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詩 와 문학文學

◈ - 이육사 (李陸史) - 청포도 외 10 편

by 준원 김재훈 2008. 8. 23.

 








이육사(李陸史)

 



      청포도 - 이 육 사 -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



청포도 / 이육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주절이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淸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 이육사(李陸史)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나리쟎는 그 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북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 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자거려
제비 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바리지 못할 약속이여.

 

 

한 바다 복판 용솟음치는 곳
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 성에는
나비처럼 취하는 회상의 무리들아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

 


 

 

광야 / 이육사(李陸史)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 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나의 뮤즈 / 이육사(李陸史)


아주 헐벗은 나의 뮤-즈는
한번도 기야 싶은 날이 없어
사뭇 밤만을 왕자처럼 누려 왔소

 

아무것도 없는 주제였만도
모든 것이 제것인 듯 뻐틔는 멋이야
그냥 인드라의 영토를 날라도 단인다오   


고향은 어데라 물어도 말은 않지만
처음은 정녕 북해안 매운 바람속에 자라
대곤(大鯤)을 타고 단였단 것이 일생의 자랑이죠

 

계집을 사랑커든 수염이 너무 주체스럽다도
취(醉)하면 행랑 뒤ㅅ골목을 돌아서 단이며
복보다 크고 흰 귀를 자조 망토로 가리오

 

그러나 나와는 몇 천 겁(劫) 동안이나
바루 비취가 녹아 나는듯한 돌샘ㅅ가에
향연이 벌어지면 부르는 노래란 목청이 외골수요


밤도 시진하고 닭소래 들릴 때면
그만 그는 별 계단을 성큼성큼 올러가고
나는 초ㅅ불도 꺼져 백합꽃 밭에 옷깃이 젓도록 잤소




일식 / 이육사(李陸史) 


 

쟁반에 먹물을 담아 비쳐본 어린날
불개는 그만 하나밖에 없는 내 날을 먹었다

 

날과 땅이 한줄우에 돈다는 고 순간만이라도
차라리 헛말이기를 밤마다 정녕 빌어도 보았다

 

마침내 가슴은 동굴보다 어두워 설래인고녀
다만 한봉오리 피려는 장미 벌레가 좀치렸다

 

그래서 더 예쁘고 진정 덧없지 아니하냐
또 어데 다른 하날을 얻어
이슬 젖은 별빛에 가꾸련다    

 

 

 

 

아미  / 이육사(李陸史)

 

향수(鄕愁)에 철나면 눈섶이 기난이요
바다랑 바람이랑 그 사이 태여 났고
나라마다 어진 풍속 자랐겠죠

 

짓푸른 깁장을 나서면 그 몸매
하이얀 깃옷은 휘둘러 눈부시고
정녕 왈쓰라도 추실란가봐요

 

해ㅅ살같이 펼쳐진 부채는 감춰도
도톰한 손껼 교소(驕笑)를 가루어서
공주의 홀(笏)보다 깨끗이 떨리요

 

언제나 모듬에 지쳐서 돌아오면
꽃다발 향기조차 기억만 새로워라
찬젓때 소리에다 옷끈을 흘려보내고

 

초ㅅ불처럼 타오르는 가슴속 사념은
진정 누구를 애끼시는 속죄(贖罪)라오
발아래 가득히 황혼이 나우리치오

 

달빛은 서늘한 원주(圓柱)아래 듭시면
장미(薔薇)쪄 이고 장미쪄 흩으시고
아련히 가시는곳 그 어딘가 보이오

 

 


 

황혼 / 이육사(李陸史) 

 

내 골방의 커-텐을 걷고
정성된 마음으로 황혼을 맞아드리노니
바다의 흰 갈매기들 같이도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황혼아, 네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밀라.
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맞추어 보련다.
그리고 네 품안에 안긴 모든 것에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 다오.

 

저 십이(十二) 성좌(星座)의 반짝이는 별들에게도,
종소리 저문 삼림(森林) 속 그윽한 수녀(修女)들에게도,
시멘트 장판 위 그 많은 수인(囚人)들에게도,
의지 가지 없는 그들의 심장(心臟)이 얼마나 떨고 있는가.

 

고비사막(沙漠)을 걸어가는 낙타(駱駝) 탄 행상대(行商隊)에게나,
아프리카 녹음(綠陰) 속 활 쏘는 토인(土人)들에게라도,
황혼아, 네 부드러운 품안에 안기는 동안이라도
지구(地球)의 반(半)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맡겨 다오.

 

내 오월(五月)의 골방이 아늑도 하니
황혼아, 내일(來日)도 또 저 푸른 커튼을 걷게 하겠지.
암암(暗暗)히 사라지는 시냇물 소리 같아서
한 번 식어지면 다시는 돌아올 줄 모르나 보다.

 

 

 

 

파초 / 이육사(李陸史)

 

 

 

항상 앓는 나의 숨껼이 오늘은
해월(海月)처럼 게을러 은빛 물껼에 뜨나니

 

파초 너의 푸른 옷깃을 들어
이닷 타는 입술을 추겨주렴

 

그 옛쩍 사라센의 마즈막 날엔
기약없이 흩어진 두날 넋이었어라

 

젊은 여인들의 잡아 못논 소매끝엔
고은 소금조차 아즉 꿈을 짜는데

 

먼 성좌와 새로운 꽃들을 볼때마다
잊었던 계절을 몇번 눈우에 그렷느뇨

 

차라리 천년 뒤 이 가을밤 나와 함께
비ㅅ소리는 얼마나 긴가 재어보자

 

그리고 새벽하늘 어데 무지개 서면
무지개 밟고 다시 끝없이 헤여지세

 

 


 

 

강 건너간노래 / 이육사(李陸史)

 

 

섣달에도 보름께 달 밝은밤
앞 냇강 쨍쨍 얼어 조이던 밤에
내가 부르던 노래는 강건너 갔소

 

강건너 하늘 끝에 사막도 다은곳
내 노래는 제비같이 날러서 갔소

 

못잊을 계집애나 집조차 없다기
가기는 갔지만 어린날개 지치면
그만 어느 모래ㅅ불에 떨어져 타 죽겠소

 

사막은 끝없이 푸른 하늘이 덮여
눈물먹은 별들이 조상오는 밤

 

밤은 옛ㅅ일을 무지개보다 곱게 짜내나니
한가락 여기두고 또 한가락 어데멘가
내가 부른 노래는 그 밤에 강건너 갔소

 

 


 

노정기 / 이육사(李陸史)

 

 

목숨이란 마치 깨어진 뱃조각
여기저기 흩어져 마음이 구죽죽한 어촌(漁村)보담 어설프고
삶의 티끌만 오래 묵은 포범(布帆)처럼 달아매었다

 

남들은 기뻤다는 젊은 날이었건만
밤마다 내 꿈은 서해(西海)를 밀항(密航)하는 쩡크와 같아
소금에 절고 조수(潮水)에 부풀어 올랐다

 

항상 흐릿한 밤 암초(暗礁)를 벗어나면 태풍(颱風)과 싸워가고
전설(傳說)에 읽어 본 산호도(珊瑚島)는 구경도 못하는
그곳은 남십자성(南十字星)이 비쳐주도 않았다

 

쫓기는 마음 지친 몸이길래
그리운 지평선(地平線)을 한숨에 기오르면
시궁치는 열대식물(熱帶植物)처럼 발목을 오여 쌌다

 

새벽 밀물에 밀려온 거미이냐
다 삭아빠진 소라 껍질에 나는 붙어 왔다
머-ㄴ 항구(港口)의 노정(路程)에 흘러간 생활(生活)을 드려다보며

 

 

 

 

소년에게  / 이육사(李陸史)

 

 

 

차듸찬 아침이슬
진주가 빛나는 못가
연꽃 하나 다복히 피고

 

소년아 네가 낳다니
맑은 넋에 깃드려
박꽃처럼 자랐세라

 

큰강 목놓아 흘러
여울은 흰 돌쪽마다
소리 석양을 새기고

 

너는 준마(駿馬) 달리며
죽도(竹刀) 져 곧은 기운을
목숨같이 사랑했거늘

 

거리를 쫓아 단여도
분수(噴水)있는 풍경속에
동상답게 서봐도 좋다

 

서풍 뺨을 스치고
하늘 한가 구름 뜨는곳
희고 푸른 지음을 노래하며

 

그래 가락은 흔들리고
별들 춥다 얼어붙고
너조차 미친들 어떠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