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치라는 이름의 개(犬)
“닷치야 이제는 여기가 네 집이 아니라 지금 가는 곳이 닷치가 살 집이니깐 다시는 여기오지 마라”
어머니께서 외숙모께 개의 줄을 건네면서 개에게 하는 말이다.
닷치는 애월 우리집에서 키우던 개의 이름이다.
아버지께서 외국에 닷치라는 이름의 개가 그렇게 영득하다는 걸 잡지에서 본 후 붙인 이름인 것이다.
어제 닷치 녀석이 이웃마을 납읍에 살고 계시는 외숙모댁에 팔려갔는데 개 줄을 끊고 먼 길을 달려서 정든집을 찿아온 것이다.
그 동안 많이 정들었는데 막상 다시 보내려니 섭섭하여 아버지께서는 집에 계시면서도 방에서 나오지도 않으셨다.
닷치의 이야기를 하려면 먼 옛날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니깐 36여년 전의 일이다.
1974년도 공채로 취직을 하면서 첫 발령지가 공항 외곽에 있는 항공무선표지소로 가면서부터
공항에서 가까운 거리에 방 한칸을 빌어 자취를 하던 때의 일이다.
어느 휴일날 직원 몇몇이 모여 토종닭을 사다 삶아서 술이나 한잔 하자고
의견이 되어 제주시 5일 시장을 찿았는데 바로 닭을 팔고 있는 그 곁에서
할머니 한분이 강아지 몇 마리를 구덕(바구니)에 놓고는 한 마리 사라고 종용을 한다.
일반 강아지는 2천원인데 그 옆에 하얀 강아지의 가격을 물었더니 5천원은 받아야 하는데 총각이 산다면 4천원에 팔겠단다.
복실복실한 하얀털에 말똥말똥 나를 쳐다보는 까만눈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직원들까지 합세를 하여 가격을 깎고 또 깎아서 3천원에 샀는데 종류가 스피츠라고 하며 암컷이 였다.
방 하나를 얻어 살면서 식사는 주변에 있는 식당에서 하는 처지라
내가 사는 방에서 기룰 수는 없고 해서 근무지의 관사 한구석에 사과상자(당시에는 나무상자 였음)를 놓고는
자리를 마련해 줬는데 내가 곁에 없으면 끙끙 거리는 것이 너무 안스러워 늘 데리고 같이 다녔다.
요즘처럼 애완동물에 대한 관심이 많은 때가 아니라서 개 사료를 구입 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며,
내가 식사 할 때마다 주는 밥 한 숟갈에 고기국물이 전부다.
어른주먹 두개만한 크기다보니 나를 따라 길을 다닐 때에는 솜 한 덩어리가 바람에 굴러다니는 것 같아 아주 귀여웠다. 우
마라든가 사람이 많을 때는 내 도움이 없어서는 않될 정도,
하루는 근무지에서 내 숙소 곁 식당으로 가는데 뒤따라오던 녀석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한참 찿다보니 동네에 살면서 조금 안면이 있는 아가씨 품에 안겨 있는게 아닌가,
녀석이 내 뒤를 따라오다 대문이 열려있는 길가 집 마당에 들어가 마침 빨래를 널고 있던 아가씨 곁을 떠나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반나절 동안을 맡긴 적도 있었다.
그로부터 한달이 지났을까, 녀석이 많이 커진 것 같은 느낌이 들 무렵 직장에 인사이동이 있어,
공항에 까지 녀석을 데리고 갈수는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애월에 계시는 부모님에게 맡겼더니
그 후에 아버지께서는“쭁”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처음에는 일주일이 멀다하고 녀석을 보러 갔지만 날이 갈수록 찿는 횟수가 뜸해 1년이 가까웠을 때는 거의 관심 밖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애월을 찿았는데,
조그맣던 쭁 녀석이 어느새 많이 자라 강아지 다섯 마리를 낳아 어미 개가 되어 있었다.
어미 닮은 녀석은 하나도 없고 아버님에게 들어 알았던 애비를 닮은 누런 토종개 강아지 뿐이 였지만 그래도 모두가 귀여웠다..
그 후 3주일 만에 부모님이 계시는 애월집에 갔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강아지 두 마리만 보이고,
어미인 쭁도 안보이고 나머지 강아지도 없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어미인 쭁이 강아지를 낳고 열흘만의 일이란다.
어미개(쭁)가 집 밖으로 나갔다가 한참 만에 들어 와서는 갑작이 마루로 뛰어 들더니만
마루에 계시던 아버님품에 달여 들어 몸부림을 치더니 아버님이 손 쓸새도 없이 금새 숨을 거두더란다.
밖에 나갔다가 음식물에 쥐약을 탄 걸 모르고 그걸 먹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태어나서 열흘밖에 않된 강아지들이 문제였다.
아버지께서 우유를 사다가 미지근하게 데워서 먹이는가 하면
추운 잠자리가 걱정이 되어 전기줄을 연결하여 백열등을 켜서는 주위를 따뜻하게 해 주기도 하였지만
그런 노력의 보람도 없이 몇일새에 세 마리가....
그런 중에도 살아있는 두 마리가 많이 자라서 먹이를 먹기 시작하면서 부터는 다리가 휘어지는 병에 걸리더니
나중에는 걷지도 못해서 가만히 누워만 있는 것이다.
요즘 같지가 않아서 주위에 동물병원은 커녕 애완동물에 대한 관심이 희박한 때라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서,
아버지께서는 대나무를 알맞게 잘라 강아지의 네 다리를 곧게 하고는 대나무랑 같이 다리를 묶어 주었다.
두 녀석이 먹성은 좋아서 양제기 그릇에 넣어주는 음식은 엎드린 상태에서도 몽땅 비우는 것이다.
왕성한 식욕 때문인지 한 일주일 만에 다리의 붕대를 풀었을때 다리는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은데도 걷지를 못 하였다.
아버지께서 두 녀석을 번갈아 가면서 시간 날 때 마다 다리를 주물러 줬더니 정상으로 걷지는 못하고,
사람 같으면 무릎으로 걷는 것처럼 걷더니만 붕대를 풀어 5일 째 되는 날 부터는 완전한 정상 걸음이 되었다.
물론 5일 동안이나 강아지에 대한 아버지의 지대한 관심이 녀석들을 불구에서 구해낸 것이다.
녀석들이 다리로 걷게 되자 어떻게나 좋아하는지 이러 뛰고 저리 뛰어 다니며 놀기를 좋아했다.
두 녀석이 모두 수놈이라 그런지 자라면서 작난을 어떻게나 잘 치는지 조용한 날이 없을 정도였다.
서로 사랑을 받으려고 달겨 들때는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한 녀석은 바로 이웃에 살고 계시는 말잿 아버지댁에 보냈고,
다리가 길고 늘씬한 녀석은 닷치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우리가 길렀다.
닷치 녀석이 어떻게나 덩치가 크고 영리한지 음식을 갗다 놓고 먹으라는 말이 없으면 침은 흘리면서도 먹지를 않고 기다린다.
그래도 먹으라는 말이 없으면 엎드려서 음식 한번 쳐다보고 주인 한번 쳐다보곤 한다.
한번은 아버지 친구분이 놀러 오셨다가 나가는데 밖에서 다급한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녀석이 친구분 앞에 버티어 서서는 날카롭고 하얀 이빨을 들어내 으르렁 대며 친구분을 집 밖으로 못나가게 막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괜찮다 우리집 손님이야!” 라고 해서야 옆으로 비켜서는 일도 종종 있었다한다.
어느 누가 봐도 어미가 조그만 스피츠의 새끼라고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어느 날 이웃마을 납읍에 살고 계시는 외숙모께서 볼일 보러 애월 오셨다가 집에 들렸는데,
닷치의 영리함을 보고는 값은 잘쳐 줄테니 팔라는 것이다.
물론 첫 마디에 거절을 했지만 숙모님의 사정을 듣고 보니 그러하지도 못 하였다.
해마다 귤 수확을 해서 창고에 넣어두고 자물쇠를 채워도
도둑이 들어 몽땅 갖여가 버려 일년 농사를 지어 봐도 남 좋은 일만 한다고 푸념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상한 곳에 팔려가는 것도 아니고 해서 외숙모댁 과수원 지킴이로 가는 데는 아쉽지만 보낼 수 밖에 없었으며,
가족이 팔려 가는 것처럼 아쉽고 허전한 마음은 우리 가족 전체의 마음이였다.
몇 년이 지난 후에 닷치의 안부를 물었더니 닷치가 온 후로는 한번도 도둑맞은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 후로 36년이 지난 지금, 집에서는 강아지를 사다 기른적이 한번도 없다.
애월에 혼자 계시는 어머님에게 강아지를 키우면 적적 하지도 않고, 또 다른 필요성을 얘기해도 한사코 만류 하신다.
어머님이 집에 없으면 누가 개에게 먹이를 주냐는 것이다.
개를 줄로 매어 놓고 굶긴다면 그런 몹쓸 일이 어디 있냐는 것이고 보면, 옛날 개를 키우던 생각이 나서 일까.....
2010년 1월 월간 문예사조 수필부문 신인상수상
월간 문예사조 회원.
애월 문학회 회원
'- 시詩 와 수필隨筆' 카테고리의 다른 글
◈ - 계절의 상념 (詩) (0) | 2011.11.07 |
---|---|
◈ - 바램이 있다면 (詩) (0) | 2011.07.09 |
◈ - 대어(大魚)를 찿아서 (隨筆) (0) | 2010.11.09 |
◈ - 지금은 바쁜 일 없는데 (隨筆) (0) | 2010.04.21 |
◈ - 바람에 띄운 그리움(詩) (0) | 2010.01.21 |