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마음
준원 김재훈
국가공무원 공체시험에 합격을 했어도 3년을 기다린 끝에 첫 발령을 받아 이제 내일이면 특수교육 연수를 가야하는 시점에 있는 딸애가 부모의 슬하를 떠나 처음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 딧는 곳이 대한민국의 서울도 아닌 미국의 워싱턴이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취업을 위한 원정 공부의 길을 찿아 서울에 있는 고시원으로 떠난지 3년, 그래도 취업의 좁은 문은 열리지가 않았었다. 여린 딸을 타지로 보내고는 늘 걱정이 앞섰다. 아침에 전화하고, 저녁에도 숙소에 돌아오면 통화하고, 점심의 메뉴로 부터 저녁에는 따뜻한 국물이 있는 음식을 식당에서 먹어라. 감기조심, 차조심 가파른 철제계단 조심해라는 등등이 내용이다. 이러한 부모의 뒷바라지도 아랑곳 없이 결과는 집에서 공부를 한다는 명목으로 고시원을 등지고 만다.
공직에 대한 운이 없음인지.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은 것 같다고 하지만, 다른 가산점이 붙어있는 응시생에게 뒤지곤 했다. 월남전에라도 참전하여 내가 부상을 입으면 유공자의 자녀로 가산점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을, 하고 때늦은 어리석은 생각도 했었다. 얼마나 안타깝고 안스러워 했으면 이러한 생각까지 했겠는가, 열과 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 합격하고도 남을 만큼 이며, 공부방에도 시험에 필요한 메모지가 벽은 물론 스탠드에도 빈 공간 없이 붙여져 있다. 밤 3시가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 책과 씨름을 하는 것이다. 많은 학생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하는 노래 연습장 카운터에서도 책을 멀리하지 않았다. 딸애가 공부하는데 편히 그리고 일찍 잠자리에 드는 부모는 많지 않을 것이다. 고3생의 부모라면 부모 역시도 수능에 같이 임하는 자세가 필요 하듯이, 나 역시도 거실에서 책을 읽든지 아니면 TV 볼륨을 아주 작게 켜놓고 영화를 본다든가 하며 밤늦게 까지 같이 있는 날들이 많았다.
지금은 공직자 체용 시험에 나이 제한이 없지만, 마지막으로 본 기다림이다. 합격자 발표 하던 날, 컴 앞에 한참 동안이나 앉아있던 딸애가 응시번호가 없다며 끝내 울음을 터트린다. 거실 소파에 앉아 딸애의 분위기를 살피던 나와 집사람은 암담 그 자체였다.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공직에 연이 없는 것인가. 이럴수가,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컴 앞에 앉아 응시 번호가 빼곡하게 나열 되어 있는, 제일 위쪽 줄 좌측에서부터 딸애의 수험번호를 찿기 시작한다. 첫째 줄엔 없다. 헌데 웬일인가 둘째 줄 제일 왼쪽에 비슷한 번호가 있어 딸애에게 알고 있는 번호 인데도 확인 차 물었다. 아무리 봐도 알려준 번호와 일치한다. “여기 있다”라는 소리에 딸애가 달려와 확인을 하더니 맞다 는 것이다. 그 순간은 나도 집사람도 “만세 합격이다”를 목청껏 외쳤다. 딸애도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에 웃음을 보인다. 그 후에 행여나 하여 전화로 합격 여부를 재확인 하기도 했음은 물론이다.
면접이라는 두 번째 관문이 기다린다. 다시 시작된 면접에 대한 공부와 실기, 남들은 1개월 동안 서울에 있는 면접학원에서 의상과 말하기 답변하기 자세 등등을 익히고 배운다고 한다. 부모된 입장에서는 딸애도 남들처럼 그래 주기를 바랬으나, 상경하고 하룻만에 돌아온 것이다. 첫 관문을 어렵게 지났는데...2차에서도 많은 인원이 탈락을 한다는데...속상한 마음에 간부직에 몸 담았던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부모의 입장에서 도움 될 일이 없을까 해서이다. 딸애를 믿고 기다리란다.
1차 시험을 치르던 날도, 면접시험에 응하는 날도, 우리 두 부부는 평소에 자주 다녔던 석굴암을 아침 일찍 찿았었다. 서울에서 면접이 끝나고 통화를 하는데 딸애의 목소리가 아주 밝다. 면접관이 질문을 영어로 했는데 그때마다 답변을 영어로 잘 했다는 내용이고, 서울에 있는 친구를 만나고 이틀 후에 내려온다는 여유로움을 보이는 걸 보면, 좋은 결과가 있으려나 보다 하는 생각도 들지만 한쪽으로는 최종 합격 발표가 조바심 속에 기다려지기도 하였다.
최종합격 통보는 발표 3일 전에 딸애의 전화로 알려왔다. 대견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 후 몇일 동안은 친구를 만나 놀기도 하더니 다시금 방에 들어앉아 공부를 한다. 7급 준비를 하나보다 했었다. 아니였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면접을 치르고 난후에 면접관 한분이 딸애를 부르더니 이러한 시험도 있으니 한번 응시해 보라는 것이다. 그 내용에 매력을 느끼고 열심히 한 결과 법무부 현직 직원들 중에서 12명을 선발하여 1년간 미국 특수연수를 가는 코스에 당당히 다시 합격을 한다, 그 중에는 고위직도 있으며 검사도 있다고 했다.
품안에 자식이라 했던가. 보내면서도 마음 한편에선 새내기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딸애라서 더더욱 걱정이 되는 것은 다른 부모들도 같은 생각일 것이라 여겨진다. 내 고향 애월에 계신 어머니께서 60이 넘은 아들 걱정을 하는 걸 보면 나이가 들어도 자식에 대한 애정과 생각은 언제나 첫 째인 것 같다. 이제 우물 밖으로 나와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아니 내 몰아야 할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파이팅을 서로 주고 받는다. 딸애가 공항 검색대를 지난 뒤 돌아 서서 손을 흔들어 보인다. 집 사람도 나도, 손을 흔들어 배웅을 하면서 같은 생각이리라. 항시 건강하고 많이 보고 배워서 좋은 성적으로 돌아오라는 염원을 담은 굳은 손짓이기도 하였다.
준원 김재훈
- 애월리 출생
- 한국공항공사(33년) : 정년퇴임
- 문예사조 : 수필 신인상 수상 등단
- 한맥문학 : 시詩 신인상 수상 등단
- 문예사조 : 문인협회 회원
- 애월읍문학회 : 사무국장, (현)감사
- 한국문인협회 : 제주문인협회 회원
- 한국사진작가 : 협회 회원
- 한국사진작가 : 협회 제주지회 회원
- 백록문학회 : 회원
- 상록사진학회 : 감사 부회장 역임
E-mail : kim-jh2790 @ 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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