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카메라
5월 하순 아침 새벽녘이라 그런지 조금은 싸늘한 느낌이 든다.
낯 설은 타향 남원의 한 공원입구에서 밤새 차가워진 큰 자연석 돌덩이 위에 앉자서 가끔씩 내 앞을 지나치는 택시를 바라보며 무언가 기다리는 듯 초라한 모습으로 있는 것이다.
어느 날 아침 훼리를 타고 완도로 향한다. 여늬때와 비교해서 여행에 다른점이 있다면, 여행 목적지가 확실하게 정한 코스라는 것 외에는 없다. 전라도 지방 내륙 깊숙한 곳에 위치한 담양과 남원이다. 천년의 신비가 살아 숨을 쉰다는 청자골 강진에서 1박을 하고, 광주를 거쳐 담양에 이른다. 죽녹원에서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왕대나무의 커다란 죽순을 호기심 가득한 양 디카에 열심히 담는다. 물론 많은 왕대나무와 공예품 까지도 보고 찍고 사기도 하였다.
땅거미가 지고 주위가 캄캄하자 담양에서 1박을 할까 생각하다가 밝은 날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 버스 편으로 남원에 도착을 하니 한밤중이다. 혼자서 다니는 배낭여행이라 모텔은 아니고 찜질방을 찿았지만 주위에는 없다. 어느 건장한 청년이 세심한 안내에 따라, 택시를 타고 남원 시내를 한참이나 벗어난 곳의 찜질방에서 하루의 여정을 푼다. 물론 저녁은 찜질방에서 김치찌개를 시켜 해결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씨라 그런지 아주 상쾌한 아침이다. 배낭을 들춰매고 나오려는데 찜질방 아주머니께서 빨리 큰길까지 가셔야만 1시간에 한 차례 다니는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말에 이백여 미터를 한숨에 달려 큰길로 나왔으나, 지나쳐 버렸는지 한참을 기다려도 버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길가 옆으로 맑은 물이 흐르고, 뒤쪽에는 산이 있으며 그 산기슭에 자리잡은 찜질방 건물이 산천과 어우러져 너무 배경이 좋아 배낭속의 디카를 꺼내 자연을 담는다. 이른 아침이라 지나치는 차량도 뜸한데 얼마를 기다렸을까 마침 지나치는 빈 택시에 탑승 하고는 목적지에서 혹시나 잊고 내릴까 봐 디카의 손잡이 끈을 손목에 걸었다. 택시 기사하고 남원 관광에 대해 얘기도 하고,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몇 커트 찍기도 한다. 목적지인 춘향테마파크 입구에서 내리고는 입구에서 부터 흔적을 남기려 디카를 찿았으나 녀석은 어디에도 없다. 아차! 싶었으나 택시는 가고 없고, 모든 것이 끝나 여운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택시를 기다리는 손님인양 보였을까 몇 대의 빈 택시가 내가 앉은 곁을 천천히 지나간다. 행여나 했지만 “빈 택시가 왔으니 타세요”라고 하는 느낌이다. 이러한 모습으로 보여지는 내 모습이 싫다. 그래서 배낭을 옆에 둔 채로 팔운동도 해보고, 십여미터 뜀질도 해보지만 머릿속은 복잡하다. 결론은 카메라 없이 관광을 하는 자체가 무의미 하다는 느낌도 들고, 한 시간정도 기다리다 변함이 없으면 시내에서 디카를 구입한다는 생각에 까지 이른다. 기사가 뒷좌석에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도 없고, 택시를 이용하는 승객이 갖고 내리면 그만이다. 행여나 하는 요행의 바램은 막연한 기다림의 마음만 있을 뿐이다.
한 시간이 다 되어 갈수록 마음이 초조해지고, 기다림이 헛된 일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 이제는 자리를 뜰까 하는데, 택시가 서행으로 모퉁이를 돌아 내 앞으로 다가온다. 느낌으로 왔구나!
아니나 다를까. 앉아있는 내 곁에 세웁니다. 기십만원 하는 낡은 디카도, 그 속에 저장되어 있는 많은 매체도 아닙니다, 순간의 저의 마음은 어린애 마냥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서서 반색을 합니다. 택시 이용 승객이 뒷좌석에 있던 카메라를 건네줘서 가지고 왔을 뿐이라며 사례 역시도 마다하는 택시기사, 비록 제 명함 한장을 건네주면서 제주도에 오시면 꼭 전화 주십시오. 점심이라도 대접하고 싶다는 말이 전부였다. 천천히 미끄러져 가는 차량의 번호를 외운다. 잊혀질까 봐서 즉시 메모장에 적지만 조바심한 나머지 차량번호를 잘못 메모하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했었다.
지금까지의 복잡했던 머리는 사그라져 버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배낭을 메고는 녀석이 다시는 내 곁을 떠나지 못하게 꼬옥 잡는다.
아직은 공원 관리인들도 출근을 하지 않아 무료입장이다. 테마파크를 들어서니 잘 가꾸어 진 빨간 장미가 무더기로 나를 반긴다. “오늘 하루는 남원에서 1박을 하자”라는 생각에 까지 미치자 서두를 일 조차 없다. 남원 시내가 훤히 한눈에 보이는 공원을 한바퀴 돌고는 춘향교를 지나 시내로 들어서니 배가 허전하다. 평상시 고향 제주에서는 별로 반기지 않는 추어탕이지만 공기밥 두 그릇까지 해치운다. 그리고는 지척에 위치한 광한루에서 오작교를 두 차례나 왕복하곤 했었다.
조그만 디카에 담은 사진은 삼백여장, 내 블로그 “솔내음 가득한 들녘”에 사진작업을 끝내고는 남원시청과 남원경찰서 자유게시판에 이번에 있었던 선행 사실을 알리고 싶어 글을 올렸다.
몇 일후 남원 경찰서장께서 직접 전화가 왔는데 좌초지종을 듣고는 오히려 나에게 심한 전라도 사투리로 “고맙습니다”라는 말과 더블어 “사랑의 도시 건강한 남원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남원을 다시 찿아주십시오”한다. 그런 통화가 있는 후에도 서장과 한차례 더 통화를 했었다. 어느 날 전화가 왔는데 택시기사였다. “김재훈 선생님이시죠! 고맙습니다. 덕분에 서장 표창을 받았습니다.”한다. “제가 더 고맙구요. 제주에 오시면 꼭 전화 주십시오. 식사라도 같이 하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이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소식은 없다.
남원(市化:철쭉, 市木:배롱나무, 市鳥:제비)시청에서는 춘향제, 황산 대첩제, 지리산 뱀사골 단풍제, 바래봉 철쭉제 등등이 있다. 이러한 행사가 도래 했을때는 지금까지도 으레 남원을 찿아 달라고 이메일로 안내문을 보내온다.
2006년도 퇴직기념으로 직장에서 알선한 일본 여행(부부동반)을 갔다가 현지 면세점에서 딸애의 선물로 한화 40여만원을 지불하고 샀는데, 지금은 많이 낡은 감은 있으나 아직까지도 갖고 다닐만하다. 따로 전문가용 카메라를 구입하긴 했지만 녀석은 내가 필요로 하고, 정도 많이 들었고, 녀석을 걸쳐간 사진은 어름잡아 만여장을 훌쩍 넘을 듯 하다. 어떻게 보면 녀석이 능력을 한껏 발휘한 것 같아 대견스럽기도 하고, 해서 지금도 늘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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