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가던 날
시골 가던날 - 2010년 1월 월간 문예사조 신인상 수상작
자동차 계기판이 60킬로를 가리킨다. 엑셀레이더를 밟으니 70을 지나 80에 이른다.
얼마를 더 주행 했을까, 속도감에 젖을 즈음 다급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천천히 다녀라!”
순간 브레이크를 밟으니 60키로 까지 계기판이 다시 내려간다. 통화할 때마다 어머니가 늘 하시는 말씀이다.
금년 연세가 81세인 노모께서 60이 된 아들에게 늘 하시는 얘기이다. 어머니의 마음엔 내가 어리게만 보이고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26년 전에 아버지를 여의고 시골에서 혼자 살고 계시는 어머니. 어머니는 중산간 납읍이란 마을에 사셨는데 4.3사건이 터지자 소개명령이 내려져 해안부락 애월에 오게 되었다. 마침 이웃에 살던 처녀 총각은 눈이 맞았고 이듬해에 아버지는 말 타고, 어머니는 연지곤지 바르고 가마를 타서 시집을 왔다고 한다. 참으로 어려운 시대를 살아오면서 슬하에 1남 2녀를 두시고 여동생 둘을 시집보내시고 나서는 오직 아들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신다는 어머니시다. 그러니 나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과 관심은 삶의 전부이리라. 나 또한 시골에 홀로 외롭게 사시는 어머니가 늘 걱정이다. 집사람과 상의를 해서 어머니를 모시려고 여러 번 시도하였지만 그 때마다 어머니는 완강하시다. 심지어 아버지 기일이나 설, 추석날 하루만이라도 손자 손녀와 지내시라고 하여도 그날로 시골로 가신다. 누구 감옥 살 일 있느냐? 시며 아파트의 삶을 한사코 거절하신다. 그저 당신이 사시는 시골 슬레이트집이 제일 편하다고 하신다. 하기야 시내에 와서 함께 지내신다 해도 친구도 없지, 갈 데도 없지, 할 일도 없지, 감옥 삶이 따로 없다. 우리부부는 일에 매달리고, 딸애는 출근하고, 아들 녀석은 공부한답시고 서울에 가 있기에 오직 벗이라고 해봐야 텔레비전뿐이다.
나면서부터 시골에 사셨으니 시골이 어머니의 전 생활공간이다. 그래도 시골에는 자식 자랑하며 얘기를 나눌 친구도 있고, 노인정에 가서 스포츠댄스도 배우고, 밭뙈기 하나에 매달려서 싸우다보면 제법 용돈도 나오고하니, 한 푼, 두 푼 돈 모으는 재미도 쏠쏠하다는 것이다. 그러시면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그 때에 오시겠단다.“치매가 오기전에 죽어야 될 텐데” 중얼거리시며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를 소원하신다.
내가 시골 어머니를 뵈러간다고 하자 안사람은 이것저것 밑반찬이며 어머니께서 좋아 하시는 단감, 돼지고기 그리고 버섯과 바닷고기 등 고루고루 챙겼다. 나는 아직까지 건강하신 어머니가 너무 고맙다. 이제 모자 상봉을 위해 시골로 달리는 마음은 가볍고도 상큼하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느긋한 마음으로 차를 몰며 눈에 익숙한 시골길을 달려 어머니를 뵐 생각을 하니 어린애처럼 마음이 뜨는 것을 어쩌지 못한다.
그런데 어머니는 계시지 않았다. 이웃하고 있는 사촌 형님 댁에 가보아도 없었다. 미리 전화 드리지 못함을 아쉬워하면서 가까운 밭으로 가보았으나 밭에도 어머니는 계시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싸들고 온 것들을 냉장고에 차근차근 넣어두고는 청소를 하기로 하였다. 언제나 시골집에 오면 무엇보다 먼저 대청소를 한다. 웃옷을 벗어 놓고는 어머니께서 기거 하시는 방부터 시작이다. 어머니의 방에서 나는 독특한 냄새가 그리 싫지가 않다. 방문을 활짝 열어 제치고 미리 깔아둔 이불과 요를 마당에서 훌훌 털고는 빨래 줄에 넌다. 방안에 있는 먼지를 털어내고, 빗자루 질을 한 후 걸레를 빨아서는 옛날 교실청소를 하듯 왔다갔다 기어 다니면서 닦는다.
마루까지 한바탕 청소를 하고 난 후에는 마당 한쪽에 나란히 있는 분재에 물을 준다. 26년 전 아버지 생존 시에 손수 가꾸시던 것들인데 처음에는 70여분이던 것이 지금 열두 분밖에 없다. 어머니께서 밭에 가셔서 집을 비울 때면 누군가 좋은 것들로 하나 둘 가져가 버리고, 더러는 관리 소홀로 죽어 버렸다. 그래도 물을 주고 전정가위로 다듬어줄 때면 아버지의 손길과 온기가 와 닿는다. 마침 올래(골목)를 지나가시던 당숙모께서 돌담 너머로 나를 보시고는“하룡이 아방 왔구나! 어머니 밀감 따러 갔다”하는 것이다. 밀감을 따러 가셨으면 저물어서야 오실 것이다. 나는 널어둔 이부자리를 거둬 어머니 방에다 깔아 놓고는 돌아가기로 하였다. 기다렸다가 어머니를 뵙고 가야 하겠지만 너무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왠지 어머니에게 일을 부탁하는 이들이 미워졌다. 또 한편으로는 아직 남의 일을 할 수 있는 건강한 어머니가 고맙게 여겨지기도 하였다. 한 마음으로 두 가지 생각이 오락가락하였다. “사람의 마음은 朝夕變’이란 말이 있는데, 때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어서 못 믿을 사람이라 했는가?”
돌아오는 길은 오랜만에 해안도로를 타기로 하였다. 서행을 하면서 몇 년 까지도 낚시를 다녔던 갯바위 낚시터를 차안에 앉아서 둘러본다. 여느 때와 같이 명 포인트에는 어김없이 낚싯대를 드리운 이들이 자리를 하고 있다. 조황이 별 신통치 않은지 한참을 기다리면서 봐도 챔질하는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전망 좋은 곳에 자리를 하고 한 참이나 낙조를 보고 있었다. 나름대로의 사색을 하면서.....
땅거미가 지고 캄캄해질 무렵 거실의 전화가 울린다. 생각 한대로 어머니의 전화였다.‘하룡이 아방 왔다 갔느냐? 내가 있었으면 김치랑 마늘 조린것을 가지고 갈걸. 왜 많은 돈을 들여 여러가지를 샀느냐 돈 아껴써라.’하시고는 달그락 하는 소리와 함께 통화가 끈긴다. 백부님을 비롯한 삼촌들 모두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만 살아 계시지만 4형제의 막내 며느리로 살아오면서 오래 사신 할머님을 잘 모시고 억척같이 3남매를 잘 키우신 어머니,어머니 때문에 친족 집 제삿날에는 심야의 시골까지도 마다 않고 꼭꼭 참석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바빠서 집안 大小事에 참석치 못할 양이면 어머니의 조심스런 질책이...
“우리 어머니는 살아 계신 부처님이다.”
집사람이 하는 이야기다. 어머니께서 무병장수하시길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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