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 여행
나이가 들어서도 설레이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배낭을 들춰 메고 보름 예정으로 여행을 떠나려는 전야이다.
여늬때 처럼 촘촘하게 적힌 종이 한장을 들고 빨간 볼펜으로 하나씩 선을 그어 가며 여행에 필요한 물건을 배낭에 챙기고 있는 것이다. 겨울여행이라 그런지 28리터 배낭이 아주 적은 것 같다. 팽팽해진 배낭을 현관 옆 소파에 놓고, 내일 입고 갈 옷과 모자와 장갑까지 다 준비를 해 놓으니 한결 마음이 가볍다.
1박2일 이나 몇일 동안의 여행은 집 사람과 여러차례 갔었으나, 아들과 딸이 취직을 하여 곁에 없다 보니 부부가 같이 여행을 한다는 자체가 많이 뜸해졌다. 이해심 많은 집사람 덕에 육지로 나가는 일이 많아 졌으며, 오늘도 장기간의 여행이란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 새벽 3시에 비비(노래연습장)를 마감하고 왔어도 잠이 오질 안는다. 얼마를 뒤척였을까. 잠깐 잠이 들었지만 모닝콜이 울리기도 전에 기상을 한다. 곤히 잠들어 있는 가족들이 깰까봐 조용히 모든 소지품을 들고 메고 해서는 집을 나선다. 아파트 현관 앞에 22호가 역시나 잠들어 있다. “나 여행 간다 보름 후에 보자”라고 말을 건네고는 12월 중순이 지나서 인지 새벽 공기가 차다. 심호흡을 하니 코가 찡하다. 넥 워머를 위로 올려 마스크처럼 쓰고,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여행이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또한 승선 시간이 걸어서 가도 될 만큼 충분하기도 해서 묵직한 배낭하나를 메고 부지런히 걸어 국제부두까지 도착을 한다. 모자 속 이마에 땀이 배어있다.
8시 20분에 출항하는 카훼리에 몸을 맡기니 금새 잠이 든다. 얼마를 잤을까 옆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에 잠은 깼으나 일어나 앉을 생각도 없어 누워 있으면서 완도에 도착하면 어느 쪽으로 갈까 하고 생각하다 그것 역시 접었다. 목적지 없는 여행인데 생각나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가보자는 속셈이다.
커다란 관광안내도 앞에서 순간적인 선택을 한다. 그래 서해안을 끼고 올라가자. 목포, 무안, 함평, 정읍, 전주, 공주, 당진을 거쳐 서산에 도착하니 벌써 몇일이 지나 있었다. 서산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지도를 보는데 태안반도 제일 끝에 까지 가보자는 생각이 든다. 언제 다시 여기까지 와 보겠냐는 마음에서 다음 날 다시 버스의 신세를 진다. 반도의 끝자락 구매항에서 연안여객선을 이용하지 않으면 멀고 먼 길을 되돌아가야 한단다. 겨울 바다는 춥다. 구매항에서 지금도 잊혀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조그만 방파제 등대 옆에서 젊게 보이는 남녀가 꼭 껴안아 서 있던 모습이다, 그 매서운 겨울바다 바람을 남자가 입고 있는 겨울코트로 감싸 안아 움직일줄 모르고 서 있던 그 관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대천으로 출항하는 연안 여객선을 타고 한참을 멀어져 안보일 거리가 되어도 그대로 안고 있던 그때의 사진을 보면서 생각을 해 본다. 그 후 얼마나 더 오래 서로를 껴안고 있었을까 하는 궁금함이다.
원산도를 거쳐 대천연안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땅거미가 지려는 초저녁, 보령시까지 가야 찜질방이 있으며 차가 잘 안 온다는 택시기사의 말을 무시해 버렸다. 장사속이라 생각하며...하지만 1시간 30여분 동안 버스는커녕 택시도 없었다. 매서운 겨울밤, 바다 바람까지 맞아가면서 버스를 기다리던 초라함이 얼마나 22(자가용)호를 생각하고 그리웠는지 모른다. 배가 곺은데 집에 꿀떡이 있으면 뭘 하누.....보령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대전을 거쳐 천안을 휘돌아 서울에 도착하니 12월 30일이다. 그래 강릉이다. 신년 해돚이를 보러가자. 중간 기착지인 원주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눈 내리는 국도를 따라 바퀴에 체인을 쳐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강릉에 도착을 하니 오전 10시경이다. 경포대해수욕장 근처에서 찜질방 위치를 알아보려고 배낭매고 있는 아가씨에게 접근하여 얘기하다보니 그쪽도 혼자 여행을 온 강릉이 처음이란다. 충남 서산시내의 모 초등학교 교사라던 27세의 아가씨, 며느리 감인데 키가 작다. 통통하다. 아니다 싶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마음에 썩 들지는 않아도 남자친구도 있단다.
여교사의 제안에 따라 5만원씩 갹출하여 택시를 타고 대관령을 가는데 눈이 내리고 바닥이 꽁꽁 얼어 행동이 자유롭지가 못했다. 얼마나 춥고 바람이 매서웠던지 지금도 생각하면 오싹하다. 내복 입기를 지금도 꺼려하고 있던터라 그 혹한을 이기기에는 힘이 들었다. 대관령을 내려오면서 둘이는 부녀처럼 강릉박물관 미술관을 관람하다보니 2만원이 남아 순두부에 인동초 막걸리까지 곁들이고는 나는 나대로 찜질방에 일찍 자리를 잡았다. 밤 11시가 넘자 찜질방은 초만원,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 틈에서 나를 찿았는지 찜질방 앞에서 헤어졌던 여선생이 온 것이다. 10여 분간 얘기하다 확보한 공간이 없어질까 걱정하면서 사람들 틈으로 사라져 갔다. 새벽 5시경에 일어나 보니 찜질방은 복도 계단까지 발 디딜 틈 없이 꽉차 있어 양치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강릉경포대의 바다는 거칠었다. 떠오르는 새해의 태양을 보려고 인산인해다. 운수가 좋아서 일까, 수평선위로 붉은 태양이 솟아오른다. 경건한 마음으로 합장을 하고 가족의 건강을 빈다. 바쁘다 사진도 찍어야한다. 다시 합장하고 가족과 지인의 무사안녕을 빈다. 뒤돌아서 수많은 사람들이 합장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해가 10시 방향을 조금 지날 때 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 많은 차량이 엉켜 30여분을 더 기다린다는 이들도 있었다. 지금은 차 없는 것이 좋은것 같다라는 어리석은 생각도 해 본다.
배낭여행, 길에서 또는 버스 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아 아쉽다. 버스를 오래 기다릴 땐 자가용을 타고 내 앞을 지나는 사람들이 부럽다. 다음엔 애마랑 같이 와야지 하고 생각도 해보며 왔던 길을 다시 직행버스를 타고 원주를 거쳐 서울에 도착한다. 서울에 사는 여동생이나 지인까지도 찿아 가기가 꺼려진다. 생각지도 안는 불청객 신세가 누를 끼칠까봐. 라는 조바심이 외고집 일까. 집이 그리워 진다. 김포공항에서 항공기 편으로 고향땅을 밟으니 컴컴한 밤이다. 집사람이 있는 매장을 찿아 얼굴을 내밀자 반색을 하면서도 “예상 밖이다”라는 인상을 준다. 집으로 걸어가면서 날자를 헤아려 보니 열흘밖에 안됐다. 하기야 집사람에게는 여행기간을 알려주지 않아 기다리다 지쳐 삐칠 수도 있음이다.
“너무 일찍 귀가를 했나, 다시 나가서 5일을 더 돌아다녀” 하는 또 다른 나의 생각이 한순간 뇌리를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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