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바쁜 일 없는데
생일축하 합니다. 생일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딸! 생일 축하합니다. 펑!펑! 짝짝짝!.
새벽 3시 딸애의 한 밤중에 있었던 조촐한 생일 파티다.
케익에 촛불을 끄고 앞에 있는 캔맥주를 들고 부라보를 외치지만 분위기는 그만인 것 같다.
맥주를 한모금 마시고 방으로 와서는 자리에 누으니 거실에서 모녀가 마주앉아 무엇을 이야기하고
무엇이 그리 좋은지 웃음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그 웃음 소리를 들으면서 잠들었나 싶었는데...
눈을 뜨니 아침 6시 30여분이 되어 있었다.
정년퇴임 한 후에 노래방을 찿았던 오름동호회 회원들을 알면서 산을 찿게 된 계기가 되었는데,
오늘 그 산행이 있는 날이다. 예상 시간보다 일찍 잠에서 깨서인가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느긋하게 산행 준비를 하고는 배낭을 짊어지고 집을 나서지만 뭔가 허전한 느낌이다.
참석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산으로 선택을 해서 일까.
약속된 집결장소에는 벌써 몇몇 회원이 와 있다.
비좁은 차안, 옆에는 오름 회원들께서 한주간에 있었던
나름대로의 특이한 일을 화제로 해서 조금은“시끄럽다”라는 생각이 든다.
차창을 열고 스치는 바람에 뭔가 모르는 답답한 마음을 심호흡으로 날려 보내니 조금은 나을 것 같다.
오늘은 무슨 볼일이 많은지, 딸애 생일에다 일요산행, 천안함 장병위로,
문학제를 참관하고, 친구 딸 결혼 피로연, 저녁엔 조부님 제사까지.
한참 기를 쓰며 산을 오르는데 휴대전화가 울린다.
이러한 상황에서 걸려오는 전화는 조금은 귀찮은 존재다.
왜냐하면 짊어진 배낭에서 휴대폰을 꺼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이리라.
목소리는 문학회 회장이신 당숙께서 무사 안 왐시(왜 안 오느냐)한다.
산에 온 배경을 간략하게 설명을 하고 양해를 구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하다.
오늘 산행이 왜 이렇게 지루하고 힘든지 문학제를 갈걸 그랬나 하고 때늦고 부질없는 후회도 해 본다.
산행이 끝나고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호우주의보 때문일까 많이도 내린다.
사촌형댁 조부님 제사에 가기에는 시간상으로 이르다.
당일제 라서 오후 9시가 되면 제가 끝난다.
근처에 주차를 하고 한참을 비와 데이트 하는데
휴대폰에서 “삼춘 제삿집에 안 왐쑤강”하는 조카의 목소리에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됬나 싶었다.
나는 비를 좋아한다. 빗방울이 무엇엔가 부딪쳐서 만들어내는 그 소리를 너무 좋아 한다.
강풍을 타고 사납게 폭우가 쏟아질때는 승용차 안이 좋고,
바람 한 점 없이 봄비처럼 내릴때는 우산을 쓰고 그 소리에 만끽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우산을 들고 밖으로 볼 일이나 목적없이 나가는 일은 없다.
빗소리를 들으면서 자리에 들면 잠도 잘 온다.
겨울에도 비가 내릴때면 창문을 조금 열어놓고 잔다.
빗소리 들으려고.. 몇 년 전에 일이지만 장대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
외투만 들춰입고 승용차에서 한참이나 있다가 집에 들어가니
집사람이“비 오는데 어디 갔다 옵디강”한다. 뭔가 의심스런 질문을 받기도 했었다.
파제를 하고도 작곡자가 미상인 빗방울이 만들어 내는 소리를 들으면서 한참이나 운전석에 있었다.
한 대의 차량이 주차할 곳을 찿는지 여러차례 앞을 선회한다.
주차할 곳이 없어서 인가싶어 그곳을 떠난다.
그것도 서행을 하면서 앞 유리를 통해서 보이는 비에 향연을 아무런 생각도, 감정도 없이 듣고 바라보면서..
신호를 받고 서 있는데 뒤에서 삑 한다. 어느새 바뀌었는지 파란색 신호등이 켜져 있다.
정신이 바짝드는 느낌이다.
서둘러 비상 깜빡이를 점등하여
미안함을 표하고는 서서히 진행하다 보니 어느새 연삼로로 접어 든다.
몇 일전만 해도 많은 왕벚나무의 꽃잎이 함박눈 내리듯 바람에 날리던 포도[鋪道]위에 빗방울이 부서진다.
부서져 흐르는 그 위를 다시금 많은 알갱이로 거듭 나면서
옆으로 튕겨 나오는 모습이 자동차 불빛에 더욱 반짝인다.
앞서가는 자동차 바퀴에서 튕겨져 나오는 수많은 방울방울이 뽀얗게 물안개를 만들어 내고,
불빛을 받아 더욱 환상적인 연출을 한다.
바람을 안고 흔들어 주던 왕벚나무 가지의 손짓도,
마주치는 자동차 헤드라이트의 빛도 축복이 였으며,
차도 양 옆으로 환하게 켜져 있는 가로등 불빛도 행복이 였던 이 길을,
지난날의 밤은 오간데 없고, 오늘은 평상시의 밤이 아닌 비가 내리는 별볼 수 없는 밤이다.
이렇듯이 사색에 젖어 있을 무렵 세차게 내리는 빗길을 굉음 울리며 내차를 스치듯 지나간다.
빨리 가지 않는다는 성깔적인 표현일 것이다.
그래도 정해진 속도를 유지하며 경제적인 주행을 하고 있는데 내 행동에 하자는 없다.
지금 바쁜 것은 4개의 바퀴와 앞 유리창의 윈도우 브러쉬 뿐,
나! 지금은 바쁜 일 없어 너무 한가하다.
아마도 쏟아지는 비가 나를 차분하고, 정서적인 안정된 모습으로 탈바꿈 시킨 것일까.
오늘따라 더더욱 안전운행에 전념을 한다는 느낌도 있지만,
제네들이 바쁜가 보다.
앞 유리와 지붕에서 한바탕 벌어진 교향악 연주에 귀 기우릴 뿐, 아무런 잡념이 없다.
뭔가를 기다려지는 마음이긴 하나 뾰족하게 생각이 나는 것도 없다.
지금 시간 만큼은“어느 누구에게도 간섭받고 십지 않은 나만을 위한 시간이다”라는 심정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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