃기 잘하는 입에는 늘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한편 구석에서 눈만 흘근거리며 있다가, 젊은이들이 돌아간 뒤에는 불문곡직하고 아내에게 덤벼들어, 발길로 차고 때리며 이전에 사다 주었던 것을 모두 거두어 올린다. 싸움을 할 때에는 언제든 곁집 있는 아우 부처가 말리러 오며 그렇게 되면 언제든 그는 아우 부처까지 때려 주었다.
그가 아우에게 그렇게 구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의 아우는 촌사람에게는 다시없도록 늠름한 위엄이 있었고, 맨날 바닷바람을 쐬었지만 얼굴이 희었다. 이것 뿐으로도 시기가 된다 하면 되지만, 특별히 아내가 그의 아우에게 친절히 하는 데는 그는 속상하여 못 견디었다.
그가 영유를 떠나기 반년 전쯤---다시 말하자면 그가 거울을 사러 장에 갈 때부터 반년 전쯤, 그의 생일날이었다. 그의 집에서는 음식을 차려서 잘 먹었는데 그에게는 한 버릇이 있어서, 맛있는 음식은 남겨 두었다가 좀 있다 먹곤 하는 것을 예사로 하였다. 그의 아내도 그 버릇은 잘 알 터인데, 그의 아우가 점심때쯤 오니까 아까 그가 아껴서 남겨 두었던 그 음식을 아우에게 주려 하였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못 주리라>고 암호를 하였지만, 아내는 그것을 보았는지 못 보았는지, 그의 아우에게 주어 버렸다. 그는 마음속이 자못 편치 못하였다. 트집만 있으면 이년을 ---그는 마음 먹었다. 그의 아내는 시아우에게 상을 준 뒤에 물러오다가 그만 그의 발을 조금 밟았다.
"이년!"
그는 힘껏 발을 들어서 아내를 냅다 찼다. 그의 아내는 상 위에 거꾸러졌다가 일어난다.
"이년! 사나이 발을 짓밟는 년이 어디 있어!"
"거 좀 밟아서 발이 부러뎃쉐까?"
아내는 낯이 새빨개져서 울음 섞인 소리로 고함친다.
"이년! 말대답이……"
그는 일어서서 아내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형님! 왜 이러십니까?"
아우가 일어서면서 그를 붙여잡았다.
"가만 있거라. 이놈의 자식!"
하며 그는 아우를 밀친 뒤에 아내를 되는 대로 내려 찧었다.
"죽일 이년! 나가거라!"
"죽여라, 죽여라! 난 죽어도 이 집에선 못나가"
"못 나가?"
"못 나가디 않구, 뉘 집이게……"
이때다. 그의 마음에는 그 못 나가겠다는 아내의 말이 푸디리 박혔다. 그 이상 때리기가 싫었다. 우두커니 눈만 흘기고 있던 그는,
"망할 년, 그럼 내가 갈라."
하고 그만 문 밖으로 뛰어나가서,
"형님 어디 갑니까?"
하는 아우의 말에는 대답도 아니하고 곁동리 탁줏집으로 뒤도 안 돌아보고 가서, 거기 있는 술파는 계집과 술상 앞에 마주앉았다.
그날 저녁 얼근히 취한 그는 아내를 위하여 떡을 한돈어치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리하여 또 서너 달은 평화가 이르렀다. 그러나 이 평화가 언제까지든 연속할 수는 없었다. 그의 아우로 말미암아 또 평화가 짜개져 나갔다.
오월 초승부터 영유 고을 출입이 잦던 그의 아우는 오월 그믐께부터는 고을서 며칠씩 묵어 오는 일이 많았다. 함께, 고을에 첩을 얻어 두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 소문이 있은 뒤로 아내는 아우가 고을 들어가는 것을 벌레보다도 싫어하고, 며칠 묵어 나오는 때면 곧 아우의 집으로 가서 그와 담판을 하며, 심지어 동서되는 아우의 처에게까지 못 가게 하지 않는다고 싸우는 일이 있었다. 칠월 초승께, 그의 아우는 고을에 들어가서 열흘쯤 묵어 온 일이 있었다. 이때도 전과 같이 그의 아내는 그의 아우와 제수와 싸우다 못하여, 마침내 그에게까지 와서 아우가 그런 못된 데를 다니는 것을 그냥 둔다고 해보자 한다. 그 꼴을 곱게 보지 않았던 그는 첫마디로 고함을 쳤다.
"네게 상관이 무에가? 듣기 싫다."
"못난 둥이, 아우가 그런 델 댕기는 걸 말리지두 못하구!"
분김에 이렇게 그의 아내는 고함쳤다.
"이년, 무얼?"
그는 벌떡 일어섰다.
"못난둥이!"
그 말이 채 끝나기 전에 그의 아내는 악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 거꾸러졌다.
"이년! 사나이에게 그따웃 말버릇 어디서 배완!"
"에미네 때리는 건 어디서 배왔노! 못난둥이!"
그의 아내는 울음소리로 부르짖었다.
"상년, 그냥? 나갈! 우리집에 있디 말구 나갈!"
그는 내리찧으면서 부르짖었다. 그리고 아내를 문을 열고 밀쳤다.
"나가지 않으리!"
하고 그의 아내는 울면서 뛰어나갔다.
"망할 년!"
토하는 듯이 중얼거리고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의 아내는 해가 지고 어두워져도 돌아오지 않았다. 일단 내쫓기는 하였지만 그는 아내의 돌아옴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두워져서도 그는 불도 안 켜고 성이 나서 우들우들 떨면서, 아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의 아내의 참 기쁜 듯이 웃는 소리가 그의 아우의 집에서 밤새도록 울리었다. 그는 움찍도 않고 고자리에 앉아서 밤을 새운 뒤에, 새벽 동 터올 때 아내와 아우를 죽이려고 부엌에 들어가 식칼을 가지고 들어와서 문을 벌컥 열었다.
그의 아내로서 만약 근심스러운 얼굴을 하고 그 문밖에 우두커니 서서 문을 들여다보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는 아내와 아우를 죽이고야 말았으리라.
그는 아내를 보는 순간, 마음에 가득 차는 사랑을 깨달으면서 칼을 내어 던지고 뛰어나가서 아내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이년! 하면서 들어오더니 뺨을 물어 뜯으면서 함께 이리저리 자빠져서 뒹굴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려면 끝이 없으되, 다만 <그>, <그의 아내>, <그의 아우> 세 사람의 삼각 관계는 대략 이와 같았다.
각설---
거울은 마침 장에 마음에 맞는 것이 있었다. 지금 것과 대보면 어떤 때는 코도 크게 보이고 입이 작게도 보이는 것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리고 그런 촌에서는 둘도 없는 귀물이었다. 거울을 사가 지고 장을 본 뒤에 그는 이 거울을 아내에게 주면 그 기뻐할 모양을 생각하면서 새빨간 저녁 햇빛을 받은, 넘치는 듯한 바다를 안고 자기 집으로, 늘 들르던 탁줏집에도 안 들르고 돌아왔다.
그러나 그가 그의 집 안방에 들어설 때에는 뜻도 안하였던 광경이 그의 눈앞에 벌어져 있었다.
방 가운데는 떡상이 있고, 그의 아우는 수건이 벗어져서 목뒤로 늘어지고, 저고리 고름이 모두 풀어져 가지고 한편 모퉁이에 서 있고 아내도 머리채가 모두 뒤로 늘어지고 치마가 배꼽 아래 늘어지도록 되어 있으며, 그의 아내와 아우는 그를 보고 어찌할 줄을 모르는 듯이, 움찍도 않고 서 있었다.
세 사람은 한참 동안 어이없이 서 있었다. 그러나 좀 있다가 마침내 그의 아우가 겨우 말했다.
"그놈의 쥐 어디 갔니?"
"흥! 쥐? 훌륭한 쥐 잡댔다."
그는 말을 끝내지 않고 짐을 벗어버리고 뛰어가서 아우의 멱살을 그러쥐었다.
"형님 정말 쥐가!"
"쥐? 이놈! 형수와 그런 쥐 잡는 놈 어디 있니?"
그는 아우의 따귀를 몇 번 때린 뒤에 등을 밀어서 문밖에 집어 던졌다. 그런 뒤에 이제 자기에게 이를 매를 생각하고 우들우들 떨면서 아랫목에 서 있는 아내에게 달려들었다.
"이년! 시아우와 그런 쥐 잡는 년이 어디 있어?"
그는 아내를 거꾸러뜨리고 함부로 내리찧었다.
"정말 쥐가……,아이 죽갔다!"
"이년! 너두 쥐? 죽어라."
그의 팔다리는 함부로 아내의 몸 위에 오르내렸다.
"아이 죽갔다. 정말 아까 적은이가 왓게 떡 먹으라구 내놓았더니……"
"듣기 싫다. 시아우 붙은 년이 무슨 잔소리!"
"아이, 아이, 정말이야요. 쥐가 한 마리 나……"
"그냥 쥐?"
"쥐 잡을래다가……"
"상년! 죽얼! 물이래두 빠데 죽얼……"
그는 실컷 때린 뒤에 아내도 아우와 같이 등을 밀어내어 쏘았다. 그 뒤에 그의 등에로,
"고기 배때기에 장사해라!"
고 토하였다.
분풀이는 실컷 하였지만, 그래도 마음속이 자못 편치 못하였다. 그는 아랫목으로 가서 바람벽을 의지하고 실신한 사람같이 우두커니 서서, 떡상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서편으로 바다를 향한 마을이라, 다른 곳보다는 늦게 어둡지만, 그래도 술시쯤 되어서는 깜깜하니 어두웠다. 그는 불을 켜려고 바람벽에서 떠나 성냥을 찾으려고 돌아갔다. 성냥은 늘 있던 자리에 있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저기 뒤적이노라니까 어떤 낡은 옷뭉치를 들칠 때에 쥐소리가 나면서 무엇이 후덕덕 뛰어나온다. 그리하여 저편으로 기어서 도망한다.
"역시 쥐댔다!"
그는 조그만 소리로 부르짖었다. 그리고 그만 그 자리에 맥없이 털썩 주저앉았다.
아까 그가 보지 못한 때의 광경이 활동사진과 같이 그의 머리에 지나갔다.
아우가 집에를 왔다. 아우에게 친절한 아내는 떡을 먹으라고 아우에게 떡상을 내어놓는다. 그때에 어디선가 쥐가 한 마리 뛰어나온다. 둘이서는 쥐를 잡느라고 돌아간다. 한참 성화시키던 쥐는 어느 구석에 숨어 버린다. 그들은 쥐를 찾느라고 두리번거린다. 그 때에 그가 들어선 것이다.
"상년, 좀 있으믄 안 들어오리……"
그는 억지로 마음먹고 그 자리에 드러누웠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밤이 가고 밝기는커녕 해가 중천에 올라도 돌아오지를 않았다. 그는 차차 걱정이 나서 찾아보러 나섰다.
아우의 집에도 없었다. 동리를 모두 찾아보아도 본 사람도 없다 한다.
그리하여 낮쯤, 한 삼십리 내려간 바닷가에서 겨우 아내를 찾기는 찾았지만, 그 아내는 이전과 같은 생기로 찬 산 아내가 아니요, 몸은 물에 불어서 곱이나 크게 되고, 이전에 늘 웃음을 흘리던 예쁜 입에는 거품을 잔뜩 물은 죽은 아내였다.
그는 아내를 업고 집에 오기까지에 정신이 없었다.
이튿날 간단하게 장사를 하였다. 뒤에 따라오는 아우의 얼굴에는,
"형님 이게 웬일이오니까?"
하는 듯한 원망이 있었다.
장사를 지낸 이튿날부터 아우는 그 조그만 마을에서 없어졌다. 하루 이틀은 심상히 지냈지만, 닷새 엿새가 지나도 아우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알아보니까 꼭 그의 아우와 같이 생긴 사람이 오륙일 전에 멧산자 봇짐을 하여 진 뒤에 새빨간 저녁 해를 등으로 받고 더벅더벅 동편으로 가더라 한다. 그리하여 열흘이 지나고 스무날이 지났지만 한번 떠난 그의 아우는 돌아올 길이 없고, 혼자 남은 아우의 아내는 만날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그도 이것을 잠자코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 불행의 모든 죄는 죄 그에게 있었다.
그도 마침내 뱃사람이 되어, 적으나마 아내를 삼킨 바다와 늘 접근하며, 가는 곳마다 아우의 소식을 알아보려고, 어떤 배를 얻어 타고 물길을 나섰다.
그는 가는 곳마다 아우의 이름과 모양을 물었으되, 아우의 소식은 알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꿈결같이 십년을 지나서, 구년 전 가을 탁탁히 낀 안개를 깨며 연안 바다를 지나가던 그의 배는 몹시 부는 바람으로 말미암아 파선을 하여 벗 몇 사람은 죽고, 그는 정신을 잃고 물위에 떠돌고 있었다.
그가 겨우 정신을 차린 때는 밤이었다. 그리고 어느덧 그는 뭍 위에 올라와 있었고, 그를 말리느라고 새빨갛게 피워 놓은 불빛으로 자기를 간호하는 아우를 보았다.
그는 이상하게 놀라지도 않고 천천히 물었다.
"너! 어떻게 여기 완!"
아우는 잠자코 한참 있다가 겨우 대답하였다.
"형님, 그저 다 운명이외다."
따뜻한 불기운에 잠이 들려 하던 그는 화닥닥 깨면서 또 말하였다.
"십 년 동안에 되게 파리했구나."
"형님, 나두 변했거니와, 형님두 되게 변하셋쉐다!"
이 말을 꿈결같이 들으면서 그는 또 혼곤히 잠이 들었다. 그리하여 두어 시간, 꿀보다도 단 잠을 잔 뒤에 깨어 보니 아까 같이 새빨간 불은 피워 있지마는, 아우는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다. 겨우 사람에게 물어 보니까, 아까 아우는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한참 들여다보고 있다가 새빨간 불빛을 등으로 받으면서 터벅터벅 아무 말 없이 어두움 가운데로 스러졌다 한다. 이튿날 아무리 알아봐야 그의 아우는 종적이 없어지고, 알 수 없으므로, 그는 할 수 없이 다른 배를 얻어 타고 또 물길을 나섰다. 그리하여 그의 배가 해주에 이르렀을 때, 그는 해주장에 들어가서 무엇을 사려다가, 저편 가게에 걸핏 그의 아우와 같은 사람이 있으므로 뛰어가서 보니 그는 벌써 없어졌다. 배가 해주에는 오래 머무르지 않으므로, 그는 마음을 해주에 남겨 두고 또다시 바닷길을 떠났다.
그 뒤에 삼년을 이리저리 돌아다녀서도 아우는 다시 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삼년을 지나서 지금부터 육년 전에, 그의 탄 배가 강화도를 지날 때에 바다로 행한 가파로운 메 곁에서 바다로 향하여 날라오는 배따라기를 들었다. 그것도 어떤 구절과 곡조는 그의 아우 특색으로 변경된 그의 아우가 아니면 부를 사람이 없는 그 배따라기였다.
배가 강화도에 머무르지 않아서 그저 지나갔으나, 인천서 열흘쯤 머무르게 되었으므로, 그는 곧 내려서 강화도로 건너갔다. 거기서 여기저기 찾아다니다가 어떤 조그만 객주 집에서 물어 보니, 이름도 그의 아우요, 생긴 모양도 그의 아우인 사람이 묵어 있기는 하였으나, 사나흘 전에 도로 인천으로 갔다 한다. 그는 곧 돌아서서 인천으로 건너가서 찾아보았지만, 그 조그만 인천서도 그의 아우는 찾을 바이없었다.
그 위에 눈오고 비오며 육년이 지났지만, 그는 다시 아우를 만나 보지 못하고 아우의 생사까지 알 수 없었다.
말을 끝낸 그의 눈에는 저녁 해에 반사하여 몇 방울의 눈물이 번뜩인다.
나는 한참 있다가 겨우 물었다.
"노형의 데수는?"
"모르디오. 이십 년을 영유는 안 가 봤으니깐요."
"노형은 이제 어디루 갈 테요?
"것두 모르디요. 정처가 있나요. 바람 부는 대루 몰려 댕기지 오."
그는 다시 한번 나를 위하여 배따라기를 불렀다. 아아! 그 속에 잠겨 있는 삭이지 못할 뉘우침! 바다에 대한 애처로운 그리움!
노래를 끝낸 다음에 그는 일어서서 시뻘건 저녁해를 잔뜩 등으로 받고, 을밀대로 향하여 더벅더벅 걸어갔다. 나는 그를 말릴 힘이 없어서 눈이 멀거니 그의 등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서도 그 배따라기와 그의 숙명적 경험담이 귀에 쟁쟁히 울리어 한잠도 못 이루고, 이튿날 아침 깨어서 조반도 안 먹고 기자묘로 뛰어가서 또다시 그를 찾아보았다. 그가 어제 깔고 앉았던 풀은, 모두 한편으로 누워서 그가 다녀감을 기념하되, 그는 그 근처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 그러나 배따라기는 어디선가 쟁쟁히 울리어서 모든 소나무들을 떨리지 않고는 안 두겠다는 듯이 날아온다.
"모란봉이다.모란봉에 있다!"
하고, 나는 한숨에 모란 봉으로 뛰어갔다. 모란 봉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부벽루에도 없다.
"을밀대다!"
하고 나는 다시 을밀대로 갔다. 을밀대에서 부벽루로 연한, 지옥까지 연한 듯한 구렁텅이에 물 한 방울도 안 새리라고 빽빽이 난 소나무의 그 모든 잎잎은 떨리는 배따라기를 부르고 있지만, 그는 여기에도 있지 않다. 기자묘의 하늘을 향하여 퍼져 나간 그 모든 소나무의 천만의 잎잎도, 그 아래쪽 퍼진 천만의 풀들도, 모두 그 배따라기를 슬프게 부르고 있지만, 그는 이 조그만 모란봉 일대에선 찾을 수가 없었다.
강가에 나가서 알아보니, 그의 배는 오늘 새벽에 떠났다 한다.
그 위에, 여름과 가을이 가고 일년이 지나서 다시 봄이 이르렀으되, 잠깐 평양을 다녀간 그는 그 숙명적 경험과 슬픈 배따라기를 남겨 둘 뿐, 다시 조그만 모란봉엔 나타나지 않는다.
모란봉과 기자묘에 다시 봄이 이르러서, 작년에 그가 깔고 앉아서 부러졌던 풀들도 다시 곱게 대가 나서 자줏빛 꽃이 피려 하지만, 끝없는 뉘우침을 다만 한낱 배따라기로 하소연하는 그는 이 조그만 모란봉과 기자묘에서 다시 볼 수가 없었다. 다만 그가 남기고 간 배따라기만 추억하는 듯이. 기념하는 듯이 모든 잎잎이 속삭이고 있을 따름이다.
감 자
김동인 싸움, 간통, 살인, 도둑, 징역, 이 세상의 모든 비극과 활극의 근원지인 칠성문 밖 빈민굴로 오기 전까지는 복녀의 부처는 (사농공상의 제 이위에 드는) 농민이었다.복녀는 원래 가난은 하나마 정직한 농가에서 규칙 있게 자라난 처녀였었다. 예전 선비의 엄한 규율은 농민으로 떨어지자부터 없어졌다. 하나, 그러나 어딘지는 모르지만 딴 농민보다는 좀 똑똑하고 엄한 가율이 그의 집에 그냥 남아 있었다. 그 가운데서 자라난 복녀는 물론 다른 집 처녀들같이 여름에는 벌거벗고 개울에서 멱감고, 바짓바람으로 동네를 돌아다니는 것을 예사로 알기는 알았지만,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막연하나마 도덕이라는 것에 대한 저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열 다섯 살 나는 해에 동네 홀아비에게 팔십원에 팔려서 시집이라는 것을 갔다. 그의 새서방(영감이라는 편이 적당할까)이라는 사람은 그보다 이십 년이나 위로서, 원래 아버지의 시대에는 상당한 농민으로 밭도 몇 마지기가 있었으나 그의 대로 내려오면서는 하나 둘 줄기 시작하여서 마지막에 복녀를 판 팔십 원이 그의 마지막 재산이었다. 그는 극도로 게으른 사람이었다. 동네 노인의 주선으로 소작밭깨나 얻어 주면 종자만 뿌려 둔 뒤에는 후치질도 안하고 김도 안매고 그냥 버려 두었다가는 가을에 가서는 되는 대로 거둬서 '금년에 흉년입네' 하고 전줏집에는 가져도 안가고 혼자 먹어 버리곤 하였다. 그러니까 그는 한 밭을 이태를 연하여 부쳐 본 일이 없었다. 이리하여 몇 해를 지내는 동안 그는 그 동네에서는 밥을 못 얻으리만큼 인심과 신용을 잃고 말았다.복녀가 시집을 온 지 한 삼사 년은 장인의 덕으로 이렁저렁 지내 갔으나 예전 선비의 꼬리인 장인도 차마 사위를 밉게 보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처가에까지 신용을 잃게 되었다. 그들 부처는 여러 가지로 의논하다가 하릴없이 평양 성안으로 막벌이로 들어왔다. 그러나 게으른 그에게는 막벌이나마 역시 되지 않았다. 하루종일 기제를 지고 연광정에 가서 대동강만 내려다보고 있으니, 어찌 막벌이인들 될까. 한 서너 달 막벌이를 하다가 그들은 요행 어떤 집 막간(행랑)살이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 집에서도 얼마 안되어 쫓겨나왔다. 복녀는 부지런히 주인집 일을 보았지만 남편의 게으름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만날 복녀는 눈에 칼을 세워가지고 남편을 채근하였지만 그의 게으른 버릇은 개를 줄 수는 없었다. "뱃섬 좀 치워 달라우요.""남 졸음 오는데, 님자 치우시관,""내가 치우나요.""이십 년이나 밥을 처먹고 그걸 못 치워!""에이구 칵 죽구나 말디.""이년 뭘!"이러한 싸움이 그치지 않다가 마침내 그 집에서도 쫓겨나왔다.이젠 어디로 가나? 그들은 하릴없이 칠성문 밖 빈민굴로 밀리어 나오게 되었다. 칠성문 밖을 한 부락으로 삼고 그곳에 모여 있는 모든 사람들의 정업은 거지요, 부업으로는 도둑질과(자기끼리의) 매음, 그밖에 이 세상의 모든 무섭고 더러운 죄악이 있었다. 복녀도 그 정업으로 나섰다. 그러나 열 아홉 살의 한창 좋은 나이의 여편네에게는 누가 밥인들 잘 줄까."젊은 거이 거랑질은 왜."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는 여러가지 말로 남편이 병으로 죽어 가거니 어쩌니 핑계는 대었지만, 그런 핑계에는 단련된 평양 시민의 동정은 역시 살 수가 없었다. 그들은 이 칠성문 밖에서는 그들은 이 칠성문 밖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 가운데 드는 편이었다. 그 가운데서 잘 수입되는 사람은 하루에 오리짜리 돈푼으로 일원 칠팔십 전의 현금을 쥐고 돌아오는 사람까지 있었다. 극단으로 나가서는 밤에 돈벌이를 나갔던 사람은 그날 밤 사십 원을 벌어가지고 그 근처에서 답뱃장사를 하기 시작한 사람까지 있었다. 복녀는 열 아홉 살이었다. 얼굴도 그만하면 빤빤하였다. 그 동네 여인들의 보통 하는 일을 본받아서, 그도 돈벌이 좀 잘하는 사람의 집에라도 간간 찾아가면 매일 오륙십 전은 벌 수가 있었지만 선비의 집안에서 자라난 그는 그런 일은 할 수가 없었다. 그들 부처는 역시 가난하게 지냈다. 굶는 일도 흔히 있었다. 기자묘 솔밭에 송충이가 끓었다. 그때 평양루에서는 그 송충이를 잡는 데 (은혜를 베푸는 뜻으로) 칠성문 밖 빈민굴의 여인들을 인부로 쓰게 되었다.빈민굴 여인들은 모두가 자원을 하였다. 그러나 뽑힌 것은 겨우 오십 명쯤이었다. 복녀도 그 뽑힌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복녀는 열심으로 송충이를 잡았다. 소나무에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서는 송충이를 집게로 집어서 약물에 잡아넣고 또 그렇게 하고 그의 통은 잠깐 사이에 차곤 하였다. 하루에 삼십 이전씩의 품삯이 그의 손에 들어왔다.그러나 대엿새 하는 동안에 그는 이상한 현상을 하나 발견하였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젊은 여인부 한 여남은 사람은 언제든 송충이는 안잡고 아래서 지절거리며 웃고 날뀌기만 하고 있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놀고 있는 인부의 품삯은 일하는 사람의 삯전보다 팔전이나 더 많이 내어주는 것이다. 감독은 한 사람뿐이었는데, 감독도 가들이 놀고 있는 것을 묵인할 뿐 아니라 때때로 자기까지 섞여서 놀고 있었다. 어떤 날 송충이를 잡다가 점심때가 되어서 나무에서 내려와서 점심을 먹고 다시 올라가려 할 때에 감독이 그를 찾았다. "복네! 얘, 복네!""왜 그릅네까?""좀 오나라."그는 말없이 감독 앞에 갔다. "내, 너 음…… 데 뒤 좀 가 보자.""뭘 하게요?""글쎄 가야……""가디요. 형님!"그는 돌아서면서 부인들 모여 있는 대로 고함쳤다. "형님두 갑세다.""싫다 애, 둘이서 재미나게 가는데 내가 무슨 맛에 가갔니?"복녀는 얼굴이 새빨갛게 되면서 감독에게로 돌아섰다. "가 보자."감독은 저편으로 갔다. 복녀는 머리를 숙이고 따라갔다. "복네 도쑶구나."뒤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복녀의 숙인 얼굴은 더욱 빨갛게 되었다. 그날부터 복녀도 '일 안하고 품삯 많이 받는 인부'의 한 사람으로 되었다. 복녀의 도덕관 내지 인생관은 그때부터 변하였다. 그는 여태껏 딴 사내와 관계를 한다는 것을 생각하여 본 일도 없었다. 그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요 짐승의 하는 것쯤으로만 알고 있었다. 혹은 그런 일은 하면 탁 죽어지는지도 모를 일로 알았다.그러나 이런 이상한 일이 다시 있을까. 사람인 자기도 그런 일을 한 것을 보면 그것은 결코 사람으로 못할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일 안하고도 돈 더 받고, 신장된 유쾌가 있고 빌어먹는 것보다 점잖고……일본말로 하자면 '삼박자(拍子)' 같은 좋은 일이 이것뿐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삶의 비결이 아닐까. 뿐만이 아니라 이 일이 있은 뒤부터 그는 처음으로 한 개 사람으로 된 것 같은 자신까지 얻었다. 그뒤부터는 그의 얼굴에 조금씩 분도 발리게 되었다.일 년이 지났다.그의 처세의 비결은 더욱 더 순탄히 진척되었다. 그의 부처는 인제는 그리 궁하게 지내지는 않게 되었다. 그의 남편은 이것이 결국 좋은 일이라는 듯이 아랫목에 누워서 얼씬얼씬 웃고 있었다.복녀의 얼굴은 더욱 예뻐졌다. "여보 아즈바니, 오늘은 얼마나 벌었소?"복녀는 돈 좀 많이 벌은 듯한 거지를 보면 이렇게 찾는다. "오늘은 많이 못 벌었쉐다.""얼마?""도무지 열 서너 냥.""많이 벌었쉐다가레. 한 댓 냥 꽤주소고래.""오늘은 내가……"어쩌고어쩌고 하면 복녀는 곧 뛰어가서 그의 팔에 늘어진다. "나한테 들킨 댐에는 뀌구야 말아요.""난, 원 이 아즈마니 만나믄 야단이디라. 자 꽤주디, 그 대신 응? 알아 있디?""난 몰라요, 해해해해.""모르믄, 안줄 테야.""글쎄 알았대두 그른다."------그의 성격은 이만큼 진보되었다. 가을이 되었다. 칠성문 밖 빈민굴의 여인들은 가을이 되면 칠성문 밖에 있는 중국인의 채마밭에 감자(고구마)며 배추를 도둑질하러 밤에 바구니를 가지고 간다. 복녀도 감자깨나 도둑질하여 왔다. 어떤 날 밤 그는 고구마를 한 바구니 잘 두둑하여 가지고 이젠 돌아가려고 일어설 때에 그의 뒤에 시커먼 그림자가 서서 그를 꽉 붙들었다. 보니 그것은 그 밭의 주인인 중국인 왕서방이었다. 복녀는 말도 못하고 멀찐멀찐 발 아래만 보고 있었다. "우리집에 가!"왕서방은 이렇게 말하였다. "가재문 다기, 원 것도 못갈까."복녀는 엉덩이를 한번 휙 두른 뒤에 머리를 젖히고 바구니를 저으면서 왕서방을 따라갔다. 한 시간쯤 뒤에 그는 왕서방의 집에서 나왔다. 그가 밭 고랑에서 길로 들어서려 할 때에 문득 뒤에서 누가 그를 찾았다. "복녀 아니야?"복녀는 획 돌아서 보았다. 거기는 곁집 여편네가 바구니를 끼고 어두운 밭고랑을 더듬더듬 나오고 있었다. "형님이댔쉐까………형님도 들어갔댔쉐까?""님자두 들어갔댔나?""형님은 쥐 집에?""나? 눅(陸)서방네 집에, 님자는?""난 왕서방네……형님 얼마 받았소?""눅서방 그 깍쟁이놈 배추 세 패기……""난 삼원 받았다."복녀는 자랑스러운 듯이 대답하였다.십분쯤 뒤에 그는 자기 남편과 그 앞에 돈 삼원을 내놓은 뒤에 아까 그 왕서방의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있었다. 그뒤부터 왕서방은 무시로 복녀를 찾아왔다.한참 왕서방이 눈만 멀찐멀찐 앉아 있으면 복녀의 남편은 눈치를 채고 밖으로 나간다. 왕서방이 돌아간 뒤에는 그들 부처는 일원 혹은 이원을 가운데 놓고 기뻐하곤 하였다. 복녀는 차차 동네 거지들한테 애교를 파는 것을 중지하였다. 왕서방이 분주하여 못올 때가 있으면 복녀는 스스로 왕서방의 집까지 찾아갈 때도 있었다.복녀의 부처는 이젠 이 빈민굴의 한 부자였다. 그 겨울도 가도 봄이 이르렀다. 그때 왕서방은 돈 백원으로 처녀 하나 마누라도 사오게 되었다."흥."복녀는 다만 코웃음만 쳤다."복녀 강짜하갔구만."동네 여편네들이 이런 말을 하면 복녀는 '흥'하고 코웃음을 웃곤 하였다. 내가 강짜를 해? 그는 늘 힘있게 부인하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 생기는 검은 그림자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이놈 왕서방, 네 두고 보자."왕서방이 색시를 데려오는 날이 가까워 왔다. 왕서방은 여태껏 자랑하던 기다란 머리를 깎았다. 동시에 그것은 새색시의 의견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흥"복녀는 역시 코웃음만 쳤다.마침내 새색시가 오는 날이 이르렀다. 칠보단장에 사린교를 탄 색시가 칠성문 밖 채마밭 가운데 있는 왕서방의 집에 이르렀다. 밤이 깊도록 왕서방의 집에는 중국인들이 모여서 별난 악기를 뜯으며 별난 곡조로 노래하며 야단이었다. 복녀는 집 모퉁이에 숨어 서서 눈에 살기를 띠고 방안의 동정을 듣고 있었다.다른 중국인들은 새벽 두 시쯤 하여 돌아갔다. 그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복녀는 왕서방의 집 안에 들어갔다. 복녀의 얼굴에는 분이 하얗게 발리어 있었다. 신랑 신부는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그것을 무서운 눈으로 흘겨보면서 그는 왕서방에게 가서 팔을 잡고 늘어졌다. 그의 입에서는 이상한 웃음이 흘렀다. "자, 우리집으로 가요."왕서방은 아무 말도 못하였다. 눈만 정처없이 두룩두룩하였다. 복녀는 다시 한번 왕서방을 흔들었다. "자, 어서.""우리, 오늘은 일이 있어 못가.""일은 밤중에 무슨 일.""그래두 우리 일이……."복녀의 입에 여태껏 떠돌던 이상한 웃음은 문득 없어졌다. "이까짓것!"그는 발을 들어서 치장한 신부의 머리를 찼다."자, 가자우, 가자우."왕서방은 와들와들 떨었다. 왕서방은 복녀의 손을 뿌리쳤다. 복녀는 쓰러졌다. 그러나 곧 일어섰다. 그가 다시 일어설 때는 그의 손에 얼른얼른하는 낫이 한 자루 들리어 있었다. "이 되놈 죽어라. 이놈, 나 때렸니! 이놈아, 아이구 사람 죽이누나."그는 목을 놓고 처울면서 낫을 휘둘렀다. 칠성문 밖 외따른 밭 가운데 홀로 서 있는 왕서방의 집에서는 일장의 활극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 활극도 곧 잠잠하게 되었다. 복녀의 손에 들리어 있던 낫은 어느덧 왕서방의 손으로 넘어가고 복녀는 목으로 피를 쏟으며 그 자리에 고꾸라져 있었다. 복녀의 송장은 사흘이 지나도록 무덤으로 못갔다. 왕서방은 몇 번을 복녀의 남편을 찾아갔다. 복녀의 남편도 때때로 왕서방을 찾아갔다. 둘의 사이에는 무슨 교섭하는 일이 있었다. 사흘이 지났다. 밤중 복녀의 시체는 왕서방의 집에서 남편의 집으로 옮겨졌다.그리고 시체에는 세 사람이 둘러 앉았다. 한 사람은 복녀의 남편, 한 사람은 왕서방, 또 한 사람은 어떤 한방의사. 왕서방은 말없이 돈주머니를 꺼내어 십원짜리 지폐 석 장을 복녀의 남편에게 주었다. 한방의사의 손에도 십원짜리 두 장이 갔다.이튿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한방의의 진단으로 공동묘지로 실려 갔다.
붉 은 산
김동인
그것은 여(余)가 만주를 여행할 때 일이었다. 만주의 풍속도좀 살필 겸 아직껏 문명의 세례를 받지 못한 그들의 사이에 퍼져있는 병(病)을 조사할 겸해서 일 년의 기한을 예산하여 가지고 만주를 시시콜콜이 다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XX촌이라 하는 조그만 촌에서 본 일을 여기에 적고자 한다.
XX촌은 조선사람 소작인만 사는 한 이십여 호 되는 작은 촌이었다. 사면을 둘러보아도 한 개의 산도 볼 수가 없는 광막한 만주의 벌판 가운데 놓여있는 이름도 없는 작은 촌이었다.몽고사람 종자(從者)를 하나 데리고 노새를 타고 만주의 촌촌을 돌아다니던 여가 그 XX촌에 이른 때는 가을도 다 가고 어느덧 광포한 북극의 겨울이 만주를 찾아온 때였다.만주의 어느 곳이나 조선사람이 없는 곳은 없지만 이러한 오지(奧地)에서 한동네가 죄 조선사람뿐으로 되어있는 곳을 만나니 반가웠다. 더구나 그 동네는 비록 모두가 만주국인의 소작인이라 하나, 사람들이 비교적 온량하고 정직하여, 장성한 이들은 그래도 모두 천자문 한 권쯤은 읽은 사람이었다. 살풍경한 만주, 그 가운데서 살풍경한 살림을 하는 만주국인이며 조선사람의 동네를 근 일년이나 돌아다니다가 비교적 평화스런 이런 동네를 만나면, 그것이 비록 외국인의 동네라 하여도 반갑겠거늘, 하물며 우리 같은 동족임에랴. 여는 그 동네에서 한 십여 일 이상을 일없이 매일 호별 방문을 하며 그들과 이야기로 날을 보내며, 오래간만에 맛보는 평화적 기분을 향락하고 있었다.'삵'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정익호'라는 인물을 본 것이 여기서이다.
익호라는 인물의 고향이 어디인지는 XX촌에서 아무도 몰랐다. 사투리로 보아서 경기 사투리인 듯하지만 빠른 말로 재재거리는 때에는 영남 사투리가 보일 때도 있고, 싸움이라도 할 때는 서북 사투리가 보일 때도 있었다. 그런지라 사투리로써 그의 고향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쉬운 일본말도 알고, 한문글자도 좀 알고, 중국말은 물론 꽤 하고, 쉬운 러시아말도 할 줄 아는 점 등등, 이곳 저곳 숱하게 주워먹은 것은 짐작이 가지만 그의 경력을 똑똑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여(余)가 XX촌에 가기 일 년 전쯤 빈손으로 이웃이라도 오듯 후덕덕 XX촌에 나타났다 한다. 생김생김으로 보아서 얼굴이 쥐와 같고 날카로운 이빨이 있으며 눈에는 교활함과 독한 기운이 늘 나타나 있으며, 발룩한 코에는 코털이 밖으로까지 보이도록 길게 났고, 몸집은 작으나 민첩하게 되었고, 나이는 스물 다섯에서 사십까지 임의로 볼 수 있으며, 그 몸이나 얼굴 생김이 어디로 보든 남에게 미움을 사고 근접치 못할 놈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그의 장기(長技)는 투전이 일수며, 싸움 잘하고, 트집 잘 잡고 칼부림 잘하고, 색시에게 덤벼들기 잘하는 것이라 한다.
생김생김이 벌써 남에게 미움을 사게 되었고, 거기다 하는 행동조차 변변치 못한 일만이차, XX촌에서도 아무도 그를 대척하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를 피하였다. 집이 없는 그였으나 뉘 집에 잠이라도 자러가면 그 집 주인은 두말 없이 다른 방으로 피하고 이부자리를 준비하여 주고 하였다. 그러면 그는 이튿날 해가 낮이 되도록 실컷 잔 뒤에 마치 제 집에서 일어나듯 느직이 일어나서 조반을 청하여 먹고는 한 마디의 사례도 없이 나가버린다. 그리고 만약 누구든 그의 이 청구에 응치 않으면 그는 그것을 트집으로 싸움을 시작하고, 싸움을 하면 반드시 칼부림을 하였다.동네의 처녀들이며 젊은 여인들은 익호가 이 동네에 들어온 뒤부터는 마음놓고 나다니지를 못하였다. 철없이 나갔다가 봉변을 당한 사람도 몇이 있었다.'삵-----'이 별명은 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어느덧 XX촌에서는 익호를 익호라 부르지 않고 '삵'이라고 부르게 되었다."삵이 뉘 집에서 묵었다?""김 서방네 집에서.""다른 봉변은 없었다나?""요행히 없었다네."그들은 아침에 깨면 서로 인사 대신으로 '삵'의 거취를 알아보고 하였다.
'삵'은 이동네에는 커다란 암종이었다. '삵' 때문에 아무리 농사에 사람이 부족한 때라도 젊고 튼튼한 몇 사람들은 동네의 젊은 부녀를 지키기 위하여 동네 안에 머물러 있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삵' 때문에 부녀와 아이들은 아무리 더운 여름 저녁에라도 길에 나서서 마음놓고 바람을 쏘여보지를 못하였다. '삵' 때문에 동네에서는 닭의 가리며 돼지우리는 지키기 위하여 밤을 새지 않을 수가 없었다.동네의 노인이며 젊은이들은 몇 번을 모여서 '삵'을 이 동리에서 내어쫓기를 의논하였다. 물론 합의는 되었다. 그러나 내어쫓는 데 선착할 사람은 없었다."첨지가 선착하면 뒤는 내 담당하마.""뒤는 걱정말고 형님 먼저 말해보시오."제각기 '삵'에게 먼저 달려들기를 피하였다.이리하여 동리에서는 합의는 되었으나 '삵'은 그냥 태연히 이 동네에 묵어있게 되었다."며늘년들이 조반이나 지었나?""손주놈들이 잠자리나 준비했나?"마치 그 동네의 모두가 자기의 집안인 것같이 '삵'은 마음대로 이 집 저 집을 드나들었다.XX촌에서는 사람이라도 죽으면 반드시 조상 대신으로,"삵이나 죽지 않고."하는 한 마디의 말을 잊지 않고 하였다. 누가 병이라도 나면,"에익! 이 놈의 병 '삵'한테로 가거라."고 하였다.암종----누구나 '삵'을 동정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없었다.'삵'도 남의 동정이나 사랑은 벌써 단념한 사람이었다. 누가 자기에게 아무런 대접을 하든 탓하지 않았다. 보이는 데서 보이느느 푸대접을 하면 그 트집으로 반드시 칼부림까지 하는 그였지만, 뒤에서 아무런 말을 할지라도----그리고 그것이 '삵'의 귀에까지 갈지라도 탓하지 않았다."흥……."이 한 마디는 그의 가장 큰 처세철학이었다.흔히 곁동네 만주국인들의 투전판에 가서 투전을 하였다. 때때로 두들겨맞고 피투성이가 되어서 돌아오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하소연을 하는 일이 없었다. 한다 할지라도 들을 사람도 없거니와----아무리 무섭게 두들겨맞은 뒤라도 하루만 샘물에 상처를 씻고 절룩절룩한 뒤에는 또 이튿날은 천연히 나다녔다.
여(余)가 XX촌을 떠나기 전날이었다.송 첨지라는 노인이 그해 소출을 나귀에 실어가지고 만주국인 지주가 있는 촌으로 갔다. 그러나 돌아올 때는 송장이 되었다. 소출이 좋지 못하다고 두들겨맞아서 부러져 꺾어진 송 첨지는 나귀등에 몸이 결박되어서 겨우 XX촌에 돌아왔다. 그리고 놀란 친척들이 나귀에서 몸을 내릴 때에 절명하였다.XX촌에서는 왁자하였다."원수를 갚자!"명 아닌 목숨을 끊은 송 첨지를 위하여 동네 젊은이는 모두 흥분하였다. 제각기 이제라도 들고 일어설 듯하였다.그러나 그뿐이었다. 누구든 앞장을 서려는 사람이 없었다. 만약 이때에 누구든 앞장을 서는 사람만 있었더면 그들은 곧 그 지주에게로 달려갔을지 모른다. 그러나 제가 앞장을 서겠노라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제각기 곁사람을 돌아 보았다.발을 굴렀다. 부르짖었다. 학대받는 인종의 고통을 호소하며 울었다. 그러나----그뿐이었다. 남의 일로 지주에게 반항하여 제 밥자리까지 떼우기를 꺼림인지, 용감히 앞서 나가는 사람은 없었다.여는 의사라는 여의 직업상 송 첨지의 시체를 검시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여는 '삵'을 만났다. 키가 작은 '삵'을 여느느 내려다 보았다. '삵'은 여를 쳐다보았다."가련한 인생아. 인종의 거머리야, 가치 없는 인생아. 밥버러지야. 기생충아!"여는 '삵'에세 말하였다."송 첨지가 죽은 줄 아나?"여의 말에 아직껏 여를 쳐다보고 있던 '삵'의 얼굴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여가 발을 떼려는 순간에 얼핏 '삵'의 얼굴에 나타난 비창한 표정을 여는 넘길 수가 없었다.
고향을 떠난 만 리 밖에서 학대받는 인종의 가엾음을 생각하고 그 밤은 여도 잠을 못 이루었다.그 억분함을 호소할 곳도 못가진 우리의 처지를 생각하고, 여도 눈물을 금치 못하였다.
이튿날 아침이었다.여를 깨우러 오는 사람의 소리에 여는 반사적으로 일어났다.'삵'이 동구(洞口) 밖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있다는 것이었다. 여는 '삵'이라는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의사라는 직업상, 곧 가방을 수습하여 가지고 '삵'이 넘어진 데까지 달려갔다. 송첨지의 장례식 때문에 모였던 사람 몇은 여의 뒤를 따라왔다.여느느 보았다. '삵'의 허리가 기역자로 뒤로 부러져서 밭고랑 위에 넘어져 있는 것을. 여는 달려가보았다. 아직 약간의 온기는 있었다."익호! 익호!"그러나 그는 정신을 못 차렸다. 여는 응급수단을 취하였다. 그의 사지는 무섭게 경련되었다. 이윽고 그가 눈을 번쩍 떴다. "익호! 정신드나?"그는 여의 얼굴을 보았다. 끝이 없이 한참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움직이었다.겨우 처지를 깨달은 모양이었다."선생님, 저는 갔었습니다.""어디를?""그놈----지주놈의 집에----."무얼? 여는 눈물 나오려는 눈을 힘있게 닫았다. 그리고 덥석 그의 벌써 식어가는 손을 잡았다. 잠시의 침묵이 계속되었다. 그의 사지에서는 무서운 경련이 끊임없이 일었다. 그것은 죽음의 경련이었다. 듣기 힘든 작은 그의 소리가 또 그의 입에서 나왔다."선생님.""왜?""보고 싶어요. 전 보구 시…….""뭐이?"그는 입을 움직였다. 그러나 말이 안 나왔다. 가운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잠시 뒤에 그는 또다시 입을 움직였다. 무슨 소리가 그의 입에서 나왔다."무얼?""보구 싶어요. 붉은 산이----그리고 흰 옷이!"아아, 죽음에 임하여 그의 고국과 동포가 생각난 것이었다. 여는 힘있게 감았던 눈을 고즈너기 떴다. 그때에 '삵'의 눈도 번쩍 뜨이었다. 그는 손을 들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미 부러진 그의 손을 들리지 않았다. 그는 머리를 돌이키려 하였다. 그러나 그런 힘이 없었다.그는 마지막 힘을 혀 끝에 모아가지고 입을 열었다……."선생님!""왜?""저것----저것----.""무얼?""저기 붉은 산이----그리고 흰 옷이----선생님 저게 뭐예요?"여는 돌아보았다. 그러나 거기는 황막한 만주의 벌판이 전개되어 있을 뿐이었다."선생님 노래를 불러주세요. 마지막 소원----노래를 해주세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여는 머리를 끄덕이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여의 입에서는 창가가 흘러나왔다.여는 고즈너기 불렀다----."동해물과 백두산이……."고즈너기 부르는 여의 창가 소리에 뒤에 둘러섰던 다른 사람의 입에서도 숭엄한 코러스는 울리어 나왔다----.
무궁화 삼천리화려 강산----
광막한 겨울의 만주벌 한편 구석에서는 밥버러지 익호의 죽음을 조상하는 숭엄한 노래가 차차 크게 엄숙하게 울리었다. 그 가운데 익호의 몸은 점점 식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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