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진(朴斗鎭)
박두진(朴斗鎭) [1916.3.10~1998.9.16]
혜산(兮山) 박두진 朴斗鎭 [1916.3.10~1998.9.16]
경기 안성 출생. 1939년 문예지 《문장(文章)》에 시가 추천됨으로써 시단에 등단하였다.
1946년부터 박목월(朴木月)·조지훈(趙芝熏) 등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활동한 이래,
자연과 신의 영원한 참신성을 노래한 30여 권의 시집과 평론·수필·시평 등을 통해 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연세대·우석대·이화여대·단국대·추계예술대 교수와 예술원 회원을 역임했다.
아세아자유문학상(1956)·삼일문화상(1970)·예술원상(1976)·인촌상(1988)·지용문학상(1989) 등을 수상했다.
저서에 《거미의 성좌》 《고산식물》 《서한체》 《수석연가》 《박두진문학전집》 등이 있다.
박두진의 작품 세계 : 박두진의 시는 자연에 대한 감각적인 기쁨을 정신적인 경험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자연과 인간을 대비하여 존재의 의미를 추구한다.
그의 시에서 '자연'은 인간에게 새 생명을 불어 넣어 주는 일종의 '메시아'의 상징이며, 이상을 추구할 수 있는 매개적 존재로 표현된다.
시기적으로 볼 때, 박두진의 시세계를 해방과 6.25를 분기점으로 하여,
이상향에 대한 강렬한 희원을 보이는 초기의 경향(<청록집>과 <해>의 세계)과, 민족의 구원에 대한 소명 의식이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 전환되며,
기독교적인 종말관이나 신앙적 갈구가 나타나는 후기 경향(<오도>,<거미의 성좌>,<인간 밀림>의 세계)으로 나뉘어진다.
호 : 혜산(兮山)
활동분야 :시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
출생지 : 경기 안성
주요수상 : 아세아자유문학상(1956), 예술원상(1976)
주요저서 :《거미의 성좌》 《박두진문학전집》
1916년 3월 10일 경기도 안성에서 출생하였다. 1939년 문예지 《문장(文章)》에 시가 추천됨으로써 시단에 등단하였다.
1946년부터 박목월(朴木月)·조지훈(趙芝熏) 등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활동한 이래,
자연과 신의 영원한 참신성을 노래한 30여 권의 시집과 평론·수필·시평 등을 통해 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연세대·우석대·이화여대·단국대·추계예술대 교수와 예술원 회원을 역임했다.
아세아자유문학상(1956)·삼일문화상(1970)·예술원상(1976)·인촌상(1988)·지용문학상(1989) 등을 수상했다.
저서에 《거미의 성좌》 《고산식물》 《서한체》 《수석연가》 《박두진문학전집》 등이 있다.
2001년 6월 프랑스 아비뇽 근처 고대 로마유적지로 알려진 베종 라 로망(Vaison la Romaine)에 시비가 세워졌는데,
대표작 〈해〉의 첫 구절이 앞면은 한글로. 뒷면은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있다.
하늘 / 박두진(朴斗鎭)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 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미어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따가운 볕,
초가을 햇볕으로
목을 씻고,
나는 하늘을 마신다
자꾸 목말라 마신다.
마시는 하늘에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마음이 익는다.
맑고 푸른 초가을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샘솟는 생의 기쁨과,
나아가 자연과의 합일(合一)을 이루는 경지를 연쇄의 표현 기법과 정제된 언어로써 잘 나타낸 작품이다.
박두진이 노래하는 자연은 다른 청록파 시인들이 추구하는 목가적 세계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종교적 신앙과 일체화된 신성(神性)의 자연이다. 전 7연의 이 작품은 내용상 2단락으로 나누어진다.
청산도(靑山道) / 박두진(朴斗鎭)
산아, 우뚝 솟은 푸른 산아.
철철철 흐르듯 짙푸른 산아.
숱한 나무들, 무성히 무성히 우거진 산마루에 금빛 기름진 햇살은 내려오고, 둥둥 산을 넘어,
흰구름 건넌 자리 씻기는 하늘, 사슴도 안 오고, 바람도 안 불고, 너멋 골* 골짜기서 울어 오는 뻐꾸기…….
산아, 푸른 산아.
네 가슴 향기로운 풀밭에 엎드리면, 나는 가슴이 울어라.
흐르는 골짜기 스며드는 물소리에 내사 줄줄줄 가슴이 울어라.
아득히 가버린 것 잊어버린 하늘과, 아른아른 오지 않는 보고 싶은 하늘에,
어쩌면 만나도질* 볼이 고운 사람이, 난 혼자 그리워라. 가슴으로 그리워라.
티끌 부는 세상에도, 벌레 같은 세상에도, 눈 맑은 가슴 맑은 보고지운 나의 사람.
달밤이나 새벽녘, 홀로 서서 눈물 어린 볼이 고운 나의 사람.
달 가고, 밤 가고, 눈물도 가고, 틔어 올 밝은 하늘 빛난 아침 이르면,
향기로운 이슬밭 푸른 언덕을, 총총총 달려도 와 줄 볼이 고운 나의 사람.
푸른 산 한나절 구름은 가고, 골 넘어 뻐꾸기는 우는데, 눈에 어려 흘러가는 물결 같은 사람 속,
아우성 쳐 흘러가는 물결 같은 사람 속에, 난 그리노라.
너만 그리노라.
혼자서 철도 없이 난 너만 그리노라.
이 시는 행 구분은 없고 연 구분만 있는 4연 구성의 산문시이다.
의성어와 의태어의 다양한 구사와 반복적 어구를 통해 형성된 유장하면서도 운치 있는 산문 율조 속에는
자연의 생명력을 표상하는 시어들과 비관적 현실 인식을 드러내는 부정적 어사의 시어들이 대조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박두진의 초기시들은 일반적으로 부정적이고 비관적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그에 좌절하지 않고 시인 특유의
미래 지향적인 낙원 회복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 주는 특징을 갖는다.
이 작품 역시 그러한 특징을 시어 사용에서부터 잘 보여 주고 있다.
즉, '안 오고'․'안 불고'․'가버린'․'잊어버린'․'오지 않는' 등의 부정적 의미의 시어들이 빈번히 나타나 있는 한편,
시간적 배경도 '밤'․'어둠'으로 설정되어 있다.
도봉(道峰) 박두진(朴斗鎭)
산새도 날아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 가곤
오지 않는다.
인적(人跡) 끊인 곳
홀로 앉은
가을 산의 어스름.
호오이 호오이 소리 높여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 보나
울림은 헛되이
빈 골 골을 되돌아올 뿐.
산그늘 길게 늘이며
붉게 해는 넘어가고,
황혼과 함께
이어 별과 밤은 오리니,
삶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갓 괴로울 뿐.
그대 위하여 나도 이제도, 이
긴 밤과 슬픔을 갖거니와,
이 밤을 그대는, 나도 모르는
어느 마을에서 쉬느뇨?
시작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자연을 시의 유일한 대상으로 삼은 박두진에게 있어서 자연은,
다른 자연파 시인들처럼 현실 도피의 수단이나 단순한 서경의 대상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감정 이입의 대상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현실 참여의 한 방편으로서 '삶을 위한 자연'이었다.
박두진의 시가 대부분 희망에 찬 열띤 목소리로 긍정적인 신념을 노래하고 있는 것에 반해,
이 시는 일제 말기의 암담한 현실 속에서 구원을 바라는 외로운 심경을 감미롭고 애조(哀調) 띤 서정성으로 표출함으로써
짙은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이 시는, 인간의 본원적 고독과 적막한 정서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시적 배경의 변모 과정과 대응하여 절제된 율감(律感)의 시어로
형상화된 작품으로, 내용에 따라 1~3연, 4~8연, 9~10연의 3단락으로 나누어진다.
강(江) 2 박두진(朴斗鎭)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날 강물은 숲에서 나와 흐르리.
비로소 채색되는 유유(悠悠)한 침묵
꽃으로 수장(水葬)하는 내일에의 날개짓.
아, 흥건하게 강물은 꽃에 젖어 흐르리.
무지개 피에 젖은 아침 숲 짐승 울음.
일체의 죽은 것은 떠내려 가리.
얼룽대는 배암 비늘 피발톱 독수리의,
이리 떼 비둘기 떼 깃죽지와 울대뼈의
피로 물든 일체는 바다로 가리.
비로소 햇살 아래 옷을 벗는 너의 전신(全身)
강이여. 강이여. 내일에의 피 몸짓.
네가 하는 손짓을 잊을 수가 없어
강 흐름 핏 길로 간다.
이 시는 앞선 시대의 작품들이 보여 준 바 있는 자연과 생명에 대한 정서적 감수성은 사라진 대신,
현실적 상황과 그 극복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인 작품이다.
박두진의 {거미와 성좌}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민족의 비극적 상황을 강한 어조로 고발하고 어두운 민족 현실을 구원하기 위한
역사 의식과 민족 의식을 통찰력 있게 제시한 시집이다.
<강 2>는 바로 이 시집의 주제 의식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 작품으로,
역사를 상징하는 '강'을 통해 고통으로 얼룩진 고난의 시대를 청산하고,
행복으로 가득찬 새로운 미래를 갈망하는 인간 역사를 노래하고 있다.
이념으로 인해 빚어진 동족 간의 갈등과 반목, 결국은 살상으로까지 이어진 민족의 비극을 통해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민족 정신이 무엇인지 구명(究明)하고 있다.
해 박두진(朴斗鎭)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너머 산 너머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너머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에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애띠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해'의 시인이요, 자연 교감의 정신을 불러 일으킨 박두진의 첫 시집 {해}의 표제가 된 이 작품은 8․15 해방이라는 벅찬 기쁨 속에서
민족의 웅대한 기대와 민족의 이상을 구가하던 시기에 씌어졌다.
이 시는 '해'라는 구체적 사물을 통해 광복의 기쁨을 제시하는 한편,
어둠이 걷힌 '청산(靑山)'에서 광명한 조국의 미래사, 민족의 낙원이 펼쳐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시인의 뜨거운 열망을 나타내고 있다.
광복이라는 무한한 자유와 기쁨 속에서는 모든 생명들이 서로 갈등을 빚거나 두려워할 것이 없이 평화롭게 화해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어둠'․'달밤'․'골짜기'․'칡범'․'짐승'은 악(惡)과 추(醜), 강자(强者)의 이미지를, '해'․'사슴'․'청산'․'꽃'․'새'는 선(善)과 미(美),
약자(弱者)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것으로, 시인은 이들의 대화합을 추구하며 사랑과 평화가 충만한 이상 세계를 그리고 있다.
3월 1일의 하늘 [박두진(朴斗鎭 1916∼1998)]
유관순(柳寬順) 누나로 하여 처음 나는
3월 하늘에 뜨거운 피 무늬가 어려 있음을 알았다.
우리들의 대지(大地)에 뜨거운 살과 피가 젖어 있음을 알았다.
우리들의 조국은 우리들의 조국,
우리들의 겨레는 우리들의 겨레,
우리들의 자유는 우리들의 자유이어야 함을 알았다.
아, 만세, 만세, 만세, 만세. 유관순 누나로 하여 처음 나는
우리들의 가슴 깊이 터져 솟아나는,
우리들의 억눌림, 우리들의 비겁(卑怯),을
피로써 뚫고 일어서는,
절규(絶叫)하는 깃발의 뜨거운 몸짓을 알았다.
유관순 누나는 저 오를레앙 쟌다르크의 살아서의 영예(榮譽),
죽어서의 신비(神秘)도 곁들이지 않은,
수수하고 다정한, 우리들의 누나,
흰 옷 입은 소녀의 불멸(不滅)의 순수(純粹),
아, 그 생명혼(生命魂)의 고갱이*의 아름다운 불길의,
영웅(英雄)도 신(神)도 공주(公主)도 아니었던,
그대로의 우리 마음, 그대로의 우리 핏줄,
일체(一切)의 불의(不義)와 일체의 악(惡)을 치는,
민족애(民族愛)의 순수 절정(絶頂), 조국애(祖國愛)의 꽃넋이다.
아, 유관순 누나, 누나, 누나, 누나,
언제나 3월이면, 언제나 만세 때면,
잦아 있는 우리 피에 용솟음을 일으키는
유관순 우리 누나, 보고 싶은 우리 누나.
그 뜨거운 불의 마음 내 마음에 받고 싶고,
내 뜨거운 맘 그 맘 속에 주고 싶은
유관순 누나로 하여 우리는 처음
저 아득한 3월의 고운 하늘]
푸름 속에 펄럭이는 피깃발의 외침을 알았다.
이 시는 3·1절을 맞이하여 3·1 독립 운동의 주요 인물이었던 유관순을 소재로 하여 조국애의 깨달음을 노래한 기념시다.
그러면서도 이 시는 기념시가 흔히 가지는 웅변조의 상투성을 극복하고, 우리 민족의 혈맥 속에 살아서
움직이는 민족혼을 힘차고 생생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제재는 '3·1절과 유관순 의사의 행적', 주제는 '민족애의 화신인 유관순 추모와 민족 정신(민족혼)의 고취'
"해마다 맞이하는 3·1절이면 그 3·1절의 참뜻을 어떻게 실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무감을 갖게 된다.
책으로 읽고 부모님에게서 그 때 정황을 자상하게 듣고서도 그래도 무엇인가 아쉬운 것이 남았다.
그럴 때마다 막연하게 느껴지고 의무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3·1절 그 당시의 광경을 다름 아닌 시로써 체험하고 싶었다.
어서 너는 오너라 / 박두진(朴斗鎭)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살구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너이 오 오래 정드리고 살다 간 집,
함부로 함부로 짓밟힌 울타리에, 앵두꽃도 오얏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낮이면 벌떼와 나비가 날고 밤이면 소쩍새가 울더라고 일러라.
다섯 뭍과, 여섯 바다와, 철이야, 아득한 구름 밖 아득한 하늘가에, 나는 어디로 향해야 너와 마주 서는 게냐.
달 밝으면 으례 뜰에 앉아 부는 내 피리의 설운 가락도 너는 못듣고, 골을 헤치며 산에 올라,
아침마다 푸른 봉우리에 올라 서면, 어어이 어어이 소리높여 부르는 나의 음성도 너는 못 듣는다.
어서 너는 오너라. 별들 서로 구슬피 헤여지고, 별들 서로 정답게 모이는 날,
흩어졌던 너이 형 아우 총총히 돌아오고, 흩어졌던 네 순이도 누이도 돌아오고,
너와 나와 자라나던, 막쇠도 돌이도 복술이도 왔다.
눈물과 피와 푸른빛 깃발을 날리며 오너라…….
비둘기와 꽃다발과 푸른빛 깃발을 날리며 너는 오너라…….
복사꽃 피고, 살구꽃 피는 곳, 너와 나와 뛰놀며 자라난 푸른 보리밭에 남풍은 불고,
젖빛 구름 보오얀 구름 속에 종달새는 운다.
기름진 냉이꽃 향기로운 언덕, 여기 푸른 잔디밭에 누어서, 철이야, 너는 늴 늴 늴 가락 맞춰 풀피리나 불고,
나는, 나는, 두둥실 두둥실 붕새춤 추며, 막쇠와, 돌이와, 복술이랑 함께,
우리, 우리, 옛날을, 옛날을 뒹굴어 보자.
* 붕새 :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큰 새, 날개가 삼천 리가 되고, 한 번에 구만리를 난다고 함.
바다 / 박두진(朴斗鎭)
바다가 와락
달려든다.
내가 앉은 모래 위에 ......
가슴으로,
벅찬 가슴으로 되어,
달려오는
푸른바다 !
바다는,
내게로 오는 바다는,
와락와락 거센 숨결.
날 데리러 어디서 오나 !
귀가 열려,
머언
바다에서 오는 소리에
자꾸만 내 귀가 열려.
나는 일어선다.
일어서며,
푸른 물 위로 걸어가고 싶다.
철벙 철벙
머언 바다 위로 걸어가고 싶다.
햇살 함빡 받고,
푸른 물 위를 밟으며 오는
당신의 바닷길......
바닷길을 나도,
푸른 바다를 밟으며 나도,
머언, 당신의 오는 길로 걸어가고 싶다
흙과 바람 / 박두진(朴斗鎭)
흙으로 빗어졌음 마침내 흙으로 돌아가리.
바람으로 불어넣었음 마침내
바람으로 돌아가리.
멀디먼 햇살의 바람 사이
햇살 속 바람으로 나부끼는 흙의 티끌
홀로서 무한 영원
별이 되어 탈지라도
말하리.
말할 수 있으리.
다만 너
살아생전
살의 살 뼈의 뼈로 영혼 깊이 보듬어
후회 없이
후회 없이
사랑했노라고.
산에 살어 / 박두진(朴斗鎭)
먼 첩첩 열굽이 꽃골짜기 돌아든 곳
내가 온 곳을 따라 너도 오라 숙아
머리에는 고운 산꽃을 따 달어 이브처럼 꾸미고
한아름 붉은 꽃을 가슴에 안고
새처럼 사뿐히 달려오듯 내게 오라 숙아
화장도 생활도 풍속도 버리고
여기 먼 아무도 없는 골에
천년을 산에 살러
내게 오라 숙아
오월에 / 박두진(朴斗鎭)
푸른 한 점 구름도 없이 개인 하늘이 호수에 잠겼습니다.
호수는, 푸른 하늘을 잠근 호수는, 푸른 머언 당신의 마음
볕 포근히 쏘이고, 푸른 나뭇잎 하늘대고,
하느대는 잎 사이, 여기저기 붉게 피는 꽃 무데기.
오월은, 재재대는, 적은 새의 떼와 더불어,
푸른 호수 가로, 호수 가로, 어울리는데,
당신은, 오월, 이, 부드러운 바람에도 안 설렙니까.
소란한 저자에서 나무와 꽃 잎 사이,
비록 아기자기 대수롭지도 않은 풍경이긴 하나,
내 조용히 묻고, 조용히 또 대답할 말 있어,
기인 한나절을, 나 어린 소년처럼 혼자 와 거닐어도,
당신은, 하늘처럼, 마음 푸른 당신은 안 오십니다.
이제는, 머언 언제 새로운 날 다시 있어,
내, 어느, 바다가 바라뵈는 언덕에 와 앉아,
오오래, 당신을 기다리기, 하늘로 맺혀 오른 고운 피의 얼이,
다시, 저, 푸른 하늘에서, 이슬처럼 내려 맺어
나의 앞에, 붉은 한 떨기 장미꽃이 피기까지,
나는, 또, 혼자, 오오래 소년처럼 기달릴까 봅니다.
고향(故鄕) / 박두진(朴斗鎭)
故鄕 이란다.
내가 낫 자라난 故鄕 이란다.
그 먼, 눈 날려 휩쓸고, 별도 얼어 떨던 밤에,
어딘지도 모르며 내가 태여 나던 곳,
짚자리에 떨어져 첫소리치던,
여기가 내가 살던 故鄕 이란다.
靑龍山 옛날같이 둘리워 있고,
우러르던 예 하늘 푸르렀어라.
구름 피어 오르고, 송아지 울음 울고,
마을에는 제비 떼들 지줄대건만,
막쇠랑, 북술이랑, 옛날에 놀던 동무 다 어디가고,
둘 이만 나룻 터럭 거칠어졌네.
二十年 흘렀는가, 덧 없는 歲月......
뜬 구름 돌아 오듯 내가 돌아 왔거니,
푸른 하늘만이 옛처럼 포근 해 줄뿐,
故鄕은 날 본듯 하여,......
또 하나 어디엔가 그리운 故鄕,
마음 못내 서러워 눈물져 온다.
엷은 가을 볕.
외로운 산기슭에 아버님 무덤.
산딸기 빠알갛게 열매져 있고,
그늘진 나무 하나 안 서 있는곳,
푸른 새도 한마리 와서 울지 않는다.
石竹이랑 산菊花랑 한 묶음 산꽃들을 꺽어다 놓고,
-- 아버님 !......
부를 수도 울 수도 없이, 한나절 뷘산에 목메여 본다.
어쩌면 나도 와서 묻힐 기슭에 뜬 구름 바라보며 호젓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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